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예배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배 정신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드림"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나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마음을, 내 애정을, 내 생각을, 내 인생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정신이 잘못 변질되었을 때 우리에게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요? 하나님께 무엇인가 자신의 소중한 것을 드리는 데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내는 데에만 관심을 집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과 정성을 다한 예배를 하나님께 먼저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타인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대하는 저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온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대할 때 마치 주님께 하듯이 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주님을 섬기듯 하셔야 합니다. 교인들은 목사를 대할 때 주님을 대하듯이 우러러보며 존경하는 것이 마땅하며, 목사는 교인들을 대할 때 주님을 섬기듯이 사랑하며 몸과 마음을 다해 섬기는 것이 옳습니다. 여러분이 부리는 고용인에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에 안들면 짤라버릴 수 있는 하찮은 사람으로 대해도 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아주 위험한 생각입니다. 비록 내 수하의 고용인이라 할지라도, 그가 마치 주님께서 변장하여 찾아오신 것처럼 예의를 갖추어 섬겨야 합니다. 윗사람, 아랫사람이라는 것은 편의상 잠깐 구분해놓은 것일 뿐이지, 본질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다 소중한 존재인 것입니다. 아무리 자신보다 실력이나 외모나 재산이나 인격에 있어서 한참 못난 사람처럼 여겨지더라도 그를 결코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기회 있을 때마다 입을 열어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고 단호히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를 진지하게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교회에서 만나는 분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이렇게 실습을 해보시면 어떨까요? "평소에 당신을 진심으로 존경해왔습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아름다우십니까!" "당신을 만난 것이 제 일생 최대의 행운입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해에 그 학교에는 환갑을 넘기신 남자선생님 한 분이 전근을 오셨는데, 얼마 후 아주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문이 났습니다. 그 이유는, 그 선생님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초등학생 꼬마들을 향해서 항상 90도 각도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절을 하셨던 것입니다. 할아버지뻘 되시는 선생님께서 손자 같은 꼬마들에게 수업시간마다 그렇게 열심히 절을 하셨으니 이상한 분이라고 소문이 안날 리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동료 선생님 한 분이 그분께 물었습니다. "아니 선생님, 수업시간마다 어린 학생들에게 그렇게 정중하게 절을 하신다는데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그분은 마침내 입을 열어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지금은 저 아이들이 손자뻘밖에 안되는 코흘리개이지만, 그 아이들 중에서 이 나라를 이끌 위대한 지도자가 나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 코흘리개들 중에서 세계적인 인물이 나올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에 조금 미리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 이상한 선생님의 정중한 절을 받고 자란 코흘리개 중에 어떤 인물이 나온 줄 아십니까? 사도 바울과 쌍벽을 이루는 세계적인 인물 종교개혁자 말틴 루터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 선생님의 예상은 적중한 셈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성, 즉 신앙의 깊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이웃을 존경하며 몸을 다해 사랑하는가에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에 대한 공로로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뜨거운 기도나 열정적인 봉사라는 것도 그 신앙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가 얼마나 타인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그를 마음을 다해 사랑으로 섬기는가 하는 것이 그 평가의 기준이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공로를 남겼다 할지라도 남을 존중할 줄 모르거나 자기 몸을 다해 사랑할 줄 모른다면 그 신앙은 아직 초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남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희미해져갈 때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를 섬김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용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에게서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인생이라는 여리고 길에 잠복해 있다가 행인들을 덮치는 강도의 모습으로 변신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 김 목 사 ~ 저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김목사님칼럼) 글쓴이 : †평안† 글쓴날 : 2002-03-21 PM 08:51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예배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배 정신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드림"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나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마음을, 내 애정을, 내 생각을, 내 인생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정신이 잘못 변질되었을 때 우리에게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요? 하나님께 무엇인가 자신의 소중한 것을 드리는 데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내는 데에만 관심을 집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과 정성을 다한 예배를 하나님께 먼저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타인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대하는 저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온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대할 때 마치 주님께 하듯이 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주님을 섬기듯 하셔야 합니다. 교인들은 목사를 대할 때 주님을 대하듯이 우러러보며 존경하는 것이 마땅하며, 목사는 교인들을 대할 때 주님을 섬기듯이 사랑하며 몸과 마음을 다해 섬기는 것이 옳습니다. 여러분이 부리는 고용인에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에 안들면 짤라버릴 수 있는 하찮은 사람으로 대해도 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아주 위험한 생각입니다. 비록 내 수하의 고용인이라 할지라도, 그가 마치 주님께서 변장하여 찾아오신 것처럼 예의를 갖추어 섬겨야 합니다. 윗사람, 아랫사람이라는 것은 편의상 잠깐 구분해놓은 것일 뿐이지, 본질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다 소중한 존재인 것입니다. 아무리 자신보다 실력이나 외모나 재산이나 인격에 있어서 한참 못난 사람처럼 여겨지더라도 그를 결코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기회 있을 때마다 입을 열어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고 단호히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를 진지하게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교회에서 만나는 분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이렇게 실습을 해보시면 어떨까요? "평소에 당신을 진심으로 존경해왔습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아름다우십니까!" "당신을 만난 것이 제 일생 최대의 행운입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해에 그 학교에는 환갑을 넘기신 남자선생님 한 분이 전근을 오셨는데, 얼마 후 아주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문이 났습니다. 