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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을 위한 섹스


BY 미개인 2022-05-04

*쾌락을 위한 섹스

    by  솜사탕   

https://blog.naver.com/qkdnl098/110080310347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지구 상에 출현했던 최초의 인류가 성교와 출산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 했다는 사실이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왜 그럴까?

먼저 들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는 성교와 출산의 관계는 일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에 두 번씩 섹스를 해도 절대로 임신하지 않는 여성도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최초의 성 경험에서 임신해 버리는 여성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임신의 명확한 조짐은 ,수태 후 몇 주일이 지나서 드러나기 때문에 ,

임신한 상태인 본인의 머리 속에서조차 두 가지의 일이 연결되지 않는다.

게다가 성관계가 인위적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은,

예를 들면 어린아이라든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남녀에게도 

성관계가 금지돼 있지 않은 사회에서는,

성적으로 활발하고 여러 번 임신하는 여성과 비교할 수 있는,

사춘기를 거친 후에도 금욕 생활을 하는 지식이 없는 여성이라는 '대조'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성교보다는 사춘기가 바로 여성을 쉽게 어머니로 만든다는 오해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성교와 임신을 연결지어 생각한다고는 해도 ,남성을 생물학적인 부친이라고 추정하는 것,

즉 자궁 안에서 생육 중인 태아의 반은 

남성 자신에게서 만들어졌다고 이해한다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실제로 페니스의 삽입은 여성의 몸을 열고,

신이나 어떤 영적 존재가 자궁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는 공동체가 

아직까지도 멜라네시아,트로브리안드 제도,중앙 오스트레일리아,아프리카의 일부에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정액,난자,세포의 결합,유전학에 관한 지식이 없는 경우에는 

그런 사고방식이 그렇게 불합리하다고 말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남성이 아기의 아버지라는 사실에 대해서 걱정해야 할 절박한 이유는 없다.

토지 ,가축 ,말,도구,복합 가옥 등 

혼자 힘으로 관리,증식,상속하는 사유 재산을 소유하고 있지 않을 때는,

신생아에 대해서 친권을 주장하는 일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 사회에서 자녀는 하나의 즐거움 또는 완전히 귀찮은 존재일 수 있었지만,

투자 대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따라서 고대의 남성은 남성의 욕망이 일반적으로 여성의 욕망보다 중요하다고 고집할 수는 있었지만,

여성이 남성보다 성적으로 활발하지 않기를 바랄 만한 그럴듯한 이유는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자녀의 혈통에 대한 관심이 관능의 쾌락에 대한 욕망을 능가한 때에만,

적어도 근심에 잠긴 남성의 관점에서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성적으로 활발하지 않다는 사실이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볼 때,

고대의 여성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성의 쾌락에 열중하도록 허락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논리를 지지하는 증거도 있다.

마조리 쇼스택이라는 미국의 인류학자는 

1970년대에 수렵.채집 사회인 쿵 산(Kung San)족의 현장 조사를 하고,

그 부족의 여성들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즉,쿵 산족의 여성들은 호기심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소녀 시대부터 

자신과 다른 아이들의 몸(남자 아이들의 몸 뿐 아니라 다른 여자 아이들의 몸)을 탐색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근대의' 소녀들이 빠질 수 있는 무지와 수치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쇼스택이 문자 없는 사회인 쿵 산족의 여성들에게서 알아낸 사실들을 계속 검토해 보면,

우리들 선조의 성생활에 관해서 상당히 완벽하고 진실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면,우리의 선조들은 상당히 조악한 식사 때문에 

적어도 16세가 될 때까지는 생리를 시작하지 않았다.

따라서 성생활의 상당 부분이 출산과는 관계가 없었을 것이다.

또 자신의 놀이 친구들과 키스를 한다든지 ,애무를 한다든지,서로 손으로 자극을 준다든지 하면서 

놀기도 하고,강제와 규제가 없는 ,그리고 임신의 두려움이 없는 성기 접촉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허벅지 사이에서 처음으로 피가 흘러나오면,이런 자유의 대부분은 끝을 맺게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결혼해야만 한다는 강요를 의미했다.

바흐오펜의 이론이 시사하고 있는 것처럼,

여성들에게는 자녀를,실제로 공격을 받기 쉬운 수유기에는 자기 자신을 지켜줄 보호자가 필요했고,

또 모든 사람이 성적인 질투,폭력,살인의 가능성을 재 도전으로 제한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녀 한 쌍이 결합한 조직이 모든 알려진 사회에서 일반화된 것이다.


~지구 상에 처음으로 암수로서의 남녀가 나타났을 경우까지를 상정해서 

가장 본능적인 성교가 이뤄졌을 경우를 상상하며,

쾌락의 도구로서의 섹스를 생각해 본, 참으로 신선한 의견인 것 같아,

다소 난해한 면과 듣도 보도 못한 족속들이 거론되는 글을 열심히 옮겨 적어 보았다.

그러면서 사춘기 이후 내가 처음으로 발가벗은 여자와 마주했을 때가 떠오르면서 피식 웃기도...

난 강한 성욕에 이끌리어 그녀를 유혹하고,자취방으로 데리고 와서 

난생 처음 섹스를 하려던 것이었는데,당황을 했다.

