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얘기나 쓰기에 글이 하나 올라있다.
딸을 8명 낳고 끝트머리에 아들을 하나 낳은 아줌마이야기가 테레비에 나오는것을 보고 화가 나신 분의 글이다. 옳은 분노와 혐오이다. 어떤 분이 그 글에 달아주시기를, 진짜 분노와 혐오는 낳아논 8명의 딸이 아니고, 세상에 나오지도 못하고 지워진 8명의 딸이라고 하신다. 그 역시 지극히 옳은 말씀.
난 엉뚱한 꿈을 꾼다.
이따위로 사회가 돌아갈바에는, 아예 각각 부모의 정자와 난자를 꺼내놓고, 인공수정으로 아들 하나, 딸 하나씩 공평하게 분배를 해줘버리는것이 어떨까. 그야말로, 공상소설에 나오는 인간 생산 공장의 스토리가 되어버린다. 이런 끔찍한 생각까지 하는 내가 병인가, 나를 이런 생각까지 하게 만들는 사회가 병인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부계사회의 병패다.
이런한 병패는 모계사회에서도 존재한다. 몇몇 남아있는 모계사회에서는 딸을 가지려는 노력이 사회 전반에 있다.
인류학적 시각에서, 아들을 가지려는 노력, 딸을 가지려는 노력은 단순히 인간이란 지능높은 동물의 본능적 생존경쟁에 지나지 않는다.
간단히 말을 하자면, 나는 이 세상을 살다 가버리고 말지만, 나의 분신을 남김으로써 나의 존재를 이세상에 영원히 두려는 생물학적으로 고차원적인 욕심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의 영속성이 DNA이라는 생화학적 물질로 가능하다는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식의 성 --the last name--으로 자신의 영속성을 확인하다.
농경사회를 벗어난 한국사회를 비롯한 부계사회에서 이미 노후보험, 공짜 노동력의 의미를 잃은 아들이 아직 그토록 대우를 받는것은 자신의 성을 전할수있는, 즉 자신의 존재를 영원히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인간의 안타까운 욕심의 상징성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성--the last name--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진정한 의미의 남녀평등은 이루어질수 없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을 다같이 쓰자는 그 사람의 의견을 난 별로 탐탁치 않게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난 길고 복잡한것 보다 짧고 간편한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고려사회.
고려 초기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충 딸은 어머니의 성을 받고 아들은 아버지의 성을 받았다고 한다. 난 좋다.
내가 꿈꾸는 사회는 딸은 어머니의 성을 받고 아들은 아버지의 성을 받는 사회이다.
나를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고 하던 나의 남편조차 헛!헛!헛! 코웃음을 치던 꿈을......... 나는 꾼다.
엉성한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