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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꾸 화가 나는지...2탄


BY 풍얼이 2010-09-20

왜 자꾸 화가나는지...에 많은 격려를 받았습니다.

 

과거와 화해하지 못해 하루하루 힘든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화해못할 과거얘기를 또 하려고 합니다...

 

 

하루하루 엄마의 히스테리에 난 너무나 지쳐가고 있었다.

 

나이는 29,, 애인도 없다.  친구들은 모두 시집을 가서 아이들 낳고 행복하게 사는것같다.

 

주말이 되어도 만날 사람이 없다.   난 디자인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같은 회사 디자이너는 결혼 5년차 같은 학교 선배였다.  "왜 결혼을 안해? 난 자기 처음 봤을

 

때 일본여자같더라.. 얼굴도 하얗고.. 우리서방한테 친구하나 소개해 주라고 할까?"

 

난  소개를 받았다.   학벌도 없고, 직장도 별로였지만  수도권에 아파트가 한채있다고했다.

 

난 쉬고 싶었다.  직장도 쉬고 싶었고,  엄마의 히스테리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그 남자는  여성틱한 마마보이였다.   170도 안되는 아담한 체구,  말솜씨도 없고

 

취미와 열정도 느껴지지않는 식물같은 남자..심신이 지쳐있는 내겐 아무래도 좋았다

 

엄마는 내가 결혼하는것을 싫어했기때문에 굉장히 미온적이었다.  난 혼자서 혼수를 준비해

 

야만 했다.  냄비와 그릇들을 사러가던날이 기억된다. 엄마는 방에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

 

같이가자고 했지만 혼자가라고 하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남편네 집에서는 아파트한채를 준비했다는 명목으로  예물과 한복을 형편없이 해줬다.

 

종로5가 포목점에서 천을 끊어 재봉하는곳에 맡기는 식으로 한복을 해주었고, 다이아반지

 

는 시어머니가 갖고있었던 알로 세팅만 해주었다. 3부다이아반지였지만 나중에 팔아먹을때

 

19만원 받았던 기억이다.    결혼식이 다가오며 엄마는 자신의 한복을 맞춰야한다며 잔치분

 

위기에 휩싸였다.   경복궁앞 한복연구소까지 가서 맞추려했던 엄마.. 몇백만원을 요구하자

 

엄마는 종각뒷편 주단집에서 50만원짜리 한복을 맞췄다... 딸은  한복두벌에 두루마기까지

 

30만원에 해입었는데...    결혼식날 엄마는 친척을 아무도 안불렀다.  내 결혼에 온 식구는

 

장남, 3남.. 딱 두가족뿐이었다.    친척사진을 찍어야하는 사진사의 난감해하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도저히 정상컷으로는 찍을수가 없어. 사진사는 대각선으로 찍어야만 했다.

 

고졸과 명문대출신의 부부..    내 친구들은 모른다.   친구남편들은 모두 의사 박사 변호사등

 

'사'자 남편들이니...  

 

엄마는 며느리들을 앉혀놓고 딸을 씹어댔다. 그것도 방에서 듣고 있는 딸이 있는데도...

 

다방마담출신며느리는  결혼한달전에 " 고모.. 재취자리가 있는데 시간강사래.  차라리 이 자

 

리가 나을것같애..."라며 염장을 지른다.    그 전에 남편될사람과 놀러간적이 있을때. 잘 만나

 

결혼까지 했으면 좋겠다는둥... 해가며 이 결혼이 깨질까 염려하던 인간이,  혼수, 결혼식,

 

여행등 모든게 다 예약이 완료된 싯점에 전화를 하더니 그러는거다.   난, 오로지 결혼을 위한

 

결혼을 감행해야만 했다.   어떠한 방해가 오던,  어떠한 치명적 사실을 발견된들,  난  12월

 

에 있을 결혼식을 해야만 했다.  그 사이 남편될사람의 우유부단한 성격과 치졸하고 비겁한

 

모습을 봤다.  도저히 남자로서의 자격이 보이질 않았다.  그러나 이 사실보다 더 무서운게

 