어찌해야 할지도 모르는 채,이미 경험이 있던 그녀로부터 보지의 각 부분의 기능에 대해 배웠고,

자지를 넣는 부분이 한참 아래에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지만,그리도 꿈꾸던 섹스는 하지 못했다.


아주 어린 아이들은 남녀가 같이 발가벗고 놀면서 이성의 성기나 몸을 보고도 흥분하지 않는다.

내겐 없는 고추가 신기하고,내겐 있는 고추가 없는 정도에 대해 호기심을 갖긴 하지만,

더러는 서로의 것을 들여다 보고 만지며 놀면서도 아무런 감흥이 없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양한 루트로 그것의 존재와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성욕 본능에 불을 지피기 시작한다.

나는 그 시기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는데,

그러고도 10여 년이 흐른 시기까지 막연한 호기심과 상상으로 만족했던 것인데,

막상 기회가 주어졌을 때 어찌할 줄 몰랐던 것이다.

당황했고,부끄러웠다. ;;


하지만 요즘처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적나라한 사진이나 포르노를 접할 수 있는 시대이면서 ,

어려서부터 각자의 방을 갖고 있고,

맞벌이 부모가 하루 중 많은 시간 비우는 집을 마음껏 누리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서로의 집을 오가며 섹스를 하고 있다는 것을 

한 홈페이지의 게시판에서 확인을 하곤,혀를 내두른 적이 있다.

어려서부터 사촌 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당하기만 하다가 ,

성적 혐오감보단 호기심을 더욱 빨리 키우게 된 친구가 

중학교 때부터 오랄 섹스를 즐기게 됐다는 사례도 알고 있다.

그런 그녀가 정작 결혼을 해선 섹스리스로 살면서 힘들어 하다가 일탈을 하게 된 경우도 직접 봤다.


이처럼 아주 어려서부터 자의든 타의든 범하거나 당하는 등으로 노출이 돼 있는데,

의도적으로 방치를 하거나 외면을 하면서 불편해 하기만 하는 기성세대들의 귀차니즘은 

최근에도 명절 등으로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서,남매들의 경우,한 집 안에서 지속적으로 , 

아이들이니 괜찮다며 혼숙을 시키거나 가까이 두면서 위험에 노출 시키고 있다.

그런 자리에서의 불편한 쾌락 추구가 악몽이 되는 아이들이 드러내고 밝힘으로써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이미 그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란 건 알 만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무지해서든,귀찮아서든,불편해서든 외면하고 있던,호기심 천재들의 성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요즘 들어 많아지는 개의 경우를 보면 사람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어려선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장난만 쳐 대던 것들이  얼마간 크면 성기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핥거나 ,올라타서 본능적으로 교접을 하는 짓을 하며 성욕을 해소하려 한다.

낯을 붉히면서 남세스럽다며 때쮜를 하고 말지만,

그것을 내 아이들에게 적용 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부모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똑같은 동물일 수 있는데...

제도권에 성교육을 일임하지만,제도권에서도 이런 동물적 본능을 불편해 하며 외면하고,

시늉만 하는 사이,포르노 등을 통해,성폭력범 등을 통해 아이들은 알아서 배워야 한다.

문란한 성 문화는 어쩌면 가정에서부터 싹트고 있는 것이다.

제도권과 가정에서의 성교육이 활성화 되어야 하고,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이다.

배고프고 졸린 것이 부끄러운 본능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듯,성욕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배가 고프면 먹는 게 맞고,졸리면 자는 게 맞는 것처럼 ,성욕을 채우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이에 맞는,상황에 맞는 성욕 해소 법을 제도권에서 연구하고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토론하려는 사람들에게 딴죽을 걸어선 안 될 것이다.

이는 성담론의 양성화를 외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주장일 것이다.


식욕과 수면욕이 인류 문명을 발달 시킨 것처럼 성욕 또한 음지에서나마 거기 기여해 왔다.

구성애 선생의 '아름다운 우리의 성=아우성'이란 표현처럼,성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을 감추고,음습한 곳에서 곰팡내나 풍기는 걸 당연 시 하면서 추해지고 있는 것이다.

음란해지고,더러워지고,혐오스러운 것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다.

당당히 드러내고 양성화 시켜서,

차마 드러내지 못하고 폭력을 당하거나 가하며 살면서 삶의 가치 자체를 전도 시키고 있다.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인간적 삶이 ,물신을 숭배하는 어처구니 없는 삶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어처구니 없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사탄의 음모에 무기력하게 굴종함으로써,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점점 공허해 하며 ,허탈해 하며 ,행복 지수를 떨어트리고 있다.

만약 성욕을 식욕이나 수면욕처럼 당당하게 드러내고 충족 시키려 했다면 

인류 문명은 훨씬 바람직하게 발달했을 것이다.

쾌락을 위한 섹스를 하는 동물은 인간 뿐이지 않은가!


인간 본연의 정체성을 추구하고,개인적으론 자아 추구에 몰두해야 한다.

자존감을 키우고,완벽한 존재인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냉정한 주제 파악을 통한,'분수껏 삶'에서 찾고 있다.

비교적 자유롭게 식욕,수면욕,성욕을 다스리며 행복하게 주인공으로 살면서 행복해 하고 있다.


   --미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