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섹스,
섹스를 통해 마음과 영혼을 치유한다
글│마크 그레이먼트 / 번역│조하선
섹스는 그것을 대하는 이의 의식에 따라 깊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가슴을 열고, 영적인 각성을 촉진시켜주는 길이 되기도 한다.
서구에서는 지난 세기부터 대중에게 풍미되어온 뉴 에이지 운동과 함께,
고대 인도의 탄트리즘을 현대에 되살려 성적 희열의 고양,
성적인 상처의 치유, 연인과의 친밀도 강화, 영적인 각성의 촉진이라는
보다 고차원적인 목적으로 섹스를 연구하고 배우려는 움직임이 있어 왔다.
이러한 서구인들의 탄트라 연구 모임에 관한 기사가
《요가 저널》지 1994년 5, 6월호에 실렸다.
국내에는 낯선 이러한 시도가
아직은 보수적이고 획일적인 우리의 성문화에 새로운 방향과 인식을
제시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이들에 관한 기사를 소개한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한 가지 테스트를 하고 싶다.
이것은 당신의 성기능 수준,예를 들어, 여자의 경우 얼마나 자주 오르가슴을 느끼는가,
또 남자의 경우는 얼마나 자주 조루 경험을 하는가를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성적인 로르샤하 테스트(스위스의 심리학자 로르샤하가 시작한 성격 검사 방법. 잉크의 얼룩 무늬를 해석하게 하여 사람의 성격을 분석, 검사하는 방법―역주)이다.
즉, 당신의 성적인 태도와 가능성을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려는 것이다.
다음의 장면을 상상할 때 당신에게 일어나는 느낌에 주의를 기울여 보라.
자, 지금 당신은 촛불이 밝혀진 침실로 문을 열고 들어선다.
거기 연인이 기다리고 있다.
만일 현재 애인이 없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이상형인 남성 또는 여성을 상상하라.
먼저, 당신은 조용히 연인과 함께 앉아 명상하거나, 기도하거나,
아니면 단지 주위의 소리에 귀를 열고 고요히 있는다.
그리고 나서 서로 절을 하며 상대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성에 경의를 표한다.
이제 포옹과 키스가 오가고, 그 순간 서로의 목과 가슴, 배꼽, 성기가
가지런히 맞닿고 숨결이 융화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나란히 드러누워 지극히 섬세하게 감각적으로 터치해나간다.
당신의 모든 존재와 사랑을 담아 애무한다.
자각을 유지한 상태로,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느껴지는 신체의
가장 은밀한 속내가 부드럽게 열리도록 서로 돕는다.
상대방의 눈을 깊이 간절히 들여다보며 부드러운 사랑의 밀어를 속삭인다.
열정이 불붙어 감에 따라 서로의 몸을 더욱 격렬히 애무해간다.
이 성교가 성스러운 행위라는 깊은 확신을 잃지 않은 채로.
여기에는 잘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따위는 없다.
성취하려고 애쓰는 특별한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흥분이 고조돼감에 따라 서로의 성 기관을 통해 강력한 에너지의 흐름이 연결된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가슴으로 올라와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다시 성 기관으로 떨어지게 된다.
설령 성교가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지속된다 하더라도 둘 사이의 에너지는 계속 넘쳐 흐른다. 가슴으로부터 끝없이 솟아나는 사랑의 샘처럼.
사이사이에, 모든 분리감이 녹아버리고 만물과 하나 된 느낌이 밀려온다.
자, 이 삽화에 대한 당신의 반응이 어떠했는지 잠시 생각해 보라.
성적인 열정과 영적인 체험이 나란히 등장하는 것이 불편하거나 당혹스러웠는가?
아니면 당신도 직접 이와 유사한 절정감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가?
당신은 아마 얼굴을 붉히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이 모든 것들을 어리석은 뉴에이지적 환상으로 치부해 버리려 들지 모른다.
“요즘 세상에 이런 식으로 사랑을 나눌 시간이 어디 있어?
직장 다녀야지, 부업 해야지, 집안일 해야지, 애들 돌봐야지….
우린 저녁 때가 되면 얼굴 보고 잘 자라는 인사할 기력도 없을 정도로 녹초가 돼버리는데.”
