결혼 8년차 전업주부다
오늘은 흐리기도 하고 참 우울하다.
큰애는 이번에 초등학교 입학하고 둘째는 이제 3살..
터울이 커서 육아기간이 길어졌다.
내 나이는 서른 일곱
소위 명문대 졸업하고 직장 생활 5년 후 결혼과 동시 임신으로
퇴직했다.
순진하고 세상을 몰라서 별 생각없었고 아니 이럴 줄 몰랐고
그냥 애 키워 놓고 다시 취업하면 되지 하고 쉽게 생각했다.
좀 쉬고 싶기도 했고 그렇게 커리어를 중요하게 생각지 못했다.
주부로서 재취업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줄 몰랐다.
더구나 시댁에 전업주부는 나 혼자다.
다들 일한다.
시댁이 경제적 형편이 안 좋아서 다들 어쩔 수 없이 경제적인 이유로 일한다.
그러다 보니 난 완전 팔자 편한 여자로 취급된다.
결혼 초기엔 요구가 많았다.
지금은 노골적으로는 아니지만 은근히 그렇다.
아닌 말로 무슨 일 있으면 핑게거리가 없는 입장이다.
솔직히 덤태기 쓸까봐 겁이 난다.
난 일하는 게 무섭다. 그리 즐기지도 잘 하지도 못한다.
사람들 북적대는 것도 싫고 내 것을 침해당하는 것도 싫다.
나 자신을 돌아보며 뭐 좀 해 볼까 하는데 둘째가 생겼고
다시 육아에 매였다.
둘째는 일찍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을 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아이에게 미안하고 딱히 할 게 마땅치도 않다.
그나마 시간이 자유롭다길래 모 유아책 출판사 상담사원으로 들어가서
몇개월 아이 업고 다녀 봤지만 결국 포기했다.
그것도 아이 데리고 다니며 하기엔 어려웠다.
그렇다고 요리나 집안일에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애들하고 잘 놀아준다거나 애들하고 지내는 시간을 즐기는 성향도 아니다.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게 좋고 개인시간을 즐기는 성격이다.
집에 있으니 느는 건 살밖에 없고 나 자신에게 돈 쓰는 건 갈수록 어렵다.
결심해도 막상 미용실 한번 가려면 아깝다.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건 안 어려운데 그게 아이들에게 더 유익한 건지 회의가 들때 마음이 힘들다.
간혹 매체나 주변을 보면 오히려 직장맘들이 아이들을 더 독립적으로 잘 키우는 것같아 보일 때가 있다.
집에 있다 보니 아이를 열심히 챙겨 주게 되고 가끔 아이를 너무 유약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아이를 내버려 두고 방치하기가 어렵다.
또한 집에 있으니 점점 큰애와 다투고 잔소리하고 소리지르는 엄마가 되어가는 것 같다.
나중에 결국 아무 타이틀 없는 평범한 주부인 엄마보다는 당당한 일을 가진 엄마를 더 자랑스러워하고 존경하진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아니 지금부터도 아이에게 그게 더 도움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지기도 한다.
남편에게도 자꾸 목매고 의존하는 나의 모습도 싫다.
내성적이다 보니 사람들하고 어울리며 수다떨며 보내는 게 싫고
가능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좋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외롭고 안 그러려고 해도 자꾸 남편한테 의존한다.
남편의 전화가 없으면 섭섭하고 우울해지고 서글퍼진다.
그러면서도 그런 내가 처량하고 한심해진다.
현재 내 자리를 받아들이고 내가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선택했노라 생각하며 아이들과의 시간에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을 다잡아 보기도 하고
어차피 둘째 크면 이제 자유시간이 생기니까 그때 일을 하면 되지 않나 지금 육아에 집중하자 스스로 다독여 보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이젠 내가 과연 뭘 할 수 있을지를 모르겠다. 자신이 없고 할 일이 없어 보인다. 기껏 아이들 가르치는 속셈교사나 될 수 있을까.. 이런저런 말 많은 학습지 교사...? 보험사원?
전공이 인문학이다 보니 더 그렇다.
사업수완도 없고 재주도 없고 딱히 재능도 없다.
결국 내가 할 일은 가정주부인가 싶고
선택이 아니라 난 어쩔 수 없이 다른 할 일이 없어서 주부로 살아가야 되나 생각하면 절망감이 생긴다.
내가 이렇게 살려고 학창시절 부모님 기대 속에 일이등을 다투며 공부했나 싶은 생각도 들고
친정부모님의 실망하는 모습이나 말에 더 상처 받는다.
그냥 주어진 나의 삶을 받아들이고 이 속에서 만족하고 기뻐하고 보람을 찾자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배부른 투정일까
하지만 내 안에서 끊임없이 어쩔 수 없이 늘 갈등과 목마른 갈증과 나 자신을 찾고 싶은 욕구가 있음을 발견한다.
과거의 나를 잊어버리고 자존심과 프라이드를 일종의 교만을 버려야 하는 걸까
그냥 이게 나의 모습이라고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고 아이들에게 최선의 것을 주고 싶고 그렇게 살고 있지만 그런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나를 본다. 그게 문제다.
어떻게 하면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