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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영의 사랑이야기 (2) 펀글


BY pyy78 2002-05-14

잼없으면 그만올리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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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피어나고

남편은 두 번째 데이트에서 내게 청혼을 했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남편은, 자기는 그렇게 성급한 사람이 아니라며 억지를 부린다. 우연히 만난 것과 일 때문에 만난 횟수까지 포함하면 네 번째 만남에서야 청혼을 한 셈이라는 것이다.

내가 그를 발견하고 그에게로 씩씩하게 걸어갔던 날, 우리는 다음 날 점심을 같이 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점심 시간에도 문화 강좌 얘기만 하며 방송국 근처에서 허겁지겁 밥만 먹고 들어왔으니 역시 데이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날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이 주말인데 같이 바람이나 쐬러 가지요.”

‘데이트 신청?’

“예? 저하고요? 음, 좋아요.”

소위 ‘노는 물’이 다른 내게 그가 관심을 보이는 것이 의아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청에 기꺼이 응했다. 내 마음 속에서 강한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과연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운동권 출신은 여자와 어떻게 데이트를 할까?’

내 예상과 달래 우리는 남들처럼 영화도 보고, 서울대공원에 가서 괴성을 지르며 놀이기구도 타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그 다음 주말, 두 번째 데이트

“오랜만에 학교에 가 볼까요? 얼마나 변했을까 궁금하지 않아요?”

그의 그럴듯한 ‘꼬임’에 못 이기는 척 ‘넘어가서’ 우리는 서울대 관악 캠퍼스로 향했다. 신림동에 이르자 우리는 80년대 초반 신림 시장의 명물이었던 철판 순대 볶음집 ‘신림 부페’를 기억해 내고는 의기투합해 찾아나섰다. 하지만 그 순대집들은 새로 지은 고층 건물에 각종 순대 요리를 파는 음식 백화점으로 변해 있었고 분위기뿐만 아니라 맛까지도 예전 같지 않았다. 그래도 그 순대에 얽힌 추억을 얘기하고 같이 실망할 수 있는 공감대가 있었으니, 같은 시절에 학교를 다녔다는 것만으로도 나눌 말이 많았다.

학교 순환도로와 관악산 기슭에 있는 잔디밭인 버들골은 여전히 한적했다. 데이트를 위해 돗자리까지 준비해 온 그를 보니,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연애하러 나온 그의 모습이 우습기도 했다.

‘어머, 이 사람 시위만 한 줄 알았더니 연애도 많이 해 왔나 봐.’ 돗자리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교도소에서 3년간 갈고 닦았다는 요가를 실연해 보였다. 두 번째 데이트였으므로 아직 서먹서먹했던 사이. 그런데도 내 앞에서 온몸 을 고무줄 늘이듯 늘이고, 비비꼬고, 또 머리로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그를 보며 나는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 주는 걸까 내심 당황스러웠다.

“문익환 목사님 알지요? 그분은 칠순이 넘어서도 사모님하고 그렇게 금슬이 좋으시대요. 부부가 함께 하는 요가가 있는데 그 동작을 즐기는 게 비결이랍니다.”

그때 그런 말을 하는 그의 속셈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내가 너무 둔한 탓이었을까?


관악 캠퍼스에서 그에게 가장 친숙한 곳은 아마도 늘 집회를 주도하던 도서관 앞 아크로폴리스 광장일 테지만, 내게는 영문과가 있는 인문대 건물 옆 자하연 연못이었다. 그 날 저녁 교정을 산책하던 우리는 정취 있는 자하연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이제는 헤어져도 될 시간이 넘은 것 같은데 이 남자는 특별한 얘깃거리도 없이 자꾸만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선언을 하듯 말문을 열었다.

“제가 김자영 씨를 마드무아젤에서 마담으로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나는 엉뚱한 그의 말에 웃음부터 터뜨렸지만, 그것이 무슨 뜻인 지는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세계의 유행 음악〉 시간에 어느 청취자가 음악 신청 엽서를 보내면서, 김자영 씨가 마드무아젤인지 마담인지(프랑스 샹송이 많이 나가는 방송인만큼 그 청취자는 불어 표현으로 미혼인지 기혼인지 물어온 것이다) 궁금하다는 내용을 써 보낸 적이 있었다. 바로 며칠 전 나는 그 엽서를 방송에서 소개했다.

“안타깝게도 아직은 마드무아젤입니다. 아직 결혼을 안 했거든요, 아니 못 했지요. 자, 이제 궁금증을 푸셨나요?”

그는 이 방송을 들은 모양이었다. 겨우 두 번째 만남에서 결혼 얘기가 튀어나와 당황한 것이 사실이었지만 펄쩍 뛰는 시늉을 내고 싶지도, 또 낼 수도 없었다. 그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해 보였기 때문이다.

“잘 검토해 보겠어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기까지는 몇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그 기간 동안 나는 힘겨운 고민을 해야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자하연 다리를 건너려는 그를 돌아가도록 말린 것을 보면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대답이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다리는 연못의 전체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지어졌다고 해서 모두들 오작교(烏鵲橋)라고 불렀는데, 이름 탓인지 사랑하는 남녀가 그 오작교를 건너면 견우와 직녀처럼 헤어지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 고 있었다. 다리를 향하는 그를 보자, 학생 때 들은 그 전설이 갑자기 떠올랐다.

“잠깐만요. 이리로 돌아가지요.”

나는 이미 그 날 그를 그렇게 붙잡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