이 결혼을 무효화시키고 또 다시 엄마의 히스테리가 있는 집에서  끝나지않는 상황을 다시

 

맞이한다는게 더 끔찍했다.   엄마는 저녁마다  발작을 했다.  자신의 악쓰는소리가 이웃에

 

들린다고  전축볼륨을 끝까지 해놓고 악을악을 썼고,  식탁유리도 몇번이나 깼으며, 유리창

 

도 깨고,  붓글씨를 쓰며 마음을 진정해보겠다고 먹을 갈다가도 먹으로 벼루를 힘껏 내리쳐

 

먹이 두동강이 나고 엄마의 얼굴엔 검정 먹물이 피튀기듯 튀고,,  대문밖을 내다보며, 초조하

 

게 누군가를 염탐하고..  밤에 잘땐 커튼과커튼사이의 불빛조차 싫다며 열개의 빨래집게로

 

커튼을 집여야하고.. 무선전화기의 팥알만한 전원램프조차 신경쓰인다며 밤마다 수건으로

 

덮어야했으며,  소파에 앉아서도 천장의 등불이 신경쓰인다며 달력종이로 테두리를 막아야

 

했던엄마.......그러면서도 과거에 휩싸여 매일 과거사를 들추며 눈이 뒤집혀 발악을 하던모

 

습........... 난 절대로 , 하루라도 빨리 그 집에서 탈출했어야만 했다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에 깔린다는 우스개소리가 바로 나를 두고하는 말이었다

 

신부입장때 면사포가 떨어져서  안좋은 징조를 예감하면서도  난 결혼식을 했다

 

딱 일년이었다.   나에게도 행복하던 순간이... 딱 일년이었다

 

큰애를 낳고  백일도 되기전부터 싸늘해진 남편.  아기 울음소리가 시끄럽다고 같이 잠도

 

안잔게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아기를 별로 안이뻐한다.   이 남자는 마마보이근성이 너무나

 

심하기때문에 자신이 아이대접을 받아야하는줄로 착각을 하며산다... 그 건  바로 시어머니의

 

작품이었다.     시댁에 가면 남편은 자기엄마앞에서 온갖 어리광을 부린다.  사는게 힘들다는

 

둥,  회사다니는것도 지겹다는둥... 여기 와서 주차할때 이웃과 시비가 붙었다는둥.. 세상에..

 

시어머니는 아들의 이런 넋두리를 안쓰러움의 극치로 받아들이며 안절부절안절부절..그러다

 

가  십만원짜리 수표를 뒷주머니에 넣어주며 토닥토닥해주는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나는 어떻게 자라왔는가?  난  태어나면 안되는집에 태어나서 무관심속에 자라왔

 

으며, 외롭게 크지않았던가........   실은  남편집에 처음 인사왔을때 화기애애한 이 집 분위기

 

에  난 점수를 백점을 줬었다.   우리집과 너무나 다른 이 공기는 무엇이지?  하며...

 

결국 시어머니는 징징거리는 아들한테 나 몰래 천만원이 든 통장을 거넨다.  남편은 째째하고

 

조잡스럽기때문에  그 큰돈을 쉽게 아작지못할줄알았다.   왜냐하면 냉장고를 열고 오이가

 

물러터졌다는둥,  뭐가 시들어빠졌다는둥. 해가며 어떨땐 냉동실을 꺼버려 냉동식품이 몽땅

 

녹아버린적도 있었다.    그 당시 나한테 백만원의 월급을 갖다줬다.  그 당시 그 돈은 적당했

 

다... 왜냐하면 집이 있으니까. 그리 큰돈이 들어가지 않을때니까...

 

남편은 시어머니가 준 천만원을 일년조금넘게 만에 다 써버린다.   그리고는 돈쓰는맛을 알게

 

된것이다.   아파트도 시어머니가 사준것이다.   남편은  남한데 개기는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걸 어려서부터 몸에 배었다.  아니..개긴다고 생각도 하기전에 남이 나한테 해주는게 당연하

 

다는것을 배운거였다..   아파트를 팔았다.  2억이었다.  남편은 어느날 청구서를 디민다.

