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길..첫눈을 맞으며 서울역을 걸었습니다.
서울역 언저리에 가랑잎이 힘차에 뒤집기를 하며
추위의 을씨년 스러움을 살 속까지 채웁니다.
그래...내가 지금 서울이다..
언제 또 이날를 걸을 것이냐..
정사일의 이날을 말야..
날은 추워도 맘에 온기 있으니...
금새 영화속 주인공처럼 처벅처벅 걸었습니다.
마음은 맹랑해도 살속에 냉기는
여전히 입김을 품어 내더군요.
\" 본 서방은 띠격띠격 했어 근데..앉은 자리..그것도
어디 저기..뭣 배우러가서 알게 된 사이라..그 놈이
어메 내 남자 아니야...일사천리로 바람나서 나가는 거야
속명 야반도주..그럴수 밖에 없지 앉은 자리에 본 서방처럼
떡 버티고 있으니까....\"
맹렬히 말하는 명리학의 대가는 나를 또 흥분 시킵니다.
오우..선생님..어쩜 그렇게 말씀을 잘 하세요.
명리학은 드라마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를 구사합니다.
세상이야기가 다 드라마적이긴 하지만..
동지섣달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할머니가 들여 주시던
이야기처럼 ..
\" 결론은 남편 잘 섬기고 애들 잘 키우고..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아라...\"
서로 박실거리며 웃고 떠들다가 제가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패딩 차림에 부시시한 스타일...짙은 눈썹...그리고 아무지게
다문 입술..
간단히 목례를 한 다음 아무런 말 없이 컴 옆으로 가
\" 선생님..이거만 하면 되지요\"
\" 그려..\"
내 눈은 그 청년에게서 뗄 수가 없었습니다.
\" 이선생님..인사해..\"
\" 아..네..\"
\" 00 야 인사해..대전 이선생..\"
\" 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
\" 아..그래요..저는 초면 이네요\"
철없는 여자의 마음이 살짝 흔들립니다.
이렇게 인사를 하고 나서도 마음이 가라 앉지 않습니다.
앉은 자리에 또 다른 서방을 본 여자처럼 말이죠..
훗..
책방 사장님이 이런 내 맘을 알았는지..
어디 철학과 출신이구요..
명리학 꽤 잘 하구요..
조금..있다가...저기 해인사 갈거래요.
\" 해인사!\"
규율이 엄하기로 소문난 해인사 문하로 들어가신다..
앞으로 스님이 되는 것이 꿈이라 합니다.
오우..
갑자기 가슴 한복판에서 두 방망이 질을 합니다.
그래..저 짙은 눈썹이 무엇을 할 줄은 알았지..
네 식견도 만만치는 않네..
두런 거리는 시간속에 모든 일정은 끝이 났고..
그 총각과 나는 둘이 한 방에 있게 되었습니다.
\" 언제 가요?\"
\" 글쎄..기축년 쯤에나..\"
\" 왜 가요..\"
웃습니다.
아..손님들이 나에게 와..말을 할때 내가 웃으면 이런
기분이구나..
좀 알듯 모를 듯한 마음..
\" 신통력을 얻으려고 가는 것은 아니예요.
그건 능력일 뿐이지..깨달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깨달음이란..얻는 것도 없고..얻을 것도 없는
순수 자연의 상태...\"
비범한 그 청년의 마음은 절 압도 합니다.
\" 원래 그렇잖아요..거지가 다음생에는 부자로 나올 수도 있고
부자가 마음 잘못 쓰면 거지가 될 수 밖에 없는 이런 윤회
속에 살잖아요..깨달음이란 이 모든 것을 초월한 것일거예요
공부는 무조건 하면 되잖아요..먹는 것도 자제하면 되잖아요.
근데..깨달음은 깨닫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수행 했다고 해서 다 성불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머리카락이 바짝 섭니다.
\" 우주의 에너지가 있어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음을 암시하고
사는 것 같아요..명리학도 만찬가지 잖아요.
누가 그렇게 힘들고 구차하게 살고 싶겠어요..
근데..모두 그렇게 살잖아요..업이라는 것에 의해서..
그럼 그 업을 누가 만들어 놓았냐..자신이라고 하지만..
분명이 부처님은 모두 부처의 본성을 가졌다라고 했거든요\"
일갈 하는 폼이 내가 점점 쪼그라집니다.
업은 사실 없습니다.
업이 있다고 믿는 것도 우리고..그 업에 의해 회전..윤회하는
것도 우리입니다.
그러나..그 깨달음을 얻지 못해 방황하는 것도 우리입니다.
이 청년은 그 깨달음을 알고자 무안한 날을 편하지 않게
고뇌하며 느끼며..배우며 살았을 것입니다.
이맘 참 잘 알지요.
이년도..늘 한켠에 싹트는 마음 이므로..
\" 머리..몸..이거 아무것도 아니지요..마음이지요.
명리도 공부만 하면 안 되잖아요..마음이잖아요\"
참..아름다운 청년입니다.
한참..물욕과 입신을 꿈 꿀 나이에 삶을 조후하고..
그 삶을 리더 해 나가는 그 모습이 어쩜 그렇게 다른지
나도 모르게 흠뻑 빠져 들었습니다.
새벽 두시반부터 우유배달을 한다고 합니다.
물론 혹자는 이 모든 것이 이상한 시선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전 이 청년의 마음에 있는 본성이 무엇인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명리학의 대가들도 그를 참..아름다운 청년이라
칭하는 것이겠지요.
법의를 입지 않더라도..
사는 것과 지금의 현실과 욕심과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나름대로 정리된 자아를 발견한다면 그에게 눈길을 준
제가 참 고마울 것 같습니다.
눈 오는 길에 술취한 행인들 틈에서..
비록 현실과 동 떨어진 세상을 이야기 하지만...
사실은 가장 가까운 우리들의 이야기 입니다.
남편과..제가..
아이들과..제가..
이웃과..제가..
그리고 이 많은 인연의 고리에서...
다들..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생저생...끝없는 광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