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이맘때면 여지 없이 제 입에서 흘러나오는
흥얼거림 입니다.
쌀을 씻다가도...걸레를 빨다가도...배 깔고 누울때도..
막내딸 안고 노래 부르다가도...그냥...봄만 되면..
이 노래가 먼저 선수를 칩니다.
흩...날...리...더...라...
꺽어지는 끄트머리가 멀리 멀리...내 마음의 무엇인가를
풀 듯...멀리 멀리 아주 멀리 날아갑니다.
\" 왜 이렇게 마음이 그런지 모르겠어..\"
요즘 제가 알고 있는 여자분들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럼..전..\" 봄이라 그래요...\"
봄이면 움이 트고 싹이 돋아나는 시기로..
활동력이 많아서 몸에 싹을 틔운다..생각하세요.
머리속도 변화가 생기고...몸의 흐름에도 변화가 생기며..
최종으론 감정의 폭이 깊어져 나도 모르게 눈물도..
생각도..설레임도 많아지므로..
감정 조절을 스스로 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기가 사계중
여자들에겐 봄이 제일 위험하지요.
봄의 마음은 쇠도 녹이는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춘정이 가장 무서운 시기예요.
그냥..왜 이렇게 심난할까?
아..봄이라 그렇구나!
이런 마음으로 있다가 톡톡히 그 값을 한 이야기 하지요.
\" 돌집이 있는데 같이 가줘요\"
일요일날 있었던 일 입니다.
\" 꼭 날 모시고 가야겠어?\"
\" 꼭 같이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탄진까지 가려면 날 좀 도와줘야 하지 않겠어요!\"
\" 그래!..알았어..\"
전날밤 잠자리에 들어 가슴 한복판이 아프다고 엄살을 했어요.
저야 봄날이 오면 그런줄 알지만..
남편이야 정말 아파서 그런줄 알고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거
아니냐고 안스러워 하더군요.
\" 그럼 모셔다 드려야지..\"
군말 없이 동행해 줍니다.
음력의 춘삼월은 속일수가 없습니다.
하늘도 땅도 그 먼 어느곳도 모두 제 빛들이 고와지는 시기죠..
그래서 나도 고와야 하는데..난 아직도 회색빛인거 같고...
아..심난하여라..
남편에게 이런 제 맘을 이야기했어요.
뭣이 남자라는 소관이 알겠어요만 그래도 이 남자...
들어주는 연습은 잘 되어 있지요.
신탄진길...춤추 듯 날아 일을 다 보았지요.
집으로 다시 가는 길에...남편이 다른 길로 들어서네요.
\" 어디로 가요?\"
\" 대청댐으로 드라이브 가지..\"
어머..왠일이야..
나무의 봄싹은 무슨 구름이 걸쳐져 있는 듯 여린 새순이
내 맘을 유혹합니다.
그러다..문득..
\" 당신 나랑 결혼한거 후회 없어요?\"
이렇게 시작한 이야기가 오락가락 이야기가 길어집니다.
\" 그때 00랑 결혼했으면 좋았을 건데..
지금처럼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박신되는 친정집...어쩔땐 나도 염치가 없지요.
쉬고 싶어도 쉴수가 있나..소소한 일은 감나무 연줄 달리듯하고..
작은 것에서부터..큰 것까지...
생각해야 하는 이 사람의 짐은 말을 하지 않아 그렇지..
얼마나 무겁겠어요.
그러니..한켠으로 길게 늘어선 버거운 구름은 내 베일에도
쬐끔은 깔려 있는 것은 사실 이었어요.
늘 미안함 같은거..나랑 결혼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힘들지 않아도 되지 않겠나..뭐 이런 따위들!
그렇다고 뭐..내가 못한것도 없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이쯤의 불편함 정도는 서로 감싸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 아니야...
그러던중 남편이 이러는 거예요.
\" 난..그 어떤 여자하고 살았어도 지금처럼 이렇게
살았을 거야. 00이나...00 누구랑 살았어도 말이야..\"
(참고로 00는 옛날 여자들의 이름임)
갑자기 너무 많은 상실감이 밀려왔어요.
그래..당신에겐 내가 그렇게 특별한 여자가 못된단 말이지..
그래..당신은 이렇게 사는게 포기내지 그냥 어쩔 수 없이..
그래..그랬구나..내가 뭘 잘못 알았구나!
결은 나나 다른 여자나 별반 다를게 없는..그저 어쩔수 없이
사는구나!
눈물을 울컥 올라오면서 묘한 여자의 감성이 날 장악하더군요.
그래..그랬단 말이지..
그 좋은 드라이브 코스가 구불거리는 비포장 같았어요.
멀미가 나면서..
내내 말을 안했지요.
남편은 금새 내 감정의 변화를 느낀듯 했어요.
왜..이러지.. 그랬겠지요.
살며서 손을 잡는 거예요.
획 뿌리치며..
\" 아 싫어...만지지마..\"
\" 왜..그래..\"
\" 말하지마...\"
눈물이 나요..손수건으로 찍었어요.
\" 눈에 뭐 들어갔어?\"
....
그인 만회하려고 애써 보지만..
내 맘은 아무말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랬단 말이지..
당신...난 당신에게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었단 말이지..