그 이유는, 그 선생님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초등학생 꼬마들을 향해서 항상 90도 각도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절을 하셨던 것입니다. 할아버지뻘 되시는 선생님께서 손자 같은 꼬마들에게 수업시간마다 그렇게 열심히 절을 하셨으니 이상한 분이라고 소문이 안날 리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동료 선생님 한 분이 그분께 물었습니다. "아니 선생님, 수업시간마다 어린 학생들에게 그렇게 정중하게 절을 하신다는데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그분은 마침내 입을 열어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지금은 저 아이들이 손자뻘밖에 안되는 코흘리개이지만, 그 아이들 중에서 이 나라를 이끌 위대한 지도자가 나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 코흘리개들 중에서 세계적인 인물이 나올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에 조금 미리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 이상한 선생님의 정중한 절을 받고 자란 코흘리개 중에 어떤 인물이 나온 줄 아십니까? 사도 바울과 쌍벽을 이루는 세계적인 인물 종교개혁자 말틴 루터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 선생님의 예상은 적중한 셈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성, 즉 신앙의 깊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이웃을 존경하며 몸을 다해 사랑하는가에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에 대한 공로로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뜨거운 기도나 열정적인 봉사라는 것도 그 신앙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가 얼마나 타인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그를 마음을 다해 사랑으로 섬기는가 하는 것이 그 평가의 기준이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공로를 남겼다 할지라도 남을 존중할 줄 모르거나 자기 몸을 다해 사랑할 줄 모른다면 그 신앙은 아직 초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남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희미해져갈 때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를 섬김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용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에게서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인생이라는 여리고 길에 잠복해 있다가 행인들을 덮치는 강도의 모습으로 변신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 김 목 사 ~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예배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배 정신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드림"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나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 마음을, 내 애정을, 내 생각을, 내 인생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정신이 잘못 변질되었을 때 우리에게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요? 하나님께 무엇인가 자신의 소중한 것을 드리는 데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내는 데에만 관심을 집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과 정성을 다한 예배를 하나님께 먼저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타인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대하는 저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온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대할 때 마치 주님께 하듯이 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주님을 섬기듯 하셔야 합니다. 교인들은 목사를 대할 때 주님을 대하듯이 우러러보며 존경하는 것이 마땅하며, 목사는 교인들을 대할 때 주님을 섬기듯이 사랑하며 몸과 마음을 다해 섬기는 것이 옳습니다. 여러분이 부리는 고용인에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에 안들면 짤라버릴 수 있는 하찮은 사람으로 대해도 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아주 위험한 생각입니다. 비록 내 수하의 고용인이라 할지라도, 그가 마치 주님께서 변장하여 찾아오신 것처럼 예의를 갖추어 섬겨야 합니다. 윗사람, 아랫사람이라는 것은 편의상 잠깐 구분해놓은 것일 뿐이지, 본질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다 소중한 존재인 것입니다. 아무리 자신보다 실력이나 외모나 재산이나 인격에 있어서 한참 못난 사람처럼 여겨지더라도 그를 결코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기회 있을 때마다 입을 열어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고 단호히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를 진지하게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교회에서 만나는 분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이렇게 실습을 해보시면 어떨까요? "평소에 당신을 진심으로 존경해왔습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아름다우십니까!" "당신을 만난 것이 제 일생 최대의 행운입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해에 그 학교에는 환갑을 넘기신 남자선생님 한 분이 전근을 오셨는데, 얼마 후 아주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문이 났습니다. 그 이유는, 그 선생님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초등학생 꼬마들을 향해서 항상 90도 각도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절을 하셨던 것입니다. 할아버지뻘 되시는 선생님께서 손자 같은 꼬마들에게 수업시간마다 그렇게 열심히 절을 하셨으니 이상한 분이라고 소문이 안날 리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동료 선생님 한 분이 그분께 물었습니다. "아니 선생님, 수업시간마다 어린 학생들에게 그렇게 정중하게 절을 하신다는데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그분은 마침내 입을 열어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지금은 저 아이들이 손자뻘밖에 안되는 코흘리개이지만, 그 아이들 중에서 이 나라를 이끌 위대한 지도자가 나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 코흘리개들 중에서 세계적인 인물이 나올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에 조금 미리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 이상한 선생님의 정중한 절을 받고 자란 코흘리개 중에 어떤 인물이 나온 줄 아십니까? 사도 바울과 쌍벽을 이루는 세계적인 인물 종교개혁자 말틴 루터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 선생님의 예상은 적중한 셈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성, 즉 신앙의 깊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이웃을 존경하며 몸을 다해 사랑하는가에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에 대한 공로로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뜨거운 기도나 열정적인 봉사라는 것도 그 신앙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가 얼마나 타인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그를 마음을 다해 사랑으로 섬기는가 하는 것이 그 평가의 기준이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공로를 남겼다 할지라도 남을 존중할 줄 모르거나 자기 몸을 다해 사랑할 줄 모른다면 그 신앙은 아직 초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남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희미해져갈 때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를 섬김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용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에게서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인생이라는 여리고 길에 잠복해 있다가 행인들을 덮치는 강도의 모습으로 변신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 김 목 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