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동 그女子
p13
1. 걸물 신입생
내 기억으로 김덕만(金德萬)의 첫 인상이 어떠했냐 하면 틀림없는 군밤장수였다. 이것은 입학시험 때의 일이다. 그때 다른 사람들은 아마 그를 학교 소사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대학에 입학한 해는 1963년이다. 그때만 해도 난방시설이 좋지 않던 때라 우리가 시험을 치르는 교실에는 난로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석유나 구공탄 난로가 아니라 조개탄을 때는 난로여서 교실 안도 손이 곱을 정도로 추웠다. 조개탄 난로는 사람손이 많이 가야 따뜻한 법인데 학교 당국은 그 점까지는 신경을 쓰지 않아 걸핏하면 난로는 화력이 없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첫날의 오후 시험이 시작되기 전이었을 것이다. 체격이 우람하고 얼굴은 세수를 며칠째 거른 듯한 꾀죄죄한 사람이 그 난로불이 잘 피도록 손을 보는 것이 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시험이 시작되자 그도 자리에 앉아 시험을 치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때 그를 보고 '군밤장수 같은 사람이 시험을 보는군'하고 생각했었다. 그는 시험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해서 난로를 손봤기 때문에 주의력이 산만해서 그도 수험생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사람들은 아마 그를 소사로 착각했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그를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에 주의하기 바란다. 그는 그해에 고교를 졸업한 애숭이는 물론 아니었고 몇년 묵은 재수생이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재수생처럼도 안 보였다는 의미이다. 그는 틀림없이 밤거리에 리어카 위에 가스등을 켜놓고 밤을 구워 파는 군밤장수 같았다.
그가 합격했다는 것은 면접 때 과 연구실 앞에서 보고 알았다. 그는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조금 떠드는 편이었다. 그때도 물론 그는 시험치러 올때 입었던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옷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반코트형의 다우다 잠바였는데, 원래 싸구려 옷인데다 몇년을 입었는지 낡고 색도 바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는 1963년을 기준으로 하면, 그때는 장발족이 없었을 때니까 이유야 어쨌든 반년쯤 이발소에 가지 않은 머리라는 게 옳을 것이고, 얼굴은 역시 세수를 며칠 거른 것같이 꾀죄죄했다. 그래서 그때 나는 '게으른 놈이군'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합격자 20명 가운데서 친하게 지낼 만한 놈은 그뿐이라는 것도 그때 동시에 생각했었다. 다른 녀석들이야 뺀들뺀들한 서울놈이거나 피도 안 마른 애숭이든지
아니면 나머지는 계집애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입학식날 보니까 그는 신사로 돌변해 있었다.
그러나 말이 신사이지 대단한 멋쟁이가 됐다는 것은 아니고, 그의 용모가 시험치던 날에 비하자면 훨씬 깨끗해졌다는 것인데, 우선 이발도 했고 얼굴의 때도 벗겨졌으며, 더욱이 말끔한 교복을 입고 있어서 군밤장수 티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체격이 좋아서 교복은 그에게 썩 잘 어울렸다.
입학식도 끝나고 수강신청에 분주할 때, 과 연구실 앞에서 그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 왔다. "니도 불문과 신입생이쟤?""그렇다." "난 김덕만이다. 고향은 부산이고 2년재수했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그러냐. 난 신청원(辛淸源)이다. 고향은 광주고, 1년 먹었다."
"전라도 광주 말이가?" "그래, 전라도 광주다." "그럼 하숙하는 기가?" "그렇다.넌?" "난 마포에서 자취한다." 아마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을 것인데, 이것이 말하자면 우리들의 교분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곧 수강신청을 하려고 같이 어울려 교무과의 과 연구실을 서너번 왔다갔다 했고 점심때가 돼서는 내가 자장면을 샀다.
그날 받은 인상은 그는 활달한 편이었고, 가정은 넉넉지 못하다는 정도였다. 그리고 좀더 먼 곳의 사람을 볼 때는 째려보는 눈이었는데, 그것은 그가 고약한 성질을 가져서가 아니라 눈이 나쁜데도 안경을 안 썼기 때문이었고, 나이 먹은 신입생인데도 꽤 들떠 있는 것으로 보아 순진한 사람이라는 인상도 받았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마주 보면 그의 눈동자는 굉장히 맑았다. 마치 어린애들의 그것 처럼 티 하나 없는 눈동자여서 나는 그의 마음도 그 눈동자 처럼 고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소설가를 지망하고 있다는 것도 아마 그날 알았을 것이다.
