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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지심(self critical)이 많은 사람(공유)


BY 미개인 2021-07-28



자격지심(self critical)이 많은 사람

출처 : 변상규 교수..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자기 스스로 지나친 자의식 속에서 자기 비하를 일컫는 행위를 두고

자격지심(自激之心)이 심하다라 말합니다.

자격지심이 많은 사람들의 어린시절은 그닥 행복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늘 부모의 지적질이나 잔소리가 많았을 것이고, 때로는 작은 잘못에 과한 처벌을 받고 자랄 가능성도 높습니다.

자격지심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 내면이 아주 복잡하고 모순되며 이중 메시지적 삶의 구조 속에 살아왔기에 자신이 행복해도 행복하다고 초자아가 비난하고, 불행하면 불행하게 살 수 밖에 없다고 다그칩니다..

그러니 삶이 결코 편안할 리가 없죠.

자존감도 높지 않고 무얼 하나 결정해 놓고도 그걸 지키지 못해 쩔쩔매거나 지킨다고 해도 이걸 내가 왜 지켜야 하나..그런 고민을 하게 됩니다.


청소년 심리를 강의하다 보면 그런 주제가 나옵니다.

가상의 청중(imaginary audience) 이라는 개념입니다.

청소년 시기에는 자의식이 예민하게 발달하는 시기이기에 예로 버스를 탔는데 자기만 서 있습니다.

그럼 갑자기 버스 안의 사람들이 모두 다 자기만 바라보고 있다는 의도된 착각에 빠지면서 긴장이 느껴지면 다음 역에서 내려버립니다. 가야할 역이 아직도 먼데..ㅎㅎ..


청소년 심리에서 그런 가상의 청중을 둔 시기가 있다는 건 정상이지만

이게 오래가면 피해의식과 정신분열로 갈 수 있다라고 하더군요..

저는 빌라에 삽니다. 그래서 주차장이 늘 복잡합니다. 오늘 눈이 오는군요..이런 날은 주차장에

여러 차들이 주차를 하게 되어 아침 일찍 차를 빼달라는 귀찮은 전화가 옵니다.

그럼 저는 잠옷 입은 그대로 나갑니다. 저는 그런 것이 창피하지 않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남자들은 군대라는 곳을 일반적으로 다녀오는데 군대에서는 아무데나 앉고 거칠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다보니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저는 크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강의를 하다 저도 모르게 화장실에서 지퍼가 열린 걸 모르고 강의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눈치를 챘는지 모르지만 강의안을 읽다 보니 어?..지퍼..ㅎㅎ..그래서 슬며시 올리고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강의했습니다.

작년 여름에는 강의를 하는데 분필이 떨어졌습니다..그걸 주으려는 순간..여름 바지가 갑자기 찢어지는(분필을 주으려고 앉는 순간..)

그것도 엉덩이 부분이..정말 아찔했지만..역시 당황하지 않고..

분필 집어들고 책으로 뒷짐지면서 찢어진 부분 가리고 순간을 모면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지만 자격지심은 많이 극복한듯 합니다.

그 이유는 살아보니..어차피 사람 사는게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공중 목욕탕에 가면 다 벗고 있는 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것처럼 사람 사는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즉 높은 사람, 너무 잘난 사람, 권력을 쥔 사람도 다 밥 먹고 응가하는 사람일 뿐 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리고..정말 내가 나를 의식하고 어떤 순간은 수치심을 느끼고 어떤 순간은 죄책감을 느끼지만..

살다보니 의외로 사람들은 그런 나의 행동이나 감정에 그다지 관심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즉 내 마음처럼 저 사람도 무언가를 느낄거야 생각하고 있을거야..이게 다 망상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자격지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본다면 자격지심 있는 사람들이 가장 힘든 건 주변의 시선이 아니라 내면의 시선(Inner eye)이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내면의 시선은 자신의 시선이 아니라! 대부분은 자신을 길러주신 부모의 시선일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모르지 않겠지만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아직도 나이를 먹었음에도 여전히..부모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겁니다.

주체성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상담을 해 보면 의외로 많은 분들이 주체성이 없거나 매우 연약합니다. 자존감도 낮습니다..

