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조네 사람들'을 쓴 김소진(1963~1997)은 서른 다섯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 지붕 아래 아홉가구가 모여사는 '장석조네 사람들' 이야기는 70~80년대 서울 성북구 길음동 산동네의 풍경과
가난에 찌든 사람들의 깊은 인간미가 그려진 따뜻한 작품이다.
'마당 깊은 집'을 연상시키는 올망 졸망한 이야기들은 내가 지나온 어린시절의 이야기이며 지금은 잊혀진
이웃들을 떠올리게 하는 감동의 드라마이다.
한파가 기승인 어제 남산 자락에 자리잡은 남산예술센터를 찾아보니..여기가 그 유명한 '드라마센터'자리였다.
유명한 연극인들이 거쳐간 그 자리에서 김소진작가를 추억하는 작품을 올렸다는 것이 더 의미가 큰 것 같다.
포스터자체가 일단 유머스럽다. 지루할 틈이 없을 것 같다.
극장안에서 김소진작가의 작품들을 만나고 보니 하나같이 가슴따뜻한 그리움이 몽글거리며 피어오른다.
왜 선량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은 빨리 우리곁을 떠나는가!
남산예술센터는 첨인데 연극을 공연하기에 최적의 극장이 아닌가 싶다. 소극장보다는 크지만 배우들의
호흡이 느껴지고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나기에는 적당한 공간!
왼쪽의 이 사진이 '장석조네 사람들'의 아홉가구의 아이들이다. 가운데에 찡그린 아이 뒤가 김소진작가이다.
오른쪽은 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고.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던 때와 신혼시절의 그의 모습이다.
그의 선한 눈빛이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연극은 아홉가구들의 에피소드를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하여 공연되었다.
양은장사, 실향민이면서 건축업을 하는 아저씨,석탄을 캐다가 폐병에 걸린 장씨등..
고향을 떠나 벌집같은 서울의 산동네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
이웃의 부자집 청기와집에서 반지가 없어지면 가난한 장석조네 사람들이 의심받고
맥아더 신을 모신다는 무당에게 사기를 당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삶은 꿋꿋하다.
무대에 등장한 푸세식 화장실의 셋트가 가장 눈길을 끈다.
예전에는 정말 여러가구 사람들이 이런 화장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 일을 보는 장면이
흔했었다. 아련하게 떠오르는 추억들과 교차되면서 펼쳐졌던 아름다운 무대였다.
오리의 다양한 표정과 행동을 보여주고 무당보조역을 하는등..다역을 소화해낸 여배우가 가장 압권이었다.
지금 그 '장석조네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끄집어낸 김소진작가가 이세상 사람이 아닌것도 알고 있을까.
나도 내 어린 시절 왁자하게 한 울타리에서 살았던 이웃들이 문득 궁금해졌다.
모두 잘 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