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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속상해


BY 봄 2007-10-02

이년이 지난 지금에도 가슴이 시립니다

이년전 사월 일일 만우절날 거짓말처럼 남편이 쓰러졌습니다

한시간 전만에도 아이들과 잘 놀아주던 신랑이 침대에 누워있는 내 배위로 얼굴을 묻더군요

장난인가 싶었으나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더군요

얼굴을 일으켜보니 얼굴이 돌처럼 굳어져 있었어요

황급히 119을 불렀습니다  이삼분만에 119가 왔더군요

119을 타고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도 별일 아닐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응급실에 도착해 의사가 신랑을 보더니 중환자실로 옮기라고 하더군요 무엇인가 불길한 느낌이들어죠  어떻게해야하나 아무생각도 나지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주치의가 나를 보자고하더니 뇌출혈이라고 하더군요

많이 터져 위험하다고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았습니다

급한대로 시댁에 전화를 했습니다  오전 10시쯤 둘째아주버님과 어머님이 올라오셨습니다

그리고12쯤 약사인 큰아주버님이 형님과 함께오셨더군요

가족모두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있는데 인턴이 와서 그러더군요 뇌압이 내려가야 수술을 하니까 4시쯤수술들어갈거라고 친정식구, 친구 ,친구신랑 ,동네엄마들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데 큰아주버님과 형님이 가시겠다고하더군요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자기동생이 생사가 오고가는데 수술도 보지않고 간다고

내 친구신랑도 회사를 못가고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큰형이라는 사람이 그럴수 있지요

신랑은 첫번째수술을하고 중환자실로 다시들어갔습니다

수술다음날 오후 11시쯤 레지던트가 보호자를 찾더군요

환자가위독하니 다시수술을 해야한다고 하더라구요

정말 무서웠습니다 . 시댁식구들은 다내려가고 친정식구들과 나만이 수술실을 지켰습니다

두번째 수술을 마친신랑은 가망이 없어보였습니다

눈물도 나지않았습니다

그날저녁 남편을 중환자실에 놓고 집으로 돌아와 초등학교2학년인 아들과 4학년인 딸을 잡고 많이 울었습니다.

새벽6시쯤 일어나 병원에가는길에 하늘을보니 정말하늘이 노랏더군요

8시쯤 중환자실 회진이있어 문앞에서 주치의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주치의는 나에게 마지막 희망의끈을 놓게만들더군요

지금도 기억합니다

준비하십시오 그 냉정한 한마디를

주치의에게 그말을 들은 순간 나는 우리아이들에게 어떤 상복을 입혀야하나 순간 갈등을 했답니다

우습지요

 

상황이렇다고  마냥 울면서 기다릴순없었습니다

수간호사인 친구에게 연락을해 남편의병원자료를 가지고 다른병원을 가자고했습니다

간호사인 친구와 몇몇의 친구가 차를 가지고 왔더군요

삼성의료원 아산병원 친구의백으로 바로 소견을 들을수있었지요

그러나 신랑이입원했던 병원에서만큼은 심각하게애기하지않았어요

 

다시병원으로 돌아와 중환자대기실에 있는데 시어머니가 오셨더군요

시어머니가 집에 내려가신 이유는 아버님 식사차려드려야한다는 이유였죠

다음날 아침 아버님이 오셨더군요

중환자실 아침면회를하신 아버님께서는 신랑의 맥박을 재보더니 버린자식이라며

나가버리시더라구요

아버님은 자식이 많아 하나쯤없어도 되지만 저희아이들은 어떻겠어요

 

병원생활 일주일 병원비가 나왔더군요

생각보다 많이 나와 중환자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병원비가 많이나와 걱정이라고

하고 아이들때문에 집으로왔죠

중환자 대기실에는 시어머니가 계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웠습니다

다음날 아침 대기실 식구들이 나에게 부잣집 딸이 고생한다며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거예요

그게 무슨말이냐며 물었더니

대기실 가족들이 애기엄마가 병원비때문에 걱정하더라고 시어머니께 말을하니까

시어머니가 그러시더래요

무슨걱정이냐고 처가가 부자인데 정말 배신감느꼈습니다

그때부터 시댁과의전쟁이 시작되었지요

 

두번째수술을마친 신랑은 일주일이지나도 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딸아이의 생일이었습니다

남편이 의식이 돌아온것입니다

남편은 나에게 펜과 메모지를 날라는 신융을 했습니다

펜과 메모지를 줬더니 아이들이 보고싶다고 쓰더군요

얼마나 감격했던지요

그후 남편은 일년동안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장애하나없이 건강한 몸으로 우리에게 돌아왔습니다. 신랑이 병원생활하는 일년내내 친정에서 생활비를 보조받으며 살았는데 시댁에서는

참깨두유한박스가 다 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