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또 한번 힘든 감정에 복받쳐 제 속을 여기다 쏟았습니다.
아무래도 이성적이지 못하다보니 좀 심한소리까지 했네요.
형님이 남자 고추 하나만 보고 사는것 같다는 등..
설마 그렇지야 않겠지만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고 해도
살고싶은 남자는 아닌것 같은데 뭣때문인지 도저히 저는 이해가 안갑니다.
오죽하면 우리 친정 엄마도 니 형님 꼭 너 엣날에 이서방(우리신랑)한테 미치듯 미쳤나보다 하시대요.
시숙이 미우니 정말 하나에서 열까지 좋은소리가 안나오는 저를 보면 저도 맘이 안좋아요.
저 평소엔 남들에게 인정많고 성격 좋다 소리 듣는 여자인데 아주버님 생각만 하면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욕지거리만 나옵니다.
12년전 스물여섯의 나이로 반대하는 결혼 어렵게 했어 저나름 잘살아 보겠다는 각오가 대단했어요.
친정에서 장녀고 저도 사고방식 고루한 여자라 혼전동거 이런거 정말 생각도 하기 싫은 저였지만
사랑하는 지금의 남편과 꼭 결혼하고 싶어 한달 고심끝에 여동생한테 이야기 살짝 해놓고
아침에 직장 나가는듯 하면서 옷가지 몇개 싸들고 나와 그날로 살림을 차렷습니다.
이삼일전에 이미 제가 월세방을 얻어두었고 남편도 데리고 갔었답니다.
돈도 없지 형님보다 먼저 결혼하는것도 그래서인지
약간 망설이는 남편을 설득해서 이길이 니가 살고 내가 살고 니 형제들도 사는 길이라고 했어요.
당시 일곱의 형제가 한집에 살았는데 백수가 셋이나 있고 한명이 학생이고 돈 벌어오는
세명의 형제 수입으로 그 백수들도 다같이 먹고 사는 한심한 생활을 하고 있었더랬죠.
우리의 결혼은 남편을 위해서도 탈출구로 급하다는 생각을 했었고 무엇보다
제가 행복하려면 남편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때 전재산 월세 보증금 이백이 전부엿고 남편 자영업 하다 실패해서 천이백 빚만 있었어요.
동거하자마자 첫애가 들어섰구요.
사실 연애도 육년으로 할만큼 했고 그때 신랑 나이도 서른이라 아이 낳는걸 미루고 싶지도 않더라구요.
돈은 없지만 자식이라도 남들처럼 제때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혼식이 없었던지라 웬지 불안해서 서로를 단단히 이어줄
자식이 있어야 어렵게 시작한 가정을 지켜나가는데 힘이 될것 같아서요.
임신을 하니 결혼식도 급해져 친정에 매일 드나들며 결혼식 올려달라고 졸랐죠.
안올려주면 제가 벌어드린 돈 천만원이라도 달라고 하면서..
친정 부모님은 그때까지도 요지부동이셨어요.
이미 배가 불러오는데도..
가난하지 학벌없지 부모도 없지 형제도 많지 위에 시숙은 총각이지
신랑도 가진거 없지..
.
지금 생각하면 저라도 속이 터졌을것 같아요.
더이상 부모한테 기댈수가 없다는 판단하에 그해에 마침 육십년만에 한번 온다는
길일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날을 잡아 예식장 예약을 혼자 하러 갔습니다.
청첩장도 바로 찍으러 갔구요.
우리 신랑 그전에 중환자실까지 한번 들어갔다 온 사람이라
저는 그냥 그가 나랑 이렇게 건강한 몸으로 살아주는것만으로 기쁘고 감사해서
가난도 동거도 혼전임신도 다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정말 라면 하나 놓고 먹어도 좋아서 서로 낄낄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아주버님이 그때 빚 갚고 나서 결혼식 하라고 말렸지만
저는 아이 낳기 전에 결혼식 하고 싶어 강행했어요.
빚은 결혼식 하고 아이 낳을 시기되면 다 갚을수 있을것 같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구요.
주례말씀 들으면서 저는 속으로 평생 이사람을 도와 살겠다는 다짐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던데
많이 사랑했나봐요.
지금도 변함이 없고 정말 살면 살수록 괜찮은 사람이 남편인것 같아요.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밑바닥 신혼도 선택했겠지만.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신랑을 아주버님 집으로 보내 축의금이 들어오면
우리가 빚이 있으니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어요.
우리가 곧 아이도 태어나고 급하니 먼저 쓰자구요.
