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시집와서 신혼몇년을 시부모님과
다운증후군을 앓는 시누이와 다섯식구가 함께 살때
어머님은 위로 형님 세분에게 겪은 시행착오[?]를
막내며느리 한테는 되풀이하지 않고 길들이겠다 싶으셨던지
참 엄격하셨고 반듯하셨고 언변도 좋으신 시어머니가
안그래도 마음여리고 대꾸도 못하는 만만한 막내며느리는
무섭고 어렵기만 했었다.
다운증후군의 몇살아래 시누이는 내가 맘에안들땐
장농속의 이불을 끄내다가 비오는날 마당에 패데기 치기도하고
브래지어나 잠옷같은 속옷은 감춰버리고 자신의 생리대를 뽑아서
아버님 밥그릇에 담아 상위에 차려놓기도 하고...
생리대를 빨면서 눈물흘려도,
어머님은 시누이 나무라지 않고 나한테만 엄격하셨지만
어머님이 날 나무라실때마다 어~흠 어~흠 큰기침하시며
칭찬만 하시고 무작정 내편을 들어주시던 아버님의 나에대한 각별한 사랑이있으셔서 몇년의 시집살이가 나쁜기억만은 아니다.
워낙 정정하셔서 몇년전까지 혼자 사시던 시어머니께서
이제 구순이 되시어 우리집에 와 계시다,
2년전에 오셨을때만해도 마냥 청년으로 순종적인 신혼때의 나로
알고계신듯 온갖 참견과 간섭으로 쩌렁쩌렁 하시었다.
나도이제 할머니 나이가 됐고 지금까지 시집식구들에게 한번도
No 라고 말해보지 못한게 억울할만큼 호랑이가 돼있는데...
시력 청력 식성 까지 청년 못지않게 건강하신데도
기억력만은 세월을 어찌할수 없는건지!
매일 실수투성이시다.
가장 가볍고 곱고 이쁜 플라스틱 컵을 어머님용으로 드렸는데도
내가 가장아끼는 도자기 커피잔을 가져다 틀니를 담궈 놓으시고
부엌의 예쁜컵은 모두가져다 양치질용으로 사용하시고
볼일보고 뒤닦으신 휴지는 비누통에 진열해 놓으시고...
참다못해 [어머님의 자존심을 최대한 존중해 드린다고]
몸도 낮추고 목소리도 낮춰서
"어무이예 휴지는 휴지통에 버리고예 컵은 드린컵만 사용하이소"
하고 말씀드리면 어머니는
"지새끼가 한짓을 나한테 덮어씌운다" 하시며
온집안이 떠나갈듯 큰 소리로 딱 잡아떼신다.
아직 치매도 아니시고 건강하시지만 당신의 건망증을
인정하고싶지 않으신걸까?
어머님의 직계만도 60명이 넘었고
이제 어머니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없다는걸
인정하고싶지 않으신걸까?
그렇게 종이 호랑이가 된 어머니가 울컥 목이메일때가 있다,
나도 그만큼 늙어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