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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속의 고양이


BY 통통감자 2001-03-15

도심속의 고양이

갑자기 형주가 뭔가를 보며 소리지른다.

> 엄마! 야옹이~ 야옹이~

주차를 시키느라 정신없던 나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내가 도둑고양이라도 치인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끔 아파트 화단에서 어스름하게 휙 지나가는 덩어리 같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아마 고양이 였을 것이다.

혹시~
하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다.

사실 겉으로는 제법 대범한 척 하는 나지만 고양이라는 동물은 무척이나 무섭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쥐를 잡아먹는다는 고양이.
희미한 아이 울음소리 같은 것을 내면서, 앙큼스레 발소리도 없이 스믈거리며 다닌다.
미끄러지듯 ...

에드가 엘런 포우 의 "검은 고양이"를 본 후 더더욱 고양이를 무서워하게 되었다.
흔히 마녀의 친구로 나오는 고양이.
그 고양이가 지금 내 집 앞 화단에 있는 것이다.

한참을 기다렸다가 더 이상 움직이는 무언가를 볼 수 없을 때 차 문을 열고 나왔다.
형주는 아직도 흥분해 있다.

> 엄마~ 야옹이야~ 응? 야옹이~

> 응. 야옹이가 있네~ 어디갔을까? 야옹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이에 맞춰서 불러봤지만 행여 나올까 걱정이었다.
저녁 7시.
많이 밝아지긴 했지만 어둑어둑한게 겁이 났다.

갑자기 아이가 쭈그리고 앉아서 차 밑을 쳐다보며 소리친다.
아마도 고양이가 차 밑에 있는가 보다.
거세게 아이를 밀쳐 멀찍이 떼어내고 나도 한 걸음 떨어져서 차 밑을 보았다.
다친 것 같지는 않다.
단지 내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 싶었다.

> 형주야~ 야옹이가 추워서 나오기가 싫데.
나중에 따뜻해지면 함께 놀자고 하자. 응?
오늘은 깜깜하니까 얼른 집으로 가야지~

어기적거리며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간신히 떼매고 집으로 향하면서, 갑자기 우리집이 1층이라는게 또 다시 겁이 났다.
혹시 열려진 베란다라도 타고 넘어오면 어떡할까.
늦은 밤 울음소리라도 들리면 어떡하지?
나 없는 새 형주가 고양이한테 다가가서 물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별의별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퇴근 후 돌아온 남편에게 이야기 하자 하늘이 무너질까 두렵진 않냐며 시큰둥하다.
자기 어릴적 도둑고양이가 많았지만 사람한테 먼저 해를 끼치지는 않았단다.
알고 보면 불쌍한 짐승이라며 집고양이로 있다가 주인에게 버림받은 고양이들의 후손일 거란다.

매일매일 접하는 흉흉한 소식들.
컴퓨터 게임에 중독되어 할머니를 죽였네, 동생을 살해했네,...
단 돈 몇 십만원에 촌부를 살해하는 사람...
초등학교 선거에서부터 당선되면 게임방 2시간 이용권, 떨어져도 1시간 이용권을 돌린다는 회장후보자의 어머니...
아이들은 하나같이 추한 어른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착한 아이는 바보스런 아이가 되어버린 참담한 현실.

정서가 메마른 도심에서 집고양이도 들고양이도 아닌 도심속의 고양이로 살아가는 버려진 짐승들.
갑자기 허전한 마음이 든다.
나 자신이 혹시 도심속의 고양이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아이가 자라면서 딱딱한 콘크리트벽 안에서 손톱을 웅크리고 몸을 낮추며 살금살금 눈치보며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그림책에서 보는 뽀얗고 예쁜 아기 고양이를 생각하는 형주를 보며 아직은 천사같은 내 아이를 지켜주고 싶다.
부정적이지 않고 믿고 사랑하는 깨끗한 마음을 언제까지 지켜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에게 고향이 필요한 것 같다.
평화롭고 아늑하며 포근한 고향.
신선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고, 흙냄새 물씬나는 그런 곳.
지나가는 들짐승 산짐승도 환한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곳.

날씨가 풀리면 가까운 휴양림에 다녀올 계획을 세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