점심을 먹을 때 그는 그것을 나에게 밝혔던 것 같다. 고교생 대상의 어느 문학콩쿨에서 장원을 했다는 경력을 그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것이 기억난다. 강의가 시작되어 학교에 다니면서 차츰 알고 본 그의 가난은 상스런 말로 하자면 '똥구멍이 찢어질 정도'였다.
고교를 졸업한 해에 무일푼으로 부산에서 단독으로 상경하여 2년을 서울에서 살았다는 그는 흔히 지방에서 상경하는 재수생들은 상상도 못한 생활을 했다. 학관은 그 문전에도 못 간 것은 물론이고 처음에는 노동판에 뛰어들었고 그 다음 생활비의 유일한 수단은 아르바이트였는데 아르바이트 길도 막히면 시립노동자합숙소에 들어가 숙식을 하며 다시 노동판에 뛰어 들었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전쟁영화에서 총을 맞고 무더기로 죽는 엑스트러로 출연하여 밥값을 벌기도 했다는 말도 한 것 같다. 그는 그런 이야기를 할 때도 유쾌하게 껄껄 웃으며 말했다.
단편적이긴 하나 그의 과거에 대한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난 뒤 나는 우선 그를 입지전적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왜냐하면 솔직히 말해서 무엇보다도 그의 2년간의 서울 생활은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입장을 바꾸어 내가 가난 때문에 서울로 진학할 수 없는 처지였다면 나는 그가 실행한 일을 도저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내가 그였다면 나는 실의의 늪속에 빠져 버렸든지 아니면 살기 쉬운 다른 방도를 모색했을 것이지 그처럼 과감하게 무일푼으로 서울생활에 도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 대부분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리라. 특히 그가 노동판을 전전하면서도 공부를 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문리대에는 걸물도 많고 괴짜도 많다더니 바로 이런 친구들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신입생 시절에는 나는 그와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갖지 못했었다. 그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바쁜 몸이라 강의만 끝나면 즉시 학교에서 사라졌고, 그래서 맛도 모르며 깡으로 마시는 술자리서 진지하게 이야기할 기회도 없었던 것이다.
그의 그런 경력을 나는 휴강됐을 때나 점심시간에 짤막짤막하게 들었었다. 어쨌든 그는 그의 가난을 가끔 숨김없이 털어놓았는데 나는 그가 소설가를 지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때여서 그를 동정하지는 않았다. 그가 그런 얘기를 했을 때 나는 아마 '넌 좋은 경험했구나. 그런 경험은 돈주고도 못 산다"라고 말했던 것 같다.
물론 그도 동정을 바라고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닐 것이고, 오히려 나는 그가 그런 특이한 경험을 약간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듯한 인상을 받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의 그러한 태도는 두 가지로 해석 할 수 있다.
하나는 우리가 불문학과 학생이니까 전부 문학을 지망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나는 인생의 이러이러한 밑바닥까지 살아봤다, 너희들은 인생을 나만큼 아느냐, 하는 그 나름대로의 프라이드가 있었던 것 같고 또 하나는 대학입학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했기 때문에 입학만 하면 활로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에 사로잡혀서 과거와 같은 고생은 이제 끝이다, 하는 판단을 가졌던 게 아니냐 하는 생각이다.
............................................................
작가...김동선...서울 문리대 불문학과 졸.
제목...동숭동 그 여자
출판사...예음
★상징적 처리로 통속적 혐의 벗어나...<동숭동 그女子>는 새디스트인 하숙집 여주인으로 부터 여러 순진한 남학생들이 당하는 결구(結構)를 상징적인 것으로 처리하려 한다. 이러한 부분은 이 작품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며, 또한 이러한 상징적 처리에 의해서 이 작품은 통속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혐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
여기까지...
감사합니다.
토마토. ^^*
................................................................
휴식을 조금 취한 지금 더 올립니다.▲▲
★★<동숭동 그 女子....2회>
................................................................
★소설가 지망생들의 필독소설...
김동선(金同銑)의 소설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간결한 문체와 완벽한 구성력이다. 심각한 주제도 그 간결힌 문체와 구성력으로 독자를 손쉽게 사로 잡는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가 지망생들의 필독소설 가운데 하나가 그의 소설이다...(문예중앙)
........................................................................................................