그 돈이 없어도 아이 낳기 전까지는 빚이 해결되겠지만 당장 전세금도 급했기에
사실 한푼이라도 아쉬워서죠.
돈이 욕심나서라기 보다는 좀더 안정을 바랬던것 같아요.
돌아온 남편은 분명 그러겠다는 확답을 들었고 우린 기분좋게 결혼식 마치고
남들처럼 신혼여행도 가까운데로 2박 다녀왓어요.
문제는 신혼여행을 다녀오자 마자 일이 벌어졌어요.
아주버님이 맘이 돌변하셔서 축의금을 주실수가 없다는거에요.
것두 저녁먹고 나올 무렵이라 우린 아무 대꾸도 못했는데 전 정말 그때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에 산동네 골목길이 떠나갈듯 큰소리로 엉엉 울었답니다.
친정에 가서 부모님께 절을 하는데도 눈물이 멈추질않아 아버지가 의아하게 생각하셨어요.
엄마는 그전에 저에게 대충 들어 아셨지만..
제가 홀몸이 아니어서 예민한데다 기대가 많았던 탓인지 그 실망감이 이루 말할수가 없었던것 같아요.
어떻게 잤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고 다음날 정신을 차려 아주버님과 함께 살던
미혼인 손아래 시누이에게 전화를 하니 벌써 은행에 돈을 다 넣고 없다고 하더군요.
우리 축의금을 당시 미혼인 시동생 카드빚이 더 급하여 섰다고 합니다.
전 솔직히 살다보면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약속은 했지만 사람이니 맘이 변할수도 있는거고 더 급한데가 있음 그럴수도 있다고 이해합니다.
그치만 사람이 한마디 말이라도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일이 여자저차해서 동생이나 제수에게 좀 미안하게 되었다던가
아님 내가 어려우면 자기 동생인 남편만이라도 살짝 불러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것이 없어 너무 섭섭하고 배신감에 화가 났었습니다.
전 결혼식 이후 거의 보름간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했어요.
남편과도 사이 껄그러운건 말할것도 없구요.
왜그때 한번 속시원하게 남편이나 시숙과 쌈이라도 하지 못했느지..
차라리 그때 거렇게 풀어버렸음 십년세월 속에 담아두지도 않했을텐데 말이죠.
아무튼 그러다 신혼인데 나나 신랑이 그일로 침울해 있는게 안좋다 싶어
저는 화는 풀었지만 속의 앙금까지는 가시지 못한것 같아요.
그후 한달쯤있다 시숙이 고향에 가자고 합디다.
부모님 산소에도 들리고 신혼이니 결혼식에 다녀와준 친지분께 인사가야한다면서..
전 시숙 얼굴 꼴보기 싫어 안간다고 했고 남편만 보냈는데
남편을 앞세워 우리 사는 신혼집으로 에고도 없이 들이닥쳤더군요.
당시 전화기 놓을 형편도 안되었어요.
그리고 시숙이 방안에 들어와서는 둘이 누움 딱 맞는 좁은방 이불속에 누워있는
제 머리맡에 앉아서 고향에 가자고 제촉합니다.
기가 막히더군요...
우리 부부가 지난 한달동안 얼마나 속을 앓았느데 그 사정을 모르는것도 아닐테데
그에 대해서는 단한디 언급도 없고 어쩜 저렿게 태연히 시골 가자 소리가 나오는지..
어이가 없어 한마디 대꾸도 안나오더군요.
게다가 밖에서 기다리면서 남편을 들여보내 저를 불러내도 되는데
신랑 통해 방에 누워있다는거 뻔히 알면서 들어와서는 그옆에 그렇게 앉을수가 있는지..
허기사 첨 만나는것도 남편이랑 연애때 집으로 가서 만낫는데
런닝 바람으로 동생 여친 맞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임신7개월의 잠옷바람으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쓰고 누워있는데서
지가 그러고 앉아있는데 제가 어찌 일어납니까.
가기도 싫지만 시숙이 그러고 있으니 이불속에서 나오지도 못하겠고
내가 왜 이사람과 왜 이러고 있는지 현실이 답답하고 속이 터져 그저 눈물도 안나오더군요.
아무튼 숨이 막혀서라도 더이상 이불은 못쓰고 있겠기에
세수하러 간다는 핑게로 방을 나와 외투 하나 걸치고 그길로 친정으로 가버렸습니다.
글이 길어지니 오후에 다시 올릴까 합니다.
제 글 끝까지 다 읽어보시고 답글 나중에 부탁드릴께요.
저도 이제 이혼을 하던 뭘하던 더이상은 이대로는 못살것 같고
어떻게든 이 한을 풀어서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