당신의 반응이 어떻든지 간에,
많은 경우 섹스와 영성이 한 호흡 속에 녹아들면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확실하다. 이는 육체를 부정하는 기독교적 가치관의 전통이나 ‘내 말을 따르라, 내 행동이 아니라’라는 일부 동양 구루들의 이중적인 태도에 그 원인이 있다.
성(性)과 영(靈) 사이에 견고한 고리를 만들어 보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간들에게는 모두 생식기가 있고 대부분 그것을 사용하지만
우리의 성생활에 대해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데는 어려움을 느낀다.
심지어 절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일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성에 대해 극도의 혼란과 갈등을 겪게 되고 영적인 가르침에서 피난처를 찾는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는 늘상 성을 완전히 멀리 하라는 충고를 듣게 된다.
물론 전체 문화 속에서 성과 영 사이의 분열은 훨씬 더 극단으로 치닫는다.
성의 혁명, 여성운동 등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성이라는 것은 대개 고독과 욕정에 기인한 단순한 육체적 접촉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다. 거기에는 진정한 정열도, 친교도, 마음도 담겨 있지 않다.
우리의 본능적인 성 충동 속에는
서로를 분리 시키고 있는 장막을 거두려는 욕구가 숨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처 받기 쉬운 부분을 드러내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좋은 파트너, 흥미로운 체위, 더 나은 성 보조용품, 더 짜릿한 성적 환상을 찾아다니기에 바쁘다.
영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영적인 가치관, 마음, 성(性),
이 삼자를 조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누구보다 절실히 느끼고 있다. 한 여성은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나는 약 12년 동안 요가 명상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성에 대해서 만큼은 그렇게 진지한 태도로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자유분방하게 살기가 어려웠습니다.”
반대로 한 남성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명상을 아무리 많이 했어도, 성적인 충동에 사로잡히면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곤 했습니다. 옛날 수컷으로서의 습관과 욕망이 되살아나곤 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성이 의식의 높은 차원으로 가는 문이 될 가능성을 엿보아 왔다.
사람들은 성행위 중에 절정을 맛보게 되는데,
그 순간 모든 분리감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느낀다.
또 성적인 갈망에는 보다 고귀한 목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느끼기도 한다.
게오르그 포이에르스타인은 자신의 저서
『신성한 성 Sacred Sexuali- ty』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성적인 사랑은, 보통 사람들이 일상의 경험 영역을 초월하는 합일에 이르는 가장 강렬하고 직접적인 길이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 섹스는
영적인 실재를 향한 감추어진 창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성스러운 섹스’라고 하는 것은 공허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그 실례(實例)를 찾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성적인 좌절과 정서적인 불안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사랑을 주고받는 가운데 따뜻하고 원기를 북돋워주는 꽤 만족스러운 관계를 갖기도 한다. 사십 대 중반의 한 여성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남편과 제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우리는 사랑하고 있어요.
아직도 매주 부부 관계를 갖고 있고요. 또 함께 매일 명상도 하죠.
하지만 그가 몇 분 만에 오르가슴에 도달하고 나면 나는 그로부터 버림받는 기분이 돼요. 며칠 동안 남편을 잃어버리게 되죠. 물론 남편은 저도 오르가슴에 도달했다고 믿고 있어요. 그러나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성에는 그것 외에 뭔가 더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아요.”
의식적인 사랑의 기술
인기 저술가이자 워크숍 리더인 찰스와 캐롤린 뮤어 부부는
성교에 쾌감 이상의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다고 믿는다.
뮤어 부부는 신성한 성(性)으로 다가가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것을 그들은 ‘의식적인 사랑의 기술’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탄트라(tantra)로 일컬어지는 고대의 영적인 가르침을
현대적으로 적용하여 서구화한 것이다.
마고 아난드, 데이비드, 엘렌 람스데일 등과 같은 유명한 탄트라 교사들과 함께, 뮤어 부부는 성은 신성한 것이고 성교는 성스러운 행위이며 그 궁극적 목적은 자아 실현이라는 계몽 운동의 선구자이다.
뮤어 부부는 이렇게 가르친다.
“탄트라의 핵심은 우리의 모든 의식과 사랑을 침실로 끌고 와 성행위를 단순한 성기의 만남으로부터 존재의 모든 차원,육체, 감정, 마음, 영 등에 영향을 미치는 확장된 명상으로 변화 시키는 것이다.”
