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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거, 참...


BY 코모리 2008-09-25

5년전인가...

그때는 고부간의 갈등으로 한참 여기서 넋두리를 했었는데,

살만해지니까 이곳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번에는 남편이 속썩이네요...

그래서 컴백했습니다...!

 

얼마전, 1주일 출장 떠나는 남편 배웅한뒤 컴퓨터를 켰더니, 남편의 메일 화면이 떠 있었습니다.

거기서...

남편이 내연녀와 주고받은 사랑의 편지를 모두 보고 말았습니다.

하도 내용이 자세해서 흥신소를 붙이고 말고 할 것도 없더군요.

 

문제는... 너무 자세히 알아버려서

그 충격이 너무 컸다는 거죠...

그냥 '너희 남편 바람피더라' 라던가, 간단한 문자정도로 발각된거였다면....

아니, 마찬가지일겁니다...

 

난 들어보지도 못한 사랑고백들...

서로가 임신까지 원했더군요...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내연녀의 직업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술집여자면서,

하남에 있는 S음악학원의 부원장이자,

모 교회의 반주자였고,

취미로 산악회 회원으로 등산을 즐기는

모 그룹사운드의 키보드 연주자로도 활동했고

얼마전에는 플륫으로 연주회도 열었던 사람이더군요....

 

내 딸이 다니는 피아노학원 선생이 학원 끝나면 술집가서 유부남이나 꼬시는 술집여자 일 수 있다는 사실에 이 사회가 너무 무서워 졌습니다.

 

술집여자들이 이렇게 훌륭한지 몰랐죠...

이 시대 술집여자는 옛날 처럼, 동생 학비때문에, 가족의 병원비 때문에... 뭐 이런 절절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봅니다.

인생을 즐기기 위해 아무것도 거리끼지 않고, 쾌락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에 비하면 나는...

 

너무 충격이었습니다.

 

내가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남편과 내연녀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내연녀는 자신이 술집여자인 것이 들통나는게 두려운 듯 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고 이미 옛날에 끝난 일인데 이제와서 왜 그러냐고 하더군요.

미안하다고는 하더군요. 내가 음악학원으로 찾아가겠다고 했거든요...

 

남편은 죽을 죄 졌다며  무릅꿇고 머리박고  대성통곡까지 하더군요.

그리고 한번도 날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고, 자기가 왜 술집여자랑 그렇게 왰는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냥...

모든게 의미가 경박해지고, 한심해지는게 견디기 힘듭니다.

 

그렇게 서로 사랑할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그 여자의 그 많은 캐릭터 중에서 '술집여자'만을 강조하며 비하시키고 있는 남편도 한심하고,

 

'학원 선생'이자 '교회 반주자'가 유부남 꼬시는 술집여자인것도 한심하고...

 

그들이 속삭이던 '사랑'이라는 단어를 나에게 사용하는 것도 불쾌하고...

 

그 모든 단어들이, 의미들이 불쾌해 졌습니다...

 

한 3주를 분노와 자기비하, 경멸, 외로움, 자책감, 비통함.... 등등이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거 때문에 힘들어 하다가

이제 좀 안정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내가 바뀌었습니다.

 

좀더 삶에 적극적이 되었고, 내 삶의 주체가 나임을, 나를 사랑해주는건 남편이나 그 누구도 아닌 나여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젠 모든 게 오히려 가뿐해 졌는데,

다만 아쉬운건,

그 경박해진 단어들입니다.

그 경박함 때문에 마음이 허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