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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고백, 긴-글입니다.


BY ??? 2008-03-20

저는 초혼, 남편은 재혼.

제가 결혼했을 땐, 손아랫동서 셋이 이미 20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한 상태,

(동서들 나이가 동갑이거나 한 살 어리거나 해서 서로 이름 부르고 맘 먹고 있었음.)

남편 위로 동서가 하나 있습니다. 글 속에 제가 형님이라 칭하는 분.

 

동서들은 모두 개성이 강하고, 그래서 나이는 내가 제일 많지만

결혼생활 오래한 그들이 보기엔 한없이 여리고 만만한 상태였던가 봅니다.

그래서 첫 대면부터 냉랭하고 찬바람이 불더니 급기야 막말까지(나는 안 했지만 동서들 입에서).

 

이글을 올리는 것도 두렵습니다.

돌 날아올까 봐.

충고, 좋지만 거칠고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부드럽게 지적해 주세요. 소심합니다.

 

아래 글은 하도 답답해서 써봤는데 한동안 생각해 보고 그 때도 지금 마음처럼 그들에게 내 생각을 알려야겠다는 마음이 들면 보낼 것입니다. 보내기 전에 객관적인 생각을 듣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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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쓰는 심정이 착잡하오. 대화로 풀어야겠지만, 말 전달의 위력이 무서워 못하고.

OO이 이번에 중국에서 나왔다가 갈 때
"등록금 걱정하지 말고 대학원 시험 봐라."
했는데. 동서는 맞벌이여서 어머님과 함께 살았고, 내가 결혼 전이라 남편의 아이도 돌봤기에 당연히 나 보다 함께한 시간이 길었음에도, 
"형님보다 내가 OO이 따뜻한 밥 한끼를 차려줬어도 더 했고, 따뜻한 말 한 마디를 해도 더 했다"
고 말했소. 나 이 시간 이후 애들에게서 손떼기로 하오. 어차피 내가 하는 건 동서들 성에 차지 않으니 앞으로는 잘 하는 동서가 하면 될 것 같소. 못하면서 하려고 애쓰는 게  참말로 힘들었는데, 은퇴할 이 나이에 직장 다녀 번 돈으로 도리를 한다는 게 내게도 쉽지만은 않았소.
나는 재벌이어도 능력 안 되는 애가 좌석이 남아도는데도 그 큰 차를 저 혼자 타고 그 먼 곳까지 끌고 오게 키울 수 없소. 애들 교육을 그렇게 시키는 걸 난 용납할 수 없다는 얘기. 그런데 내가 한 <기름값 이야기>가 할 짓(?)이 못된다고? 다들 욕했다고? 그럼 칭찬만 듣는 동서가 그 아이 기름값 대소.
망가진 차 끌고 다니면 일이 안 풀린다기에 안 그래도 내 남편 일이 안 풀려서, 깨진 범퍼를 보고 <이건 네 아빠 영업용이다.> 딱 이 한 마디 했는데 그것도 할 짓(?)이 못된다고? 그게 할 짓이냐고? 그럼 앞으로 동서가 그 애 전용차를 사주든지, 고쳐주든지, 그것도 알아서 하소. 내가 책임지지 않을 일이면 나 또한 그런 말 할 필요가 없겠지.
동서들이 한 얘기를 어머님이나 형님이 하셨다면 나는 달게 받아들였을 것이요. 시어머니도 안 시키는 시집살이를 나이 50에 동서들에게 당하다니, 그래서 내 친정 조카들이 현재까지는 잘 됐으니 나 역시 내 뱃속으로 아이를 낳아 길렀으면(확률적으로) 댁들 걱정 안 해도 되도록 키웠을 것이란 말을 하고 싶었는데 벌집을 쑤시고 말았소. 내 얘길 끝까지 들어볼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런 얘기 왜 해? 친정 자랑하는 거야, 뭐야!>가 되니, 정작 하고 싶었던 말
"앞으로는 잘 해 보자"
는 말은 꺼낼 수조차 없었소. 아니, 했다 한들 화해가 가능했을까? 동서들이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오. 내가 집에 들어가도 왔냐는 말 한 마디 없이 무시해 버리던 동서들, 그리고 내가 전화를 하라고 사정했소? 스스로 전화 걸어놓고 전화요금 어쩌고 할 때는 인생이 참 허접하단 생각에 씁쓸. 이 사람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했지만 억세게 쏟아붓던 두 사람의 공격. <지가 한 게 뭐있다고...>, <그게 할 짓이야!> 손아랫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막말로 군중심리에 편승해 큰소리치던 동서들의 그 날 분위기는 다시 보지 않을 사람을 대하는 태도.

