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대 기마 국토종주 기록
1. 출발전날 踏査(답사)기
[우리는 이제 목포로 간다]
기마대의 국토종주는 이런저런 이유로 처음보다 규모가 많이
축소된 행사가 되었습니다. 물론 대규모로 움직여야만 한다는
쓸데없는 거품 같은 것은 전혀 마음속에 없지만, 말을 타고 국
토를 종단한다는 것은 아직도 몇 몇 好事家(호사가)들의 치기
어린 꿈 같은 것으로 보여지는 것 같습니다. 여기 저기서 후
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꿈(?) 이 실제로는 한달 여를 끌
어오던 K.B.S. 측의, [소규모 인원으로는 후원불가!]의 판정을
받고 나서야 실제적인 난관으로 피부에 와 닿았습니다. 미리
점찍어 두었던 일반 회사들에게 별개의 홍보를 하지 않은 것
이 후회되었지만, 후원이 없다고 해서 계획을 포기할 일은 아
니었으므로, 규모의 축소는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실제로 이곳에서 승마를 배우고 함께 꿈을 꾸며 국토
종주를 연습해오던 일부 대학생들이, [全無(전무)한 후원으로
국토종주의 실행이 불가하다]는 식으로 판단하여, 자체적으로
일을 진행해 보겠다는 결정을 한 후,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런
저런 이유로 기마대를 탈퇴한 일이라든가, 그간 함께 일을 도
모하던 몇몇 이들이, 이 학생들과 따로 일을 해 보겠다고 暗中
摸索(암중모색)을 하였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하나
씩 드러났습니다. 아직은 더 많이 배워야 할 학생들인데, 세상
살아가는 법을 너무 가슴 없이 머리로만 살려고 하는 것 같아,
어렵게 종주 준비를 하는 와중에도 간간이 마음 답답한 시간
을 보냈습니다. 今世紀(금세기)의 가장 낭만적인 일이 되리라
던 기마대의 국토종주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라, 世上事(세상
사)의 탁한 오염을 닮아 갑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마지않는 것을 가르친 것은 바로 우
리가 발은 딛고 있는 현실의 세상과, 내가 그들에게 미리 주의
하라고 당부하였던 그 30~ 40대 들인데...
실제로는 이곳 곤지암 중앙야영장의 스카우트 대장들과 대학
생들, 史學者(사학자)들, 그리고 말을 사랑하는 분들이 옛 문
헌의 고증까지 해 가며 어렵사리 만든 일입니다... 일제시대 이
후로 공식적인 驛馬(역마) 가 사라진 이후, 첫 승마 국토종주
라는 뜻 깊은 행사였지만, 결국 10여 마리의 말로 국토를 종주
하려던 계획을 찰리, 飛越(비월), 돌쇠 3마리 정도의 말로 축
소에 축소를 거듭하였고, 인원은 기마대 9명과 지원 도우미 5
명으로 가까스로 실행하게 되었습니다.
17월 14일 일요일 저녁 한양대학교의 馬祖(마조)단 터에서 조
촐한 제수를 차려 하늘로 제사를 지내며 기마대의 안녕과 말
들의 건강뿐만 아니라 한가지를 더 빌어 보려고 합니다. 그것
은 가장 효율적인 속도로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조급증이 우리
들의 마음에서 조금이라도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서해
안 고속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5시간이면 가는 거리를 말로 10
박 11일간 가는 미련한 이유와 삼남대로의 오래된 바람이 전
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려는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이 行星(행
성)에 늘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음... 아무래도 횡설수설이 되고 말았는데, 이 글을 읽어 주시
는 님들은 대략 제 마음을 이해하여 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번 사전답사에서 적었던 스케치를 간단히 적어 봅니다.
[너무 넓은 길은 사람을 품지 못했다. 23번 국도 변에도 사람
의 온기는 없었고, 고속도로는 아예 이동을 위한 수단 정도로
極限(극한)의 기능만을 수용한다. 오래 전 우리의 기억 속에
아스라이 남은, 좁은 골목길의 이웃들이 숨쉬던 그 향기 속에
는 느리지만 그윽한 인간의 쉼터가 있다.
모두가 빠르고 효율적인 것을 바라는 이때, 우리는 멀고 가늘
고 느린 길만을 골라 간다. 우리는 이제 목포로 간다.]
세 그루 소나무 아래에서...
2. 출발전날의 풍경
[한양대학교 마조단 터에서 제사를 지내다...]
법적으로 문제가 될걸? 말들이 복잡한 서울시내를 지나다니...