★현대인의 황폐한 정신상황 묘출
<동숭동 그 女子>에서 김동선의 주요한 관심사는 현대인의 정신적 불모성이다. 군소리 없이 간결한 문체와 정확한 심리묘사 씁쓰름한 유머로 사건을 이끌어간 <동숭동 그 女子>는 현대인의 황폐한 정신상황 묘출에 성공했다.(창작과 비평)
......................................................................................................
p17
그의 인생 경력은 우리들에 대해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을 만큼 값진 것이었고, 또 그는 그의 집에서 단 한푼도 가져다 쓰지 못할 눈치인데도 아르바이트만으로 졸업할 때까지의 생활은 낙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교를 졸업한 신분으로도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었다면 대학생의 신분, 더욱이 일류 대학의 대학생 신분이 되었으니 아르바이트 구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여튼 말끔한 교복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는 가난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래서 서울 지리를 잘 모르던 나에게는 마포란 무지무지하게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생겼는데, 그것은 그가 마포에서 싸구려 월세방을 얻어 자취를 하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가 혹독한 가난 속에서 입시를 준비했고, 그 가난 속에서 신입생 시절을 맞이 했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패기에 차 있었다. 그는 타과 학생들과도 인사를 잘 텄고 잘 어울렸다.
더욱이 여학생들에게 말을 붙이는 재주는 특출했다. 강의 중간 휴식 때 교실 뒷전에 모여 있는 패거리 속에서 그는 곧잘 여학생 품평을 했는데, 그의 눈에는 여학생은 모두 미인이었다. 사실 미인이야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지만 그는 "조건 쬐꼬마하지만 참 귀엽다"느니, 또는 "조건 뚱보지만 매력이 있다"느니 하면서 모두가 예쁘다는 것이었다.
얼핏 들으면 농담 같은 말이었지만 그의 표정에는 정말 귀엽고 매력있는 여자를 보는 것처럼 찬탄의 빛이 스치곤 했다. 그리고 그는 여학생에게 말을 걸 때도 은밀하게 하지 않았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여학생들이 앉아 있는 앞좌석까지 성큼성큼 걸어가 말을 걸곤 했는데, 여학생이 쌀쌀하게 대하면 되돌아와서 "조건 건방지다" 하고 씩 웃었다.
한번은 신입생 환영회를 겸한 노래자랑대회가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대강당에서 열렸는데, 그는 거기에도 빠지지 않고 무대에 나타나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구슬프게 불렀다. 내가 듣기에도 입상감은 못 됐지만, 입상을 못하자 그는 심사위원들이 엉터리라고 화를 냈었다.
하여튼 그는 남의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나 자기의 감정을 서슴지 않고 드러냈고 자기가 하고 싶은 행동도 거리낌 없이 해냈다. 마치 문리대란 낭만이 가득찬 곳이라니까 좀 즐겨보자고 단단히 벼르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모든 일에 끼어들었고, 신기하게 보이는 것에는 감탄을 연발했다.
누군가가 "저게 우리나라에는 단 두 그루밖에 없는 마로니에라는 나무란다"하면 그는 "와 근사하다. 근사해!"하고 넋을 놓고 나무를 쳐다보았고, 또 누군가가 책을 옆구리에 끼고 사색하며 걷고 있는 노교수를 가리키며 "저분이 바로 그 유명하신 이희승 교수다"라고 말하면"항! 저 분이 그 분인가? 와, 키는 작지만 되게 멋있게 보인다!" 하고서 그 노교수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경탄의 눈으로 바라봤다.
다른 학생들이 자기 앞에 새로 펼쳐질 대학생활에 적응하기 위하여 조심스럽게 한발짝 한발짝 걷고 있었다면, 그는 마치 신천지라도 만난 듯이 감탄과 경이의 눈으로 이미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어떤 편이었냐 하면 주로 그를 즐기는 입장이었다. 나는 당시 그의 가난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참으로 걸물이라고 생각했었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이지만, 가난이란 사람을 알게 모르게 침식시켜 철이 들 무렵부터는 사람의 행동을 상당히 지배하게 마련인데 희한하게도 그는 가난에 조금도 지배당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가난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자세여서 썩 마음에 드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는 밥 굶고 학교에 나온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이건 선천적인 낙천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인데, 사실 그는 그때만 해도 낙천가였는지 모른다.
그가 밥을 굶는다는 사실을 안 것은 입학 후 2개월쯤 돼서였고 아르바이트도 뜻대로 안 돼 다시 시립 노동자합숙소에서 기거한다는 것을 안 것은 그 뒤 보름쯤 후였다.
