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제 24년간 산 남편에게 다시금 적응하느라 너무 힘들어요.
어려운 일도 있었지만 남들이 보면 다 부러워할만하고 나 스스로도 결혼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느데 올해 5월 초부터 완전히 그 생각이 깨졌어요.
대부분의 아내들이 남편을 한 번쯤은 의심해 본 적 있을거라 생각해요. 저도 예외는 아니에요. 3년전 거의 일 년을 퇴근 전에 핸드폰 기록을 항상 모두 삭제하고 온 적도 있었고, 차로 한 시간 거리인 곳으로 발령이 나자 혼자 직장 근처에서 살겠다고 한 적도 있었죠. 결국 집값과 두 집 살림의 부담때문에 포기하기는 했지만요.
그런데 올 4월 부터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얼굴에 반짝이가 묻어있는게에요. 분명 여자 화장품 같았지만 뭐냐고 그랬더니 자기도 모른다고 딱 잡아떼길 3번 정도 그랬는데 5월 4일 밤에는 얼굴에 아주 반짝이로 도배를 하고 왔더라구요. 너무 화가 나서 추궁을 했더니 노래방에 갔고 도우미랑 춤추다가 묻었다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사과한마디 없더군요.
오히려 딴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한 짓도 한다며 그까짓걸 가지고 난리친다고 저를 정신병자로 몰았어요.
평소 전 남편이 점잖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실제 부부간의 정도 좋고, 대화도 많이 하는 부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충격이 컸고 사과하지 않는 모습에 너무 화가 났어요.
다음 날, 너무도 당당한 태도에 화가 나서 결혼 24년만에 처음으로 남편보는 앞에서 밤 10시쯤 집을 나오는데 잡지도 않더군요. 밤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가서 5박 6일을 있었어요. 핸드폰을 꺼 놓고 가끔씩 열어 보았는데 가출 이틀 뒤 딱 한 번만 문자를 보내더군요. 시간이 길어지면 다시 들어오기 힘들거라고...협박을 하더군요. 신용카드로 모텔비를 미리 결제해서 찾으려고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전화조차 하지 않더군요.
그러다 미국에 있는 딸이 알게되어 당장 엄마찾으라고 아빠에게 난리를 치고 결국 남편이 정동진으로 데리러 왔어요. 마음이 다 풀리지는 않았지만 평소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였기 때문에 잘 해보려고 노력을 했지요.
그 뒤 한 달쯤 지나 남편의 터치폰이 잘못 눌러져 남편의 술자리가 저에게 생중계된 적이 있었어요.평소 나이보다 젊게 보이고 제 관리를 철저히 하는 저에게 단 한번의 빈 말로도 칭찬하지 않고 주름살이 어떠니하면서 지적질을 즐기던 남편이 밤 12시에 대리기사를 기다리느라 단 둘이 있게 되자 젊은 여자 회계사에게 오늘 밤 아주 예뻐보인다는 칭찬을 하는 것을 들었어요. 그 여자는 전에 데리고 있던 부하직원이고 전화를 계속 듣자하니 아무한테나 '오빠,엉아'하면서 교태를 부리는 여자였어요. 전 그 때도 너무 충격을 받았고 그 전의 일이 다시금 생각나서 정신과 상담을 받았어요. 물론 남편은 사과는커녕 예의 그 당당한 태도로 일관했지요.
정신과 의사와 상담할 때 제가 여기까지 온 이유를 말하자 당장 남편을 들어오라고 하더니 사과하고 아내의 상처를 잘 다독거리지 않으면 의부증으로 갈 수도 있다고 경고를 하는데도 의사앞에서도 "나는 약과다. 더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느냐"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잘 해보려고 생각한 제가 너무 핑크빛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남편은 제가 알던 자상한 사람도 아니었고 매우 낯선 사람일 뿐이라는...
어쨌든 대학생 아이들 때문에 화도 제대로 내지 못하다가 또 한 달 뒤 우연히 남편과 시어머니의 대화를 통해서 여자들도 나오는 초교동창회를 2년 정도 계속 나간 것을 알게 되었어요. 사실 일련의 사건들이 없었다면 조금 기분나쁘고 말 수도 있었지만 정말 나를 속이고 여자들과 어울렸다는 사실이 화가 났어요.
그래도 이혼할 거 아니면 내 삶을 기준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해서 나이 40후반에 가슴확대 수술까지 했어요. 어떨 때는 대학때 써클 사람들이나 제주도에서 병원하는 옛애인이나 만나볼까, 평소 술을 먹지 않지만 일부러 보란듯이 술먹고 밤 2시쯤 들어와볼까 등등 별별 생각을 다했지만 매일 새벽 기도다니는 저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더군요. 그래서 가슴확대수술한다고 겁만 주려고 했을뿐인데 두어번 뭘하느냐고 하더니 의사친구에게 전화해서 날짜까지 잡고 말았어요.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하나하는 생각에 너무 자괴감이 들었지만 번복하기 힘든 상황이라 수술을 하게 되었어요. 너무 힘들고 아프고, 가슴 작은 것에 컴플렉스도 없던 저였기에 더 힘든 과정였어요.
내가 그렇게 노력을 하는데 남편은 딱 자기만의 기준으로만 저를 생각해주네요. 실제 제가 원하는 건 따뜻한 손길과 말 한마디인데...
무서움이 많아 혼자 못자는 거 알면서 덥다고 혼자 자고..
그러는 남편을 보니 나와 자주는 것이 남편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나하는 생각도 들고, 남편 귀가시간이면 꼭 집에 들어와 기다리던 내 행동도 남편에게는 족쇄처럼 느껴지는 일이었나하는 생각도 들어요. 비만인 남편을 위해 먹는 것때문에 했던 잔소리들도 그렇고..
너무 지쳐요. 같은 공간에 부부로 살면서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것도 생각처럼 쉽진 않아요. 누구에게도 말 못할 얘기라 답답한 마음에 털어놓았어요. 전, 일도 가지고 있고 집에서 살림만 하는 꽉 막힌 여자는 아닌데도 이렇게 사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결혼생활의 정의가 흔들리니 이제까지 내가 옳다고 생각하며 했던 행동을 모두 바꿔야하나하는 생각 때문에 힘들어요.
위로든 조언이든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