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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안에 서린 안개.


BY 2006-05-29

늦으막히 출근 도장을 찍었습니다.

토요일..

초하루라..절에 올라갔지요.

그리고 절의 보살님에게 무엇을 부탁 받았습니다.

\" 동생이 마음을 못 잡아요..어쩌면 좋지..

  근데 이사간 후 더 그런거 같어..애들도 자꾸 병치레 하고..\"

\" 심해요?\"

\" 심하지..밥도 안 먹고..아무래도 우울증 같애..보살이 좀

  봐 줄래요?\"

심란했다.

괜히 가서 마음자리 더 심란하게 하면 어쩌나..

\" 시간 괜찮으면 오늘 가자..집 앉은 자리도 좀 봐주고..\"

손을 꼭 잡고 말을 하신다.

\" 그럼 보살님 월요일날 가요. 저 오늘은 쬐끔...\"

이렇게 해서 오늘 갔다.

전주 동생이 온다기에 부지런히 서둘렀다.

 

사람의 기운은 참으로 이상하다.

이를 감지하기까지 무한한 시간도 흘렀지만,

느끼는 나 자신도 참 신기하다.

집을 들어서는 순간 어지럽다는 생각이 든다.

공황상태라고 해야 하나..

발이 땅에서 떨어지면, 들 떠 나도 모르게 멍한 기분..

꼭 그랬다.

집안은 엉망이다.

청소를 언제 했는지도 모르겠고, 쓰레기 냄새에..장 위엔 

먼지가 뿌연 것이 아내의 체취를 느낄 수 없었다.

아이들 머리는 산발이고..들어선 우리가 민망했다.

같이 간 보살님이 민망한지 자꾸 잔소리를 늘어 놓는다.

\" 괜찮아요. 보살님..\"

나도 왠지 뻘쭘하다.

이야기 들을 준비가 안돼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돌부처에게 말을 하는 거와 같다.

돌부처는 웃기라도 하지만..사람은 묘해서 그 기분을

오며 가며 느껴야 하니 무척 어렵다.

\" 좀 앉을래요?\"

중국 음식을 시켜 먹고, 찌꺼기가 마른

식탁에 앉았다.

\" 아이고 미안해서..\"

보살님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 보살님 애들하고 저쪽 방에 가 계셔요\"

눈치채고 보살님이 애들을 데리고 들어가신다.

다짜고자 본론으로 들어간다.

\" 사는게 재미 없죠. 죽고 싶죠.\"

쳐다 본다.

\" 언니한테 들어 사주 풀었어요. 남자도 있고..\"

피식 웃는다.

\" 당신 참 답답해\"

\" 이혼 할 수 없나요?\"

\" 이혼하면 뭐 하게..애들은 어쩌고..\"

\" 남편주고 그냥..\"

\" 어리석긴..지금 그 남자 흘러가는 남자야.\"

그래도 머리속엔 남자만 있다.

\" 남편이 재미없지. 남편이 아무래도 매력이 없지.

  허구헌날 왜 내가 이런 남자를 만났을까 생각하지\"

\" ...\"

\" 남편 언제 왔다 갔어요?\"

\" 어제요\"

\" 봐요..00씨 내가 만약 남편 이었다면 그대 가만두지

  않았을거 같애. 집 꼴이 이게 뭐고, 애들 꼴이 저게 뭐야

  남편이 오랜만에 왔으면 집이라도 청소를 해 놓고,

  먹을 거래도 해 놔야지..\"

\" 저 지금 너무 힘들어요\"

\" 힘들어? 힘든 줄은 아니? 뭐 때문에 힘드니?\"

\" 가세요. 왜 와서 난리예요\"

\" 지금 힘든거 보다 이혼하면 열배쯤 힘들어

  그리고 후회해. 애들 눈물 바람 만들고..\"

\" ...어쩌라고\"

\" 고비가 다 있어. 자기가 보고 있는 세상이 그게 전부

  인줄 알지만, 그 다음 세상을 보란 말야. 자기와 남편이

  헤어지고, 애들과 모두 흩어진 다음의 현실을 보란 말야 \"

괜 팔 안으로 얼굴을 묻는다.

\" 요즘 고물상에 웨딩촬영한 것들이 하루에 두벌씩은 들어

  온데..이건 우리집 가까운 고물상 아저씨가 해준 말이야

  그게 돈으로 치면 얼마고 그 걸 찍기까지 서로 웃었던 시간,

  공들인 시간이 얼마야..근데 몇해만에 고물상으로 들어 온다면

  ..이건 상상만 해도 아찔하지 않아?\"

...

운다.

남편이 무능했고, 애들은 둘 있다.

시집 올 때 가지고 온 쌈지돈을 다 털어 썼고, 전처럼 돈을

쓸 수 없다.

살림을 모르는 것이다.

이 궁색한 살림을 몰라도 한 참 몰랐다.

돈이 펑펑 생기는 줄 알았고, 좋은 옷에 좋은 것만 먹고 살 줄

알았다.

이젠 부모님도 돈을 주지 않는다.

그러니 이제 둘이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남자도 있으니 쉬운데로 가면 된다.

 

왜 사나..어른 맞나..성인 맞나 말이다..

고비가 왔는데 고비를 넘길 재간이 없는 것이다.

지금 이런 부부 밉지만, 꽤 많다.

 

말을 늘어 놓고, 실갱이를 하고, 둘이 아웅다웅 싸웠다.

이게 옳고 저게 옳고..

사실은 누가 옳은 것은 없다.

그저 속앓이 하던 알갱이을 풀어 놓자는 것이다.

 

하고 나면 시원한 기분도 있다.

그다음은..

집을 치워야하는 이유.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이유.

그리고 자기를 다스려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따진다.

시간이 많이 간다.

 

기운이 참 빠진다.

집의 기운도 얼 빠진 뭐 같은데..거기서 정신을 차려려 하니

힘들 수 밖에..

 

만남을 다음으로 하고 동생을 만나러 갔다.

\" 언니 왜 그렇게 부웠어. 기운도 없어 보이고..\"

\" 기 한날은 그래\"

 

그렇게 말을 어물쩡하게 넘어 갔지만, 맘은 아직 콩 밭에 있다.

 

사는 자리가 심의 자리가 어리숙하다.

눈에 서려 있는 안개..

그 안개의 저편은 아직도 회오리바람으로

젊은 시절을 갈가 먹는다..

이 작은 시작은..

또 하나의 슬픈 사연을 만들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