나는 그가 밥을 굶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친구의 의리로서 나의 용돈을 반으로 쪼개 그에게 주었고, 점심도 거의 내가 사 주게 되었다. 그는 워낙 궁했던지 나의 도움을 서슴없이 받았다. 그가 시립 노동자합숙소에서 잠을 자며 밥을 굶기도 하고 먹기도 하며 학교에 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게 뭐 자랑스런 일도 아니었고, 또 공개된다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 그즈음 그는 아르바이트를 찾아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아르바이트 자리가 그렇게 흔하지 않을 때였고 조건도 좋지 않은 데다가 공대생들이 거의 판을 칠 때라 문리대 간판에 전공과목이 알쏭달쏭한 불문학이라면 거절당하는 일이 많다는 게 그의 푸념이었다. 그가 구하는 것은 입주 아르바이트였는데 다행히 그는 그것을 하나 구했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그가 시립 노동자합숙소에서 아르바이트 집으로 입주한 바로 다음날인데, 그는 상당히 화가 난 표정으로 그집에서 나왔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하도 의외라서 "아니 왜? 그럼 어제 들어갔다가 오늘 나왔다는 말 아냐? 왜 그래?" 하고 그 이유를 물었는데, 그 답이 또한 기상천외였다.
"이불이 없다꼬 안 그라나! 자기들도 자기들 덮을 이불밖에 없다꼬 이불 있는 학생 구한다카더라. 그래 아침에 나가 달라카데." "아니, 그럼 가정교사로 들어갈 집에 이불도 안 가지고 들어갔단 말이냐?" 하고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즉시 되물었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다. "난 이불 없다. 이불 없이도 괜찮다 해도 이해를 못하는기라."
"아니, 이불이 없어? 그럼 그동안 뭘 덮고 잤냐? 서울에서 2년을 살았다며? 이불을 팔아먹어 버렸냐?" "이불은 원래 없다." "그럼 겨울에도 이불을 안 덮고 잤단 말이여?" "이불 없이도 괜찮다카이! 너도 이해 못하나? 내 몸 봐라. 이불없이 자도 끄떡없다."
"정말?" 나는 입이 쩍 벌어졌다. 아무리 가난하기로서니 이불마저 없을 수가 있느냐, 이건 가난한 게 아니라 거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가 서울에서 2년 동안 살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서울에서 2년을 살았고, 그동안 두 번 찾아온 겨울을 이불 없이 지낸 것이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 그의 우람한 체격을 위아래로 다시 훑어보았다. 그렇지만 그는 다른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고 체격만 좋다 뿐이었다.
그는 천애고아는 아니었다. 부산에 부모가 있는 눈치였고, 또 학교로 그의 집에서 편지가 자주 오는 것으로 보아 부모와 절연한 상태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의 집은 정말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눈치로도 그걸 능히 짐작할 수 있어서 그의 집 형편은 묻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이불이 없다고 가정교사 집에서 쫓겨난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입주조건은 자기 이불은 자기가 가지고 들어가는 게 상례다. 생각해 보라. 명색이 가정교사인데 그 가정교사가 덮을 이불도 가져오지 않고 그대로 자려고 했을 때 주인 입장이 어떠했겠는가. 물론 이불의 여분이 있는 주인이라면 가정교사에게 하나쯤 내줄 수 있겠지만 서울 인심이 어디 그러냐?
더욱이 주인은 가난 냄새가 물씬 나는 그에게 이불을 빌려 주는게 꺼려졌을 것이고, 또 이불 있는 가정교사야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은 이래저래 입장이 곤란하니까 아침에 정중히 나가 달라는 말을 했을 것이었다. 하여튼 그렇게 되어 그는 다시 시립 노동자합숙소에 기어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아르바이트를 찾아 동분서주했다. 이번에는 시간제 아르바이트였다.
말하자면 그는 입주 가정교사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그의 말로는 밥값과 교통비만 있으면 잠은 노동자합숙소에서 자겠다는 것이었다. 하나 시간제 아르바이트 자리도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학기 중반이었기 때문에 자리가 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가 그렇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 헤매고 다닐 때 그의 집에서 학교로 편지가 하나 왔다. 그리고 그 편지 안에는 그의 입영영장이 동봉되어 있었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그는 입영연기 혜택을 못 받는 것이다. 입영지정일은 8월 초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1학기를 마치는 데는 지장이 없는 셈이었다.
p21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 굽힐 줄 모르고 지칠 줄 모르던 그가 입영영장을 받아보다 하루아침에 머리 잘린 삼손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마치 힘이 팔팔 넘치던 황소가 급소를 얻어맞고 순식간에 쓰러지듯 영장은 그에게서 패기와 야망과 인내를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내색은 안했지만 그도 서울생활의 고달픔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던 것 같았고, 말하자면 입영영장은 그에게 그 고달픔을 더욱 자각시킨 결과를 낳아 그는 자포자기에 빠져 버리고 말았던 것 같다.
..................................................................
감사합니다....여기까지.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