뮤어 부부에 따르면 사람들이 섹스에 대해 혼란에 빠지는 이유는 진정한 지식을 갖춘 전문가들로부터 성의 신비를 배우지 않고, 여성잡지, 성인용 책자, 떠도는 소문들, 극히 개인적인 체험들로부터 조금씩 긁어 모으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의 제약과 이 분야에 대한 공식 교육의 부족이 합쳐져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스운 곤경에 처해 있다.
우리는 성적으로 사랑을 느끼는 법도 주는 법도 모른다. 그리고 열정과 친교를 어떻게 적절히 혼합하여 사랑을 만들 수 있는 지도 모른다.”
뮤어 부부에 따르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무지한 정도가 아니라고 한다. 우리는 과거 성적인 체험들 속에서 상처를 입어왔고 심지어는 악용되기도 했다. 그러한 고통의 기억은 우리와 함께 침실로 들어오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마음과 생식기를 갈라 놓는 법을 배우게 된다.
진정한 사랑을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섹스 행위 만을 가질 뿐인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완전한 성적 기능을 회복하기에 앞서 우리는 탄트라의 행법을 통해 이 분열을 치유해야 한다고 한다.
찰스 뮤어는 이렇게 설명한다.
“관계를 맺는 다른 의미 있는 방식을 찾으려는 현대의 커플들에게
탄트라는 중요한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부산물로서 과거 성적인 트라우마(심리적 충격)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 탄트라에서는 성적인 편견과 과거의 경험들로부터 연유된 부정적인 인상들은 두 번째 차크라(스와디스타나 차크라, 성性센타)에 저장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성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첫 번째 단계는 의식의 빛을 두 번째 차크라 속에 비추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무엇이 문제의 원인인지 알 수 있다.
“두 번째 차크라를 성적 기억들이 저장된 방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상상하라. 당신은 등불을 높이 들고 그 어두운 방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방 안을 거닐며 그 안에 놓인 과거의 모든 일들을 들여다 봄으로써
개인적 장애들을 극복하도록 하라. 매번 등불을 들고 들어갈 때마다
당신은 조금씩 어둠을 제거해갈 수 있게 된다.”
뮤어 부부의 지적에 따르면, 의식의 빛과 낮은 차크라의 어둠 사이에 놓인 이 분열은 탄트라를 수행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많이 거론되는 문제라고 한다.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인생 여정은 이에 대한 적절한 사례가 될 것이다.
탄트라 교사가 되기 전에 찰스는 널리 인정받는 하타 요가 교사였고
스스로도 영적인 성취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980년 결혼 생활이 파경에 이르고 독신 생활로 돌아가게 되면서
그는 감정적인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자신의 성적인 이중성과 대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직업 적인 생활 면에서 나는 모범적인 요기였다.
그러나 성생활에 있어서는 옛날 방식 그대로를 연출하고 있었다.
나는 침실에서도 요기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알고자 결심했다.
그러나 그런 표본이 되는 사례는 많지 않았다.
나는 이미 내 마음과 가슴을 정화했고
요가 행법을 통해 호흡, 에너지, 집중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하위 차크라들에 대한 수련의 필요성을 느꼈다.”
운명처럼, 특별한 힘을 지닌 여성들이 차례로 뮤어의 삶에 나타나 ,
성적인 탄트라 기술을 가르쳐 주며 그를 치유해 주었다.
그밖에도 그는 당시 영어로 번역된 탄트라 책들을 섭렵하며 그 내용들을 실천에 옮겼다. 그는 차츰 하위 차크라와 상위 차크라의 조화에 성공을 거두어 갔고 자신이 배우고 있던 것을 제자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타 요가에 대한 열정 또한 잃지 않았고 탄트라 워크숍에서 계속 가르쳐 나갔다.
“뮤어 부부가 가르치는 가장 강력한 테크닉들 중에는
남자가 사정을 억제한 채 성 에너지를 돌리며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을 할 수 있는 행법이 있다.
이 과정을 마친 남자들은, 정열이 한 성교 시간에서 다음 시간까지
지속되면서 연인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끊이지 않았다고 보고한다.”