 

천만원을 갚아야한다는거였다.   호텔면세점?  주유소?  알고보니 카드깡으로 쓴거였다.

 

뭐에 쓴거지?    너무 째째하고 십원하나에 벌벌떨면서  도대체 이건??그러나 남편은 자기한

 

테는 후한 그런성격인거다.. 그 뒤로 남편은 뭐에 정신이 나갔는지, 허구헌날 외박에..돈을

 

물쓰듯이 쓴다... 항상 그런식이었다..쓰고나서 청구서 들이미는거.. 그러고는 "내돈 내맘대로

 

쓰는데 네가 무슨 참견이야?"   정말이지 더럽고 치사했다.  그래..아파트는 우리둘이 모아서

 

산게 아니지..네엄마가 사준거지.. 그럼 난 뭐야.. 네가 고졸인거 알면서도 결혼한건 네가 아

 

파트라도 있었기땜에 한건데.. 고졸에 이젠 집도 없고.......매일 이 생각만 들었다

 

난 남편이 도박때문이었는지 여자때문이었는지 몰라도 허구헌날 외박을 하는게 지겨웠다

 

이 인간앞에서 끔찍하게 자살을 할까?  그러면 좀 미안할까? 그러면 아이는?

 

이혼을 하자고 했다.  시어머니가 나서서 그러면 아이를 놓고 나가라고 한다.  내가 아이한테

 

올인하고 있는걸알기때문이다.   하루는 아이를 놓고 나갈까? 하루는 아이는 내가 키워야해..

 

점점 가세가 기울수밖에 없었다.   난  일곱살터울로 둘째를 갖는다.  이 마마보이가 두명의

 

아빠가 되면 철이 들까?싶었다.   사람은 절대로 안변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알겠지만

 

사람은 절대로 안변하는거다.   만삭인 아내가 그렇게 애원을 해도 남편은 외박과 돈을 탕진

 

하는걸 멈추질않는다.      난  이제  젖먹이아기와 초등학생아이둘을 키우며 별거를 시작한

 

다...  이젠 애가 둘이되고보니 시어머니는 이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나더러 맡으라고 한다

 

아니면 고아원에 버리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그 와중에도 아들밖에 없는거다. 별거하는동안

 

남편은 자기엄마와 같은 집 같은방에서 보낸다.   난  갓난아기를 놀이방에 맡기고 일을 다니

 

기 시작한다.   큰애는 아빠가 없는게 마냥 슬픈지(뭘 그렇게 잘해준 아빠라고.. ) 의기소침해

 

지고, 항상 두통을 호소하고,  학교에서도 적응을 잘 못하고.. 병원에서 ADHD진단도 받는다

 

난 그 와중에도 친정에서 콜만 하면 달려갔다.  모든 형제들이 나몰라라 떠나버린 두 노인네..

 

이젠 나밖에 없지않은가? 한시간반거리에 살던 나는 친정에서 오라고 하면 만사제쳐놓고

 

가야만했다.  '엄마 병원가야하니 내일 8시반까지와라" 하면  난  큰애머리맡에 알람을 해놓

 

고 7시전에 집에서 나온다.. 젖먹이 젖먹이며 한손으로 운전해서 가는거다. 가는중에 큰애한

 

테 전화해서 '일어났니.. 상위에 아침먹구.. 20분되면 나가야해.." 

 

친정부모는  알바가 아니었다.  큰애가 혼자일어나 학교엘 가던말던   아기를 품에 안고 위험

 

한 운전을 하고오던말던.........그렇게 난  엄마를 병원에 데리고다니고 입원도 시키고 퇴원도

 

시키고....

 

왜 나에겐 부모도 극단적 이기주의자들이고 남편도 극단적 이기주의자일까

 

왜 나에겐? 

