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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만 헤어졌습니다.


BY 상처투성이 2002-05-08

어디서 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헤어지고 나서도 후회했고, 지금도 후회하고 있어요.

그를 만난 건 작년 8월 말입니다. 선이었죠. 처음으로 본 선!!

1년전부터 그 결혼정보회사에서 집으로 전화가 왔대요. 제 정보를 어떻게 알았냐 했더니 대학교 졸업앨범을 보고 전화를 했다고 하더군요.첨에 기분이 나빴지만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나갔습니다.

나이가 좀 많았어요. 34살 저와는 6살 차이가 났지요.전 처음보는 선이라 엄청 긴장했고, 그는 이미 많은 선을 보아 온 터라 별 기대없이 나온 것 같았습니다. 전 어머니께서 사주신 정장을 입고 나갔는데, 그는 면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나왔더군요.

하지만 처음 보는 순간 상기된 그의 얼굴이 좋았습니다. 그 동안 참 열심히 살아왔구나! 를 느낄 수 있었어요. 열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그즈음 전 적당히 사회에 물을 먹고, 적당히 나태해져 있는 상태였거든요. 나무를 보러 가자고 해서 남산에 갔어요. 차안에서 제가 참 좋아하는 음악을 그도 듣고 있다는 것에 또한 행복했습니다.

처음부터 넘 맘에 드는 사람이었어요.
감사하다는 메일을 보냈고, 그도 답멜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메일 끝에 "첫 만남은 언제나 소중한 것이니 마음 깊이 간직하라 "는 말이 있더군요.

상당히 혼란스러웠습니다. 전 그도 절 아주 마음에 들어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그 주말에 또 만났습니다. 금요일날 연락이 안 되더니 토요일날 갑자기 아침에 전화가 오더군요.
1시간 안에 준비해서 여의도역으로 오라고.. 전 당황스러웠지만 그가 하자는 대로 했습니다.
그 때부터 헤어질때까지 그는 늘 그런 식이었어요. 얼마 만나지도 못했지만 늘 주말이 다 되어서 혹은 당일날 전화해서
어디로 나오라는 식이었죠. 하지만 워낙 바쁜 사람이었고, 고민이 많은 사람이라 제가 배려해 주었지요.

그런데 연락이 잘 안 되는 사람이더군요. 전화도 잘 안 하는 사람이구요. 제가 늘 먼저 전화했습니다.
처음 3개월간은 정말 가까와지기 힘들었어요. 그리고 결국 헤어졌습니다. 일주일넘게 전화를 받지 않더군요.
결국 통화가 되었을때 그는 "동생이상으로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넘 황당했습니다.
하긴 3개월이 넘도록 손잡는 것 이상으로 스킨쉽을 하지도 않았고, 마음담은 선물을 받아보지도 못했고,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죠.
하지만 전 분명히 그도 절 좋아하고 있다고 느꼈었고, 그와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보통 이렇게 선을 보고 서로 맘에 들면 거의 속성으로 상견례하고 결혼이야기가 나온다고 하던데
전혀 기미가 보이지 않은 것도 이상한 거였죠. 그 사람 친구나 선배와 만나지도 못했어요.
물론 처음 몇번 선배들과 있다고, 혹은 친구들과 있다고 밤에 나오라고 하더군요. 전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난지 서너번 밖에 안 되었는데, 새벽 1시, 2시에 전화해서 택시타고 어디까지 나오라 말라 하는거, 상당히 기분 나빴거든요.
그 때 몇번 거절했더니 그 이후로는 그의 친구들, 선배들 만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뿐이었죠.

그렇게 묘한 상태에서 헤어지고 한 달만에(작년 크리스마스 이브네요.) 전화가 오더군요.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역시 황당했습니다. 그런데 전 그렇게 제 맘을 아프게 한 그 사람을 보기 위해 나갔고,
그는 제 손을 잡고 용서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장난처럼 다시 시작했어요.

문제는 그는 변화된 것이 없었어요. 여전히 이기적이었고, 이해받으려고만 했고, 늘 바빴고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전화기를 붙잡고 울면서 힘들어서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했어요. 그는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하더군요.

그런데 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습니다. 분명 좋아하니깐 다시 시작하자고 했을거고
보고 싶다고 하는 걸거고, 할텐데 그는 여전히 마음을 쉬이 열지 않더군요. 과거에 대해 잘 이야기하자 않으려 했고
오래 사귄 여자친구(7년을 사귀었다고 하네요.)에 대해 물어봐도 잘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다시 시간은 흐르고 7개월쯤 되었을 때 그의 과거를 듣게 되었지요.
제가 메일에 "과거가 있더라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을 썼거든요. 제가 이야기해도 된다고 했더니
사실은 결혼 한번 했었다고 했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동안 몇번을 말하려고 용기를 내었지만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고 해요. 그리고 괴로웠다고 합니다. 절 놓칠까봐 말할 수 없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저로서는 너무 이해가 안 갔어요. 그의 모든 것을 믿을 수가 없게 되었지요.
그래도 지금까지 보아 온 그의 모습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열심히 살아왔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 것이다.
가족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절 끝까지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이다.는 믿음만큼은 흔들리지 않았어요.
그의 고백을 듣고 한 일주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하기로 했지요.
부모님이 아시게 되면 당연히 반대할 터이니 호적을 꾸며서라도 그를 총각으로 만들어 결혼허락을 받아내고 싶었죠.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새 회사를 인수해 사업을 시작하려는 무렵이었고, 정신없는 와중이었다 하더라도
또 다시 제가 내팽겨쳐진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화가 나서 전화했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난 오빠의 인생에서 몇번째냐?"그는 조금의 망설임없이 말하더군요. "가족은 자신의 인생에서 두번째다. 성공이 먼저다"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이별의 메일을 보냈지요.
그런데 몇일 못가서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괴로와졌습니다. 그래서 전화했죠.
그가 그러더군요. "이랬다저랬다할 문제 아니다." 그리고 멜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저보면서 흔들리는 거 느낄 수 있었고
그때마다 자신에 대한 연민과 정으로 사과하고 다시 시작하고 이런식이었대요. 전 힘든 거 참을 수 없는 아이고, 그래서 자기
포기하면 또 실패한 결혼이 된다고, 두번 이혼은 안 된다고 하더군요. 많이 사랑하지만 헤어지는 게 낫겠다고 했어요. 누가 덜 사랑해서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지 않아서 이런 것이라고 좋게 생각하자고 하더군요. 미련이나 집착은 세월가면 잊혀진다고 하더군요.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참 많이 사랑했던 거 같아요. 지금도 많이 보고 싶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릴 걸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이렇게 넋두리같은 사연을 주저리주저리 올린 것은 결혼하신 분들께 여쭤보고 싶었어요.
전 반드시 사랑하는, 아주 많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거고 지금 이 사람을 아주 많이 사랑하므로
지금이라도 늦지 않은 거라면 그에게 찾아가서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고 싶어요.

하지만 결혼은 현실이잖아요. 그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벽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사람을 보다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평가할 필요도 있겠죠.
그래서 이렇게 여러분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짧게 쓰고 싶었는데, 넘 길어졌네요.
해가 뜨고, 변함없이 바람이 불고, 이런 모든 것들이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하루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