그래서 그런 낮은 주체성이나 낮은 자존감을 직업이나 어떤 일을 하는 역할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역할에 충실하면 자신의 주체성이나 자존감이 나아지지 않을까..착각합니다. 착각입니다..

고위 공무원이 되면 주체성이나 자존감이 높아질까요?

낮아진 상태로 있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런 일을 한다하여 자존감 주체성이 높아지거나 형성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그런 주체성 자존감을 높이려면 스스로가 스스로를 억지로라도 격려하고 억지로라도 말을 건네며(자기 스스로에게), 실수했을 적에 책망이나 잔소리가 나오면 스스로에게

"아 자..이제 그만 그만해..비난..실수할 수도 있는 걸 왜 그렇게 비난을 퍼부어 대는 거야? 그만 좀!"

이렇게 자신에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어느 때는 그런 비난이 너무 정당해서 위와 같은 말을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는 스스로 인정하면 됩니다.

"그래 내가 비난받을만한 짓을 한 거 맞네..에고 자 5초만 비난받자. 그리고 다시 회복하는거야!"

마치..자신을 걸음마 하는 아이 다루듯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격려하고 그렇게 가르치라는 겁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 하나..

예전에..외할아버지께서 외할머님이 밥상에 반찬을 마음에 들지 않게 만들어 오시면 확 나가버리신 후

고깃집 같은 곳에 가서 갈비를 은박지에 싸오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밥상을 가져오라 하셔서 식사를 하는데 이렇게 말씀하셨죠.

"자 먹어봐 응? 고기는 이렇게 하는거야 이렇게! 아까 해온 게 그게 고기야?'

할머니에게 면박을 주시는 거죠..

그리고 할머니가 고기 한 점을 드시면서 "아이구 맛있네요" 하면..

"그래 맛있지 당신이 좋으니 나도 좋네.." 이러면 좋은데..

"그래? 맛있어? 맛있구먼 응? 맛있어? 맛있는 건 알아가지구" 그렇게 인상을 쓰시면서..면박을 주십니다..

그 씁쓸한 밥상을 저는 슬프게 바로보곤 했습니다....


무슨 좋은 일, 행복한 일이 생기면.."아 행복해 참 좋다" 이렇게 말하고 스스로의 행복에 기쁨과 감사의 감정을 누리면 좋은데..

"아 행복해 참 좋다.."가 나오는 순간 마음에서 툭 이런 말이 튀어나옵니다.

"어이구 행복하니 좋~겠다. 지금 니가 행복할 때니? 응? 너 참 팔자 늘어지게 좋다!"..

저는 이런 음성을 초자아의 음성이라 말하지 않고 악마의 음성이라 말합니다.

이게 악마지 뭐가 악마겠습니까..


저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이런 악마들을 죄다 마음에서 쫓아내 버려야 하는데..

많은 이들이 자기 마음에는 예수만 있지 악마가 있다고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 악마가 부모의 목소리 뒤에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자격지심..그거 그만 좀 하면 좋겠습니다.

그간 살면서 많이 해 봤는데 해서 좋았던 경험이 없지 않았나요..

이제 좀 자신에게 행복을 약속하고 행복을 누리게 하고 행복을 감사할 수 있도록 해도 이제 되지 않을까요..언제까지 그 놈의 악마의 음성에 또 연약한 마음이 다쳐서 고통받아야 하는지..

마음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자격지심에 관한 분석을 잘 해주셨군요!

자격지심,웃기는 겁니다.

변교수님은 부모의 시선이라 말씀하셨는데,뿌리는 거기 있을지 몰라도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전 타인의 시선으로 풀고 싶어요.모든 수십억 명의 시선을 다 의식하고,

그들 모두의 비위를 맞춰야 비로소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부회뇌동엔 천재이면서,정작 중요한 자아추구나 자존감엔 인색하기 그지없는...


우린 누구나 다 소중한 존재들입니다.나만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주 큰 문제지만,나만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존재라 생각하고 자기학대를 일삼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아주 해로운 것일 수 있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말은 최고의 처세술일 수 있습니다!


외롭다,서운하다 남들로부터 관심을 받으려 기를 쓰지 말고,내가 이 소중한 '나'를 사랑합시다.기적이 일어날지도 몰라요.행복해지고,많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고 싶어하는 기적이...


--미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