성적인 치유
뮤어 부부가 가르치는 수련의 핵심에 에너지 체험과 계발이 있다.
그들은 그것을 하타 요가에서 인용한 아사나(자세)와 호흡법을 혼합한 일련의 행법들을 통해 가르친다. 섹스는 단순히 두 개의 몸을 부벼대는 행위가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 활력을 얻을 수 있는 에너지의 교환이다.
전통적인 탄트라의 관점에 의하면 우주는 양극(兩極) 에너지의 게임이다.
(남성신 시바는 순수한 의식, 여성신 샤크티는 순수한 에너지이다.)
그리고 성교는 샤크티 또는 쿤달리니를 끌어올리는 데 이용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적인 각성의 과정을 촉진 시키는 것이다. 뮤어 부부는 이러한 관점을 보다 인간적인 목표에 적용하여, 성의 양극성에 의해 생성된 에너지를 친밀한 관계의 유지, 발전, 고무에 이용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쓰고 있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차이점은 파트너십에 긍정적인 힘으로 이용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점들을 적절히 배합 함으로써 연금술 적인 반응을 일으켜 이른바 ‘에테르’를 생성 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들이 활력을 찾고 관계는 날로 새로운 색깔과 생명으로 넘치게 될 것이며 당신과 연인 사이는 사랑으로 충만해갈 것이다.”
정열은 관계의 영 속에 중요한 요소라고 뮤어 부부는 말한다.
그들은, 관계의 지속을 원한다면 정열을 발전시켜나가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커플이 성관계의 횟수를 줄이면 사랑도 그만큼 빨리 식어간다.
사랑은 연인들이 뿜어내는 성적인 에너지에 의해 키워진다.”
그러나 이 성적인 에너지가 꼭 성교와 관련되어질 필요는 없다.
심지어 흔히 전희라 불리는 것과도.
예를 들어 바쁜 커플들에게는 하루에 최소 10분 씩
상호 에너지 교환과 조화를 위한 행법이 권유된다.
뮤어 부부가 가르치는 가장 강력한 테크닉들 중에는 남자가 사정을 억제한 채 성 에너지를 돌리며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을 할 수 있는 행법이 있다.
이 과정을 마친 남자들은, 정열이 한 성교 시간에서 다음 시간까지 지속되면서 연인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끊이지 않았다고 보고한다.
한 남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테크닉을 배우기 전에 나는 성에 대한 어떤 기피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욱 그랬죠.
왜냐하면 섹스를 한 뒤 에너지를 회복하려면 며칠이 걸렸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제 나는 파트너에게 계속 끌리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항상 사랑에 빠져 있는 거죠.”
상대가 오랫동안 성행위를 지속시킬 수 있다고 확신할 때,
여성의 마음은 편안해지며 남자의 사랑에 수용적이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깊은 성적인 감정에도 문을 활짝 열게 된다.
뮤어 부부의 워크숍에 다 년 간 참여해온 한 여성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파트너가 사정을 억제하자 그의 존재로부터 남성다움이 느껴졌고
내게 잠재된 여자로서의 힘을 체험하게 되었어요.
나는 남성과 여성의 조화에 대한 근원적인 인식을 얻게 되었고,
오늘날 성차별 문제의 치유에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섹스가 인생에 활력과 충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연인들이 깨닫게 되면 섹스는 훨씬 더 매력적이 되고 파트너 사이의 관계 또한 새롭게 된다.
찰스 뮤어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우리는 이 창조적인 성 에너지를 오직 한 길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래로, 외부로 움직이고 있고 아기를 생산해낼 뿐이죠.
탄트라에서는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성 에너지를 위로, 내부로 움직여 자신을 새롭게 하고 재창조하라고.
우리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 에너지를 운반하는 채널을 열어
몸 전체로 흐르게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 힘에 놀라워 하며,
그것이 단순히 섹스에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창조적 용도를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되죠.”
워크숍의 서두에 뮤어 부부는 부끄러움, 두려움, 망상 등
현대 문명이 던져 놓은 진창으로부터 성을 건져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어 워크숍 첫 날, 그들은 생식기에 대한 새로운 명칭을 가르쳐 준다.