 

별거2년만에 다시 합쳤다.   그후 일년동안 백만원씩 월급이라고 갖다줬다...알고보니 그건

 

현금써비스로 날 준돈이었다!!!   어느날  시어머니가 집으로 들이닥쳐 "이 씨발년아"부터 시

 

작하여 입에 담지못할 욕을 하며  현금써비스로 생활비를 쓰는년이 어딨냐며 난리를 쳐대는

 

게 아닌가....... 그 날 아침 "이따가 엄마랑 누나랑 온대"  "왜?"   그리고나서 30분도 안되어

 

난 심하게 뒷통수를 맞은거였다...시어머니는  "내 아들이 무능하면 네년이라도 나가서 버스

 

라도 몰아야할거 아냐?  내가 버스타고 오는데 여자가 몰더라..얘더러 살림하라고 하고 네가

 

나가서 버스를 몰던 택시를 몰던 하란말야..."하며 악을 쓰는 시어머니,,, 내 말좀 들어보시라

 

고 하면 할수록 더 커지는 욕설... 욕하지말라고 하니,, 뒷머리를 잡고 쓰러지는 시늉에 그 몸

 

을 받치며 엄마엄마..하는 시누..  남편은  자기엄마옆에서 단 한마디도 없이 앉아만 있는다

 

난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라고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버렸다.  누나가 뒤따라나오

 

고........ 남편은 자기집에가서 자기만 살아남기위해 엉뚱한 말로 나 하나를 못된년, 미친년

 

을 만든것이다.   누나의 말을 듣자니   자기동생은 아무잘못이 없고, 내가  다단계에 미쳐서

 

돈을 날리고, 아파트도 팔게되고..그랬다는것이었다........  2년간 별거동안 자기동생은 착실

 

하게 회사를 다녔다는것이다........ 그러나 그 회사는 다 쓰러져가는 회사.. 월급을 주지못해

 

20만원주고나면 며칠있다가 10만원..며칠있다가 30만원..이렇게 월급을 주는 회사였다.

 

하는일은? 영업..  영업도 못해  있으나마나한 사람이었으니........

 

그 날..집으로 돌아오니  누나와 시어머니는 가고 없었다.  난  조용히 남편한테 어쩌겠냐고

 

했다.  아주 조용히...... " 대형면허따서 버스라도 몰께" 

 

남편은 지금 택시를 몬지 7~8년되었다.  절대로 버스는 안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힘들다는

 

것이다.  남편은 나한테 백만원도 안준다.   택시역시 열심히 하지않는다. 

 

신혼초에 나한테 그랬었다.."딱 내용돈벌이나했으면 좋겠다"     "내가 살림하고 네가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     "다세대같은거 지어서  맨 꼭대기층에 살면서 월세나 받아먹으며 살았

 

으면 좋겠다.."    젊디젊은 30대초반의 아저씨입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그리고 남의 덕을 너무 바란다.   그것도 속으로 바라는게 아니다.. 쪽팔리게 겉으로 바랄뿐만

 

아니가 그게 여의치않게되면  화를 낸다.   

 

지금 난 친정에 들어와 치매걸린 엄마와 대장암수술을 두번이나 한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다.    지금 이 집은 아버지가 몇년전 역모기지론으로 매달 얼마씩 받아쓰고있는집이다

 

그동안 엄마의병원비며 아버지의 수술비로 대출까지 받았기땜문에 매달 나오는것도 충분하

 

지않을뿐만 아니라 엄마밑으로 백만원이 들어간다.  우리가 없으면 아버지는 아버지입으로

 

들어가는거조차 해결할 수가 없는것이다.  남편은 지금 초조하다   저 노인네가 얼른 죽어야

 

이 집이 우리게 될텐데........   너무나 보인다..  그러나  내 위로 4명의 형제가 있지않은가?

 

친구들은 나더러 왜 이혼해버리지않느냐고 한다.

 

이혼과 이혼하지않는게  51% : 49% 이다......

 

 

요즘 자꾸만 왼쪽 갈비뼈 안쪽이 뻐근..하다.

 

어떨땐 숨이 안쉬어질정도이다.   몸이 안좋아지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