 동서들은  <지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 하면서 나를 몰아부쳤소. 그래, 난 한 일 없소. 지금부터는 왜 한 일이 없어야 했는가를 말하겠소.
부모님 모시고 이미 결정해 버린 일을 막내 동서 임의대로 무효화 시켰소.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동서들과의 자리를 마련했고, 자리에 채 앉기도 전에 동서,
<며느리노릇 똑바로 하라> 는 얘기를 했소. 윗동서 셋 가리키면서. 정말 기가 막혀서 위계질서를 잡아보겠다는 생각 포기.
한 술 더 떠서, 이미 만들어진 통장에 돈도 내지 않으면서 다시 통장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소. 내 입장에서 거부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니오? 입만 살면 뭘 해, 실천을 해야지.
다음 얘기, 셋째 동서만 빠진. 그러니까 어머님과 형님, 그리고 나머지 동서들이 있는 자리에서 정한 아버님 생신을 나중에 셋째가  뒤집었소. 이번에도 내겐 연락도 없이. 나중에 듣고서 <내가 장을 다 봐 가마> 했더니 <싫다.> <그럼 내가 요리를 다 해 가마. 정해진 시각을 지키자> 해도 <싫다. 일 때문에 못오면 오지 마라.> 했소.
위계질서라는 개념조차 없는 동서들을 보며 둘째와 대책을 세워보고 싶어서 명함을 주며 밥먹자 했지만 어머님께는 <전화번호도 모르고 형님이 전화하는 것 싫어해서 못한다> 고 했다잖소.
이런 식으로 내게 연락없이 일을 뒤집고,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하는 동서들이기에
<동서들이 알아서 잘 하니 난 빠지고,대신 어머님께는 도리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하겠다.>  다른 동서들에게도 그리 알려라, 했지만 쓰다, 달다 말 한 마디 없어서 접수한 것으로 보고 때 되면 어머님을 따로 찾아뵈었소.
9시에 일 끝내고 장 봐와서 어설프게 밤을 새워 반찬해서 형편없는 생신상이지만 차려드렸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지만 말이오.  명절 때는 미리 다녀왔고........
내 돈이 아까우면 남의 돈도 아까운 일이요, 내 돈 더 내서 좋은 것 해드릴 생각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그걸 요구해선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고, 내가 생각하기에 좀 아니다 싶어도 어른들이 이미 결정해서 마무리 된 일이면 따르는 게 화합을 위해 좋다는 게 내 생각인데 동서들은 다르더이다. 가차없이 뒤집어 엎어버리니.
나는 드세고 목소리 큰 사람들이 오히려 인정있고 선하다, 믿는 사람이오. 그렇다고 예의에 어긋나게 사람 우습게 보고, 도에 넘치도록 제 멋대로 인 것은 곤란하잖소.
다시 보지 않을 사람으로 여겨서인지 거칠게 막말을 하고, 심지어 셋이 있을 때는 조용하고 좋았다는 셋째 동서의 말을 나는 존중해야만 할 것 같으오. 다시 보지 말자는 강력한 의사표시로 받아들이겠음. 그래서 내가 빠지겠소. 첫 대면부터 동서들은 나를 사람대접 하지 않았고, 사사건건 못마땅한 동서들이기에, 그런 완벽한 동서들 편안히 지낼 수 있게 부족한 나는 빠지는 게 좋겠다는 생각. 

다음은 어머님 사후 문제.
나는 종가집 제사를 받들어 모실 것이오. 분명한 것은 동서들이 제사에 참석하는 건 반대요. 내가 아무리 내 나름의 최선을 다 해도 오지랖넓은 동서들은
"사과가 왜 붉어? 감은 또 왜 주황색이야...바나나는 왜 노랗고?"
할 사람들이란 걸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알기에 시건방진 말 잔치는 거부하기로 하오.
내 형편껏 어떤 날은 냉수 한 대접, 컨디션이 좀 나으면 삼색나물 정도, 경제가 뒷받침된다면 좀 더 낫게,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러나 성의껏 제사를 모시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