여성의 생식기에 대한 명칭은 요니(yoni)이다. 그것은 인도어로 ‘성스러운 우주(공간)’라는 뜻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 의미에 걸맞게
그것을 대해야 함을 배운다. 캐롤린이 여성들에게 말한다.
“놀랍지 않나요. 우리 몸에 성스러운 우주를 품고 있다는 게!”
마찬가지로 남성들에게도 성기의 관습적 표현 대신 링감(lingam)으로 부르도록 함으로써 어깨를 으쓱거리게 만든다. 링감은 ‘빛의 봉(棒)’이라는 의미이다. 워크숍의 후반에 뮤어 부부는 남성과 여성이 사랑을 발산하고 ‘성스러운 우주’와 ‘빛의 봉’을 서로 존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행법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성에 대한 부정적인 관습과 잘못된 성적 만남의 결과
축적되어 온 수치심과 아픔을 치유하게 된다.
커플들은 성교 시 상대방을 남신과 여신, 즉 신의 화신으로 존중하도록 가르침 받게 된다. 워크숍의 중요한 순간에 이르면 뮤어 부부는 남자와 여자를 두 그룹으로 분리한 뒤 그들에게 완전한 현재에 존재하는 법과 각자의 연인들을 신성한 성적 존재로 주의 깊게 대하는 법을 가르친다.
워크숍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이 이벤트는 푸자(puja)라 불린다.
사람들은 극히 정갈한 옷을 입고 두 개의 서클을 형성한다. 남자들은 외부원을, 여자들은 내부원을 이룬 뒤 마주 보며 천천히 돌면서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사랑과 보호의 샘을 길어 상대의 상처에 향유를 발라 준다.
행법 중에 예를 들어 이런 것도 있다.
남자가 은혜로운 성부(聖父)의 모습을 한 채 가여운 여성의 상처에 치유의 파동을 보내는 것이다. 푸자의 다음 단계에는 남녀의 역할을 바꾸어 반대 상황을 연출한다. 또 다른 행법으로 남녀가 야비움 자세(yabyum position 여성이 남성 위에 걸터 앉는 자세)로 앉아서 사랑의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이 있다.
이 때 그 에너지는 일종의 자각의 회로를 이루게 된다. 여성은 날숨을 쉬면서 에너지를 자신의 가슴으로부터 남성의 가슴으로 보낸다. 한편 남성은 들숨을 쉬며 그것을 받는다. 그리고 남성은 날숨을 쉬며 에너지를 두 번째 차크라를 통해 여성의 두 번째 차크라로 보낸다. 또 여성은 들숨을 쉬며 그것을 받는다.
푸자가 진행되는 동안 유명한 뉴에이지 뮤지션인 소피아가 음유시인처럼 천천히 그룹을 돈다. 기타를 자유로이 튕기고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속삭이던 목소리들이 어느새 부드러운 흐느낌으로 바뀌어 간다.
그즈음 의식(儀式)은 친밀감이 더해지며 참가한 대부분의 남녀들은 모두 눈시울을 촉촉히 적시며 환한 빛을 발하게 된다.
푸자에 이용되는 행법들을 통하여 뮤어 부부는 남녀에게 서로를 위한 성적인 치유자로서의 역할을 할 기회를 제공한다.
두 성 사이에서 갈등(심지어 폭력으로까지)이 심화되는 오늘날
이 작업의 가치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이 치유 교환의 하이라이트는 성점(聖點) 마사지이다. 이것은 과제처럼 매일 밤 워크숍 후반부에 행해진다.
성점(sacred spot)은 서양의 성과학에서 달리 ‘지-스포트(G-spot)’로도 불리는데,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아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여성의 성감대이다. 그것은 여성의 질 앞 벽, 치골 바로 뒤에 위치한다.
처음 만질 때는 아플 수도 있지만 자극을 받게 되면 강렬한 느낌이 촉발된다. 뮤어 부부에 따르면 이 성감대는 종종 한 여성의 과거 성적인 체험과 제약으로 인한 수치심, 두려움, 아픔 등이 저장된 암실과 같다고 한다.
반면 이 암실은 비밀스러운 보물들-강렬한 질 오르가슴과 여신 쿤달리니 샤크티를 일깨울 수 있는-로 가득찬 광대한 창고이기도 하다.
