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자생각이라는 이름이 맘에 안 들지만 - 나중에 생각해보니 광수생각의 아류더라구요 - 연속성을 살려보겠다고 다시 한번 이 이름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두달여전에 이곳에서 한국여성이 받아내야 하는 선입견들 때문에 혼자 열내며 펄펄 뛰었더랬지요. 그 어설픈 글들 지워버리고 싶은 맘 참느라고 아예 이곳을 안 들렀답니다.
마음 가라앉히고 공부에 전념하려고 하던 차에, 도움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곳의 국제사면위원회 지부에서 기념행사로 종군위안부를 다룬 영화 "낮은목소리2"를 상영하는데 발제를 해달라구요. 한국여성의 아픔에 대해 깊이 고민했던 직후라 바쁜데도 불구하고 선뜻 승락을 하고 말았지요,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그리고는 인터넷을 통해 정대협, 정신대연구소의 홈페이지를 방문하며 정보들을 모으고, 질문도 하고, 번역하고, 그렇게 원고를 준비해 갔습니다.
어제 행사를 마쳤습니다. "낮은 목소리2"를 먼저 상영한 후 토론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나이 지긋한 여성학자가 사회를 맡아 진행했고 제가 준비해간 대로 역사적, 정신적 배경에 관한 설명을 하고 질문을 받았습니다.
인권관련행사가 자주 그렇듯 준비한 사람들의 정성과 기대에 비해 참석자가 너무 적어서 아쉬웠습니다. 제가 아는 한국분들에게조차 홍보를 하지 않았던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요, 독일어 실수하는 것 보이기 싫다는 좁은 소견에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게 마음에 걸리더군요.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를 가지고 사람들 앞에 서야 한다는 부담에 끙끙거렸던 제게 오히려 공부가 많이 된 행사였습니다. 바쁜 학업의 시간을 쪼갠게 후회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인권관련행사를 준비하는 여성들의 진지한 모습도 옆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구요.
행사 전날 전체 행사를 주관한 사면위원회 소속 두 여성 (대만 여학생, 스웨던 출신의 도서관 사서)과 사회를 맡았던 사회학 박사, 그리고 저, 그렇게 그 여성학자의 집에서 준비모임을 가졌더랬습니다. 그 여성학자는 위안부가 소재로 다루어진 책 2권을 이미 읽고 여기저기 표시를 해 두었고, 관련기사들도 모아서 읽어두었더군요. 각자들의 소견을 자유롭게 교환하고 나자, 그녀는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을 경우를 대비해서 일본 국방부와 독일내 일본대사관에 보낼 편지를 작성해서 복사해 두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주소도 이미 준비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영어와 독일어로 편지를 작성했습니다, 과격하지 않고 간결하게 쓰겠다고 애를 쓰더군요. 비록 사소하나마 생각하고 느낀 것을 행동으로 옮기도록 돕겠다는 그 자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극장관리자까지 다 합해 이십여명 정도가 앉아서 영화를 봤습니다. 여성학자는 먼저 사람들의 소감을 물었습니다. 거기서 드러난 것은 사람들이 영화의 배경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준비해 간 발제가 도움이 된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한국과 일본의 해묵은 관계를 떠난 더 깊이있는 토론은 불가능했습니다. 사회를 맡은 여성학자는 차분하게 정성스럽게 사람들의 발언을 기다리고, 자신이 감명깊게 본 장면과 대사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관객들의 의견은 "사소한 일상들의 이야기가 나열되어 전체 맥락을 깨닫기 어려웠다" "흥미로운 줄거리의 전개가 아니어서 텔레비젼이었다면 채널을 돌렸을 것 같다"는 경우도 있었고, 그런가하면 "참혹함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 평안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삶에 대한 긍정과 함께 조용한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는 소감도 있었습니다.
독일어 자막처리가 되어서 내용이 단순하게 전달되었는데도 위안부 희생자들의 한과 웃음을 읽어낸 그 여성학자와 몇몇 관객들에게서 저는 '관심과 정성'을 보았습니다.
도움을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뒤로 하고 극장을 찾은 한국여학생들과 함께 2차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더 많은 한국사람들과 독일친구들에게 보여주지 못한게 아쉽다는 생각이 뒤늦게 드네요. 강덕경 할머님 참 아름다우시데요.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상황 가운데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난 셈이지만, 가슴이 뜨거워지는 좋은 만남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발제를 준비하면서 저는 가슴 아프게도 베트남 참전 한국군인들이 저질렀던 강간, 민간인 살인 등의 기사와 사진을 접하고 고민했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일본을 반성할 줄 모르는 범죄자라고 매도하며 우리 자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세상을 향해 주장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질문이 저절로 떠올랐으니까요. 폭력의 문제, 인간의 기본권리의 침해에 관한 문제는 국가나 민족이라는 좁은 테두리 안에서의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문제, 힘없는 소수에 대한 무자비하고 무책임한 폭력, 그리고 우리 일상에서의 폭력들을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라는 하나의 주제 속에 제한시킬 수는 없는 것 같았습니다. 상황에 따라 우리는 언제든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식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독일에서는 이제 곧 나치 하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린 사람들에 대한 금전적인 배상이 시작되리라고 합니다. 사과할 것 사과하고, 배상할 것 배상하고 받아야 할 것 받고, 그렇게 우리도 어서 해묵은 과거의 문제들 해결하고, 미래를 향해 성큼성큼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