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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글) 내 약사친구


BY 슬픈의사 2000-08-09

** 내 약사 친구


내겐 고등학교 일학년때부터 거의 이십 년 간 가장 절친한 약사 친구가 있다

왜 약대를 가려고 했는지 물어봤던 기억도 없고
그 친구가 왜 자신이 약대를 가려했는지 말했던 기억도 없지만

하여튼 그 친구는 내가 본과 삼학년에 올라가던 그 해에
어엿한 약사 면허증을 소지하고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 친구가 햇병아리 약사로써 처음 약국에 취직을 하고 거의 몇 년간
난 바쁜 학교생활과 인턴, 레지던트 생활로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다만 가끔 만나면 푸념을 널어놓았다.
'남의 약국에 취직해서 담배 팔고 공중전화 잔돈바꿔주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그 이후에는 이런 말을 했다
'카운터가 나보다 월급도 더 많고,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해서
정말 자존심 상해서 못해먹겠다
그리고 약국장(약국 주인인 약사)도 카운터한테는 함부로 못하고
나한테만 뭐라그런다....'
이런 류의 푸념이었다.

내 상식으로 이해가 안가 물어본다
'도대체 카운터가 뭔데 월급도 약사인 너보다 많이 받고
약국장이 싸고도냐?'

친구는 한숨을 쉬면서 카운터는 면허는 없지만 오랫동안 약국에서 일한
노하우로 약국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소위 '상담'을 해가며
비싼 약들과 한약들을 무지막지하게 팔아댄다고 말한다
카운터 한사람의 매출이 거의 하루에 수십 만원에서 수백 만원에
육박한다는 거다

'그러니 나같이 배운 대로 약파는 사람이 양심상 그사람수입을
따라갈 수 있겠냐?'하고 말한다

그리고 몇 년후 그 친구가 말한다
'약국장이 내 면허를 대여해 달라고 하는데 어떻할까?'
난 입에 침을 튀기며 말한다
'그게 말이 되냐? 당연히 그러면 안되지. 그거 불법 아니냐?'

그 친구는 또 한숨을 쉬면서 말한다.
면허 대여는 일반적인 이야기고
대부분 집에서 놀고있는 약사뿐 아니라 취직 약사도 자기 면허 대여해주고
대여료 따로 받고, 자신은 취직해서 또 월급 받는다고...

당시 나는 인턴과 레지던트 생활을 하는 동안 한달 백만 원도 안 되는 월급으로 생활하고있었고
그렇게 몇 년이 흐르는 동안 내 친구는 거의 일억에 가까운
저축을 갖고 있었다

그래도 난 한번도 그 친구를 부럽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내 직업에 대한 회의를 한 적도 없다.

가끔 내게 전화해 질병이나 약에 관해 물어보는 그 친구에게
설명을 해주면서도, 난 약사의 진료행위가 불법인줄도 몰랐다.

그러면서 또 몇 년이 흐르고 그 친구네 집으로 놀러갔을 때 식탁 위에 수북히
쌓여있는 약통들에 놀라고 말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약이냐?'

'영양제도 있고 비타민 제제도 있고 또 내가 아침에 얼굴이 자꾸 부어서 이뇨제도 먹고 그런다'

잉????
이뇨제라고????

내가 비록 의사지만 수년간을 이비인후과 환자들만 봐와서 그런지
이뇨제? 자신 있게 못쓴다. 과하게 사용하면 심한 탈수와 몸의 이온농도에 이상이 생겨 생명에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메니에르씨 병에 쓸 때도 있지만 여러 가지 검사 중간중간 해가면서 쓰고
외래환자에게 처방낼때는 환자를 더 자주 외래에 오게끔한다.

그런 이뇨제를 수년간 먹어왔단다.
이뇨제 먹고나면 붓지도 않고 몸이 좋단다
그 친구 결국 콩팥에 물주머니도 있고 기능도 안 좋은 상태였다.

얼마전 그 친구랑 전화를 하면서 집에 아기 보는 아줌마가 자꾸 어지럽다고 해서 철분제를 줬더니 좋아졌다고 자랑처럼 이야기한다.

또 잉???
어지러운데 철분제를???

그 날은 내가 침튀기며 말했다
'야 너 빈혈 가진 사람 중에 어지러움증이 나타나는 사람이
몇 퍼센트나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도대체???'

이러다가
의약분업 문제까지 나와서 더 침튀기며 싸웠다

그 친구도 열받아 말하기를
'야 의사들이 맨날 골프 치러 다니면서 월수입 사백만원 된다고
데모하는게 말이나 되냐??
대체조제 하지 말라는데 우리나라 실정상 그게 말이나 되냐?
그 약을 어떻게 다갖추냐?
오리지널만 처방내면 제약회사 다 망한다 망해..'

그러다가 힘빠지며 하는 말
'지금 의약분업 안하면 융자내서 약국 늘린 데는 다 망한다..'


차암나....... 나도 열받아
' 야!! 너 나 골프치는거 봤냐???
다 사백만원 벌라니 무슨 공산국가냐??
실정상 안 맞는데 왜 말도 안되게 의약분업 하냐??
밀가루 같은 약 만들어내는 제약회사 망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리고 누가 약국 늘리라고 부탁했냐??
지들 돈 더벌라고 하는 짓이지...'

하여턴 갸도 나도 논리도 없이 소리지르다가
'우리 이제 의약분업의 의 자도 꺼내지 말자'
로 결론지었다.


그 친구 복약지돈지 먼지 한다고 몇 개월 동안 서울대 의대 교수가 하는 먼 강좌를 들으러 다녔다.
그리고 수년 전에는 한약사 면허 딴다고 한약 배우러 다녔다.

내가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은 내친구를 험담하기 위해서가 절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밝힌다.

우리나라 약사들의 실정이 그렇다는 거다
자신의 건강도 그런 식으로 돌보는 약사들에게
어찌 대체조제와 임의조제의 위험성이 먹혀 들어가겠느냔 말이다.

도대체 똑똑했던 내친구가 그런데 어떤 약사를 믿고 처방을 낼지...

지금은 약사들의 건강도 우리 의사가 사명감을 가지고 지켜줘야 하고
그들에게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줘야할 것 같은데

하여튼 그 망할 놈의 '오래된 관행'이라는 것 때문에
우리 모두가 고생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