건들어진 감정선은 이상하게 이성적이지 못했어요.
오는 길 마트에도 들렸는데..주차선에 주차도 하기전에 내려..
휙..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카트만 밀고 마트 안으로 들어 갔어요.
근데 이 남자 뒤를 따라 올줄 알았는데 안오는 거예요.
그래..그럴줄 알았지..보지마..기다리지마...
너 왜 그렇게 유치하니..잉잉..
물건은 안보이고..그와 있던 이십여년의 세월이 막 흘러가요.
카트가 흘러가듯..내 마음도 무겁게 흘러갔어요.
덜컹덜컹...카트만 부딪치고..
내맘도 부딪치고..
대충 담아 있는 곳으로 오니..운전석에 고개를 폭 떨구고
자는 거예요.
한참 보았어요.
그리고..쿵쿵 문을 두들겼어요.
취한 잠을 추수리고 내리더니..
\" 한참 찾았는데 어디 있었어..\"
못 들은 척 내 자리로 홀딱 가서 앉았어요.
짐은 알아서 치우라구..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그 밤 열한시가 되어 남편과 이야기를 했어요.
\" 당신 정말 나랑 이렇게 사는게 싫어?\"
\" 무슨 소리야..\"
\" 왜 그런 뉘앙스의 말을 뱉냐고...친정집도 그렇고..
무슨 ...나랑 산 것이 그렇게 ...\"
뭐 어쩌고 저쩌고 말은 했는데..
사실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나오지 않고..
괜히 이것저것 붙혀서 요지 없이 중얼거리고 있다는
것을 나도 느꼈어요.
\" 그래서...도대체 당신이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어\"
\" 다른 여자랑 살았어도 이렇게 살았을 거라며..\"
\" 그래..\"
\" 나랑 사는게 특별하지 않고..그냥 다른 여자나..나나..
같애?..\"
(아..챙피해..본심이 들어나 버렸다)
그냥 당신은 특별한 여자야..나에게 있어서..
뭐 이런 종류의 립서비스를 원했는데..
원하는 말이 아닌 엉뚱한 말이 흘러...
감정폭이 깊어졌지요.
\" 그럼 당신은 내가 다른 여자랑 살면서 찢어지게
가난하고..못 살았으면 좋겠어? 이렇게 평범하게
이렇게 보통 사는거 처럼 살았을텐데..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네..\"
\" 아니 .. 아까..말 할땐 그런 뉘앙스가 아니었어\"
\" 허..참..난 뉘앙스 같은 유식한 말 모르고..
당신 머리속를 모르겠어..난 평범하게 이렇게 사는 것이
좋고..잘 살고 있구만..뭘 어떻게 했다고..혼자 찢고 까불고
그러는가..그만 말 하자구..\"
엉..이게 아닌데..
아..그때야 정신을 차렸어요.
이 남자는 사는 것 하나를 말한 것이고..이 다중의 인격체는
친정도 집어 넣고..내 감정도 집어 넣고..뭔가 특별한 것도
집어 넣어..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했던 것이예요.
오해를 더욱 증폭시킨 것 나 자신이었지요.
\" 그래서 나중에 이혼 하려면 애들을 다 주라고 한거야..
왜 이혼하게..참..아무것도 아닌 말 한마디로..
우리 결혼 생활을 깰 수 있는 당신 머리 대단 하십니다..\"
꽝..
승용차 안 열두시를 넘겨 한시가 가까이 가면서..
우리의 실랑이는 여기서 끝났어요.
그리고 다음날 내가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어요.
그런 뜻 인줄 몰랐고..이것저것 내가 너무 많이 생각했다며
미안해요..그렇게 문자를 보냈지요.
남편이 그랬어요..살면 살수록 당신이 좋고..
애들이 좋고..우리집이 좋다고..맛이 생긴다고..
왜 이 말은 쏙 빼먹었냐고 묻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남편과 아내의 차이점은 여기에 다 들어 있는거 같애요.
남편과 아내의 방편은 역시 대화입니다.
솔직한 대화..비비꼬지 말고..그냥 있는 그대로..
술술 풀어서 이야기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작은 오해들로 인해..더 많은 구업을 짖고..
그 말로 인해 돌아가고 싶어도 못가는 경우가 참 많아요.
그리고..나를 가만히 돌아보며 그 당신의 내 모습을
보는 관법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사과를 할 것이고..
그 사과는 얼었던 마음을 풀어주는 중요한 도구 입니다.
한 낯에 벌어졌던 부부의 이야기는 지나간 일요일에
다시 묻혀 버렸고..더욱 중요한 사랑만 동동 떠서
나를 즐겁게 합니다.
부부의 궁합의 봄바람과 같습니다.
더운 듯해 옷을 벗으면..그 추위는 살을 빠고 드는 것처럼..
편한 듯 해서 하고 싶은 대로 했지만..
사실은 그 하고 싶은 내면의 마음들이
추위만큼 상대를 얼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
봄에게 좀 배워야겠어요.
연분홍 치마 솔솔 흩날리며..
나는 어디로 갈까..
내 님..그 님은 어디에 있나..
....아직도 나의 님을 찾아 오늘도 나는 씨름을 합니다.
허전한 봄바람 탓에...
꽁지가 이리흔들 저리흔들...
여태 내 봄은 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