이곳으로 들어가서 보물들을 얻을 수 있는 열쇠는 사랑하는 파트너의 부드럽고 기술적인 터치이다.
어떤 여성들에게 있어서 이 부분은 아플 정도로 민감하기 때문에 성점 마사지는 지극히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행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남자들은 침실을 사원으로 바꿔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게 된다. 남자들은 침실을 꽃과 향으로 성스럽게 단장하고 성자와 같은 자세와 태도로 연인을 대해야 한다. 여성들에게는 연인의 보다 깊은 손길을 허락하도록 고취된다.
어떤 여성들은 성점에 대해 난생 처음 들은 경우도 있는데 이런 때는 먼저 혼자 그곳을 터치해 보게 한다.
한 여성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심리 요법을 수 년 동안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성점 마사지를 파트너로부터 받음으로써 비로소 유년 시절의 성적인 체험으로부터 받은 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여성은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나는 내 성생활의 문제점을 파악하게 되었어요. 바로 희열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 했던 거지요. 성점 마사지 행법은 내게 용기를 주어 이 모든 놀라운 느낌들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어요.”
상기한 여성들에게 있어서 이 행법은 변화를 불러오는 체험이 되었다. 그것을 통해 그들은 오래된 성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에너지의 깊은 원천과 만나게 된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확장된 성적 치유 여행의 시작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첫 반응이 어떻든, 대개의 커플들은 정기적인 성점 마사지가 새로운 차원의 잠재된 오르가슴을 차츰 해방 시킨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 행법이 가져다 주는 쾌감의 증진과는 별도로, 오르가슴은 실제로 여성을 활력에 넘치게 하고 충전시켜 준다고 뮤어 부부는 주장한다.
“남성과 여성의 샤크티는 상보적인 에너지이다. 남성이 자신의 성 에너지를 컨트롤 함으로써 힘을 얻는다면 여성의 에너지는 해방을 통해 향유된다.”
뮤어 부부의 워크숍에서 가르치는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함으로써 커플들은 이 샤크티 에너지를 순환 시키고 나누는 것을 배우고, 그렇게 하여 서로 활력을 얻는다.
뮤어 부부의 설명에 의하면, 남성들에게 있어서 네거티브한 성적 인상들은 두 번째 차크라만큼이나 가슴에도 많이 박혀 있곤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남성을 위한 치유에는 종종 친교에 마음의 문을 열게 하고 자유로이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가르치는 것들이 포함된다.
뮤어 부부는 이렇게 덧붙인다. “남자들 또한 거듭되는 퇴짜로 상처를 입어 왔다. 그러므로 여성은 사랑을 통해 한 남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틴트라를 공부하는 30대 중반의 한 여성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하나의 문화로서 미지의 신성한 성의 영역 속으로 여행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에 우리는 이 실험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요법가로서 나는 질병이 종종 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가장 깊은 상처는 종종 가장 높은 각성으로 이끄는 문이 되죠.
우리의 가장 깊은 상처는 바로 성(性)입니다!
[출처] 섹스를 통해 마음과 영혼을 치유한다|작성자 태일진군
~놀랍지 않은가?
성이,섹스가 이리 성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
누가 몰라서 안 하나?알지만,
물신을 숭배해야 하기 때문에 못 하는 것 뿐이지~하는 사람들도 많을 줄 안다.
단순히 성욕 배출 행위로 여기고,
그마저도 귀찮아 후닥닥 서둘러 배출하는 자위로 대체하고,
부부는 그저 서로의 편리를 위한 도구 쯤으로 전락을 시킨 채
섹스리스로 살아가는 부부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그럼으로써 행복해지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점점 더 불행해지고,불안해 하며,두렵다며 점 집을 들락거린다.
물신을 숭배하느라 성을 사고 파는 현장에 스스럼없이 뛰어들어
인간성을 잃어가고,정신을 황폐화 시키고 있다.
남자와 여자를 구분할 것도 없이 남녀 공히 그러고 있다.
그나마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현 제도 상 불륜이란 것을 누리며 사는데,부작용이 적지 않다.
그런 무리들을 노리고 편히 살려는 꽃뱀과 제비들이 득실대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우주'와 '빛의 봉'을 외면하고 시궁창을 들락거리며 돈을 버리면서 몸과 마음을 병들게 만들고 있다.
