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너무도 젊었기에...
-고 안재환을 추모하며
아깝고 애닯은 젊은 목숨이 얼마 전 세상을 스스로 떠나갔다. 백년해로할 것을 수많은 동료 연예인들과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토록 아름다운 미소로 화안하게 기약해 놓고 꽃같고 구슬같은 사랑하는 아내를 홀로 남긴 채 그렇게 그는 세상을 버려야 했다. 그의 마지막을 고요히 목도했을 시간의 그림자와 먼지와 고통스럽게 아우성쳤을 공기들이 그가 숨진 차 안에 그 아픈 시간들을 끌어안고 숨죽이고 있었을 것이다. 꽤 긴 시간이 흐른 후에야 119구조대가 궁여지책 끝에 깨뜨린 차창을 통해, 차마 떠나지 못하고 고뇌했을 그의 영혼도 죽는 그 순간의 고통의 기억을 떨쳐버리고 자유의 존재가 되어 떠났을까. ‘노숙자가 되어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먼 발치에서라도 지켜보고 싶지만 얼굴이 알려져 있어 그러지도 못 한다’며 심적 고통을 지인에게 문자로 호소하기도 했다는 고인. 그래, 그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만큼 그에게는 충분히 뼈아픈 현실이 있었으리라. 수많은 번뇌가 화근이 되어 그가 더 이상 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싶지 않을 만큼 그를 옥죄어 왔으리라.
하지만 그의 죽음을 ‘스스로’의 죽음이라고 어찌 단정지을 수 있을까.
고인은 자신이 벌여오던 사업들이 지속되는 경기침체로 인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타격을 입고 있었고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몇십 억의 사채까지 끌어다 쓸 만큼 절박한 경제적 난국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아갔던 많은 이유 중에는 이성을 잃은 이기적이고 유아독존적인 ‘괴군중의 횡포’가 분명히 깔려 있었다고 본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고인의 아내, 개그우먼 정선희 씨가 모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관련)촛불 집회에 꼭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함에 따라 네티즌의 분노를 샀고 정선희 씨는 자신이 출연하고 있었던 대부분의 방송출연을 중단 당해야 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그 발언 파문 이후 정선희 부부가 추진해오던 화장품 사업을 비롯한 다수의 사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미친 네티즌들이 정선희 씨의 화장품 등의 생산품들에 대한 불매운동을 인터넷 상에서 맹렬히 전개했던 것이다...
고 안재환의 미니홈피를 방문해 보면 “죄송합니다.”라는 문구부터 눈에 들어온다.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도대체 정선희 씨가 한 말 “~촛불 집회에 꼭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발언이 한 인간을 사회에서 매장할 만큼 잘못된 발언인가? 이 나라가 미친 네티즌만의 나라인가? 정선희 씨가 아무리 공인이라 한들 방송 중에 그 정도의 개인적 의견도 피력하지 못할 만큼 이 나라는 경직되고 조작된 나라였단 말인가? 쪽수가 많은 쪽으로 똑같은 의견을 내지 않고 찬성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가 꼭 그렇게까지 비난과 매장을 당해야 옳았단 말인가? 정말 더럽게 미친 쪽은 어느 쪽인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관련 촛불집회가 열리고 수많은 열혈 국민들이 자신의 소신을 담아 의로운 마음으로 투쟁하고 있었던 그 때 나 또한 그들과 한 마음이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직접 집회에 나갈 수는 없었지만 늘 마음 속으로라도 그들을 응원했다. 그들의 의로운 마음을 감사하며 나같이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응원하는 소시민의 몫까지 그들이 대신해 주는 것 같아서 고맙고 또 미안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비난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기준과 잣대에 의해 자유로운 가치판단을 할 수 있고 그에 입각해 자신의 행동 방식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그 판단과 결정이 타인의 자유와 삶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말이다.
그 당시에 방송인 정선희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집회에 무관심하거나 적극적으로 비난을 퍼붓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정선희 씨가 공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미친 네티즌의 유아독존적인 마녀 사냥의 먹잇감이 되어야 했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공인이면, 방송이면, 그 정도의 개인적 의사조차 절대로 입밖에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한 나라의 지존이라는 공인 중의 공인이 자신의 개인적 종교를 노골적으로 옹호하고 타종교를 교묘히 탄압하는 것은 왜 그토록 넓게 이해를 받을 수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공인 중의 지존인 대공인으로서 절대로 용납받을 수 없는 만행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한 개인의 연약한 삶은 그토록 야비하게 ‘불매운동’이라는 야비하고 더러운 수법을 써가면서까지 철저히 망가뜨렸으면서 그보다 비교할 수조차 없이 거대한 부조리에 눈감고 귀 막은 그대들, 미친 네티즌들이여, 고인 앞에 무릎 꿇고 참회하라. 그의 영전에 개같은 악플 달면서 개소리 뇌까리지 말고.
고 안재환 님, 그리고 미망인 정선희 님, 당신들이 세상을 향해 ‘죄송하다’고 말할 이유 없습니다. 처참하게 삶을 마감해야 했던, 죽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선희 미워하지 마세요”를 안타깝게 절규했던 그대, 아름다운 영혼이여, 편히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