죽기 살기로 일을 하고 ,아부를 하고,불법을 저질러 가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고 벎에도 늘 불행하기만 한 이유가 여기 있다.
주제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실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나 자신과 내 처지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꾸준한 자아 성찰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모색해야 한다.
분수껏 삶으로써 공연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자존감 갖추기 훈련이 필요한데,
사람들은 끝없이 몰아치는 '사탄'들의 꼬드김에 휘둘려
레밍쥐처럼 사탄들의 지시봉만 보곤 나락으로 치닫고 있다.
빚을 져서라도 비교 우위에 서거라,
생존 경쟁이 중요하니 자아 성찰 따위는 개나 줘 버려라,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 아니냐,
돈을 빌려줄 테니 부지런히 쓰고 갚는 악순환의 고리에 뛰어들거라...
빚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빚의 노예임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 경쟁적으로 빚을 지며 살아가고 있다.ㅠㅠ
내가 최근 인용한 문구 중 '부채를 지배하면 모든 걸 지배할 수 있다.'는,
물신숭배교의 교주의 교지인 걸 아직도 모르겠나?
우리는 섹스를 통해서 태어난 존재들이다.
그리고 섹스를 통해 기쁨을 얻고 ,생명 창조라는 위대한 일을 해내고 있다.
그런데 그 성스러운 섹스를 폄하하고,비루한 것으로 치부하며,시궁창에 처박아 대고 있다.
무궁무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신성한 성역인 성을 근엄하게 대하자.
섹스를 하기 전에 의식을 치르듯 마주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감사하고,
서로 존중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나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조심조심 성스러운 서로의 몸을 사랑하고,정신을 사랑하며 ,
그것에서 최대한의 기쁨과 의미를 찾아내려 애써야 할 것이다.
샥띠님을 통해 탄트라 요가에 대해서 알아가면 갈수록 점점 매료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슬슬 은퇴를 생각해야 할 나이에
새로운 도전 과제를 설정하고 설레고 있는 나란 존재,
아흔이 훨씬 넘은 연세에,나는 아직도 젊고 멋진 여자를 보면 설레신다며,
아직 젊음을 강조하셨던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이성을 보고 설레면 안 늙은 것이고,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이성을 보고도 시쿤둥하면 늙은 것이란 당신의 가치관을 내세우셨었는데...
100세를 다 못 사시고 가신 할아버지의 아쉬움을 내가 이뤄서
나중에 저승에서 만나면 '이렇습디다'하고 알려드리려
살짝 디스크가 삐져 나온 요즘도 운동을 쉬지 않고,
섭생 등을 주의하며 건강 관리에 애쓰고,
꾸준히 이성들과의 만남을 가지며 감각이 무뎌지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유전자 자체가 그래서 그런 걸까?^*^
'남성이 자신의 성 에너지를 컨트롤 함으로써 힘을 얻는다면
여성의 에너지는 해방을 통해 향유된다.'
압권 아닌가?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는 것도 염두에 두길...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얼마간의 순발력과 응용력을 발휘하면
지상 최대의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걸 잊지 말길...^~*
성점이라 표현된,G-spot을 ,어렵지만 꼭 찾아서 개발하고 즐기자고 권유해온 것도,
구성애씨의 '오르가즘은 부활의 행위'란 말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만드는
참 좋은 글을 소개할 수 있어서 흐뭇하다!
참!질 전정의 G-spot을 찾는 건 어려울 수 있지만,내가 '웅웅스팟'이라 명명한,
여성이 누운 상태에서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고 손가락을 삽입한 다음 고부르면 닿는,
내 경험 상 따로 개발하거나 자극하지 않아도
지스팟을 찾아서 자극했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오돌톨하게 부풀어 있는 곳을 자극하며
커닐링거스를 겸하면 지스팟 자극과 흡사한 기쁨을 얻을 수 있으니 ,
거기서부터 즐기며 차차 지스팟을 찾고 개발하고 즐겼으면 좋겠다.
사실 지스팟을 찾아서 개발하는 덴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기에
지레 포기를 할 수도 있으니...
하지만 웅웅스팟이 좋다고 거기 멈추지 말고 지스팟,꼭 찾아내길...
--미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