차량 때문에 사고가 날거야... 말들이 사람들을 차기라도 하
면... 그간 귀를 두드리던 끝없는 우려가 신기할 정도로 간단하
게(?) 서울에 입성하여 貫通(관통)하였습니다. 그냥 담담한 마
음으로 파랗게 깨어나는 새벽을 달리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를 膜(막)처럼 둘러싸고 있는 우려와 불안
과 망설임을 뚫고 지나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서삼릉에서 출발하여, 구파발, 무악재, 독립문 공원에서 잠시
쉬고, 이윽고 농협 본사에서 좌회전하여 광화문종각, 종로3가
에서 우회전을 하여 퇴계로까지 간 후, 다시 신당동을 거쳐 한
양대학교에 도착하였습니다. 구간거리는 25Km, 시간은 2시간
이 걸렸습니다. [이슬비가 조금 내려서 속도를 늦추었지요...]
아침 6시 20분에 출발을 하여 차량이 드문 종로 길에 세 필의
말이 달리는 말발굽 소리가 맑게 울렸습니다. 자동차들이 속
도를 늦추며, 손을 흔들어 주었고, 경찰차도 지나며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버스에 탄 이른 승객들도 모두 미소짓는 표정이
었구요... [너무 자의적인 해석인가?]
어쨌든 우리는 그간의 노력과 고됨에 영원한 보상이 될 빛나
는 순간을 뇌리에 담으며 서울의 아침 공기를 갈랐습니다. 적
어도 우리가 목표로 하였던 몇 가지 작은 꿈들 중에 하나인
[서울 시내에 맑은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는 일]이 달
성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오전의 快擧(쾌거)에 잠시 흥분하여 있다가 오후5시부터 한
분 두 분씩 손님들이 오시기 시작하자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
앉히고, 조선시대 御馬(어마) 목장이 있었다는 장안 벌 근처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한양대학교 학술 정보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마조단에서 이번 여행에서 말들의 안녕과 사람들의
안전을 위하여 조촐한 마조제를 지냈습니다.
예로부터 임금님이 참석한 가운데 행하여졌다는 마조제를 한
국교통사 연구소의 남도영 박사님과 경기대학 사학과 조병로
교수님, 한양대학교 관리처장님 및 來賓(내빈)을 모시고 옛 마
조제를 한번 공부하는 듯한 분위기로 再演(재연)해 보았습니
다. 물론 제수도 사람들의 제사상과는 많이 다릅니다. 말들이
좋아하는 곡물과 채소류 위주로 된 상당히 생소한 상차림이었
습니다.
옛날에는 나라의 5대 제사 중에 하나인 큰 행사였다는데, 우리
기마스카우트 555단의 헐벗은 주머니 사정으로, 너무 약소한
상차림이 되어 말들의 신에게 많이 미안하였습니다. 그리고
한양대학교 운동장의 공사중인 스탠드에서 텐트도 치지 않고
비박(bivouac)으로 첫날밤을 보냈습니다. 어디선가 Love
Affair 의 Piano Solo가 들려 오는 듯 합니다. 몹시 내린 비와,
내일부터의 본격적인 長途(장도)에 대한 설레임... 그리고 부지
런한 모기떼들의 극성으로 쉽게 잠들지 못한 채 뒤척이던 첫
날밤이었습니다...
한양대 캠퍼스에서....
3. 국토종주 첫날
[호스피스 모금 - 2,0320원]
지금은 나의 초절전 노트북(?) - 中古(중고) 타이프라이터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전기가 전혀 들지 않으니까, 슈퍼 節電
(절전)이라고 해야하나?) 더욱 중요한 것은 과정 정부종합 청
사의 정문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푸른 초원의 공터에서, 파란
플라스틱 테이블을 놓고, 혼자 그림엽서 같은 장면 속에서 있
는 대로 분위기를 잡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
전에 성수대교, 압구정동, 매봉터널을 지난 기마대는 양재대로
에서 과천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오전 종주를 마친 말들은 풀 향기가 가득한 초원에서 그야말
로 大字(대자)로 누워 버둥거리며 午睡(오수)를 즐기고 있습니
다. 세수는 지하철 화장실에서 아주머니의 눈치를 보며 간신
히 마치고, 슬그머니 수건까지 세탁하여 나왔습니다. 첫날 종
주의 기착지로는 더 없이 훌륭한 곳이지만 한가지 흠이라면,
가까운 곳에 물이 없다는 것 정도입니다. 예전의 전쟁시에도
遠征軍(원정군)의 병사들은 이런 식으로 물자의 부족에 고통
을 받았겠지요. 우리 기마대 역시 점점 초췌한 軍卒(군졸)의
모습을 갖추어 갑니다.
아우가 가까운 건물에서 정수기의 물을 페트병 가득 얻어왔고,
물은 목마르고 공짜일 때, 더욱 맛나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
습니다. 지하철 입구의 벽에 [우리민족과 말에 대한 자료]와,
[강남 성모병원 호스피스]에서 가져온 판넬을 붙이고, 기마단
의 국토종주에 대한 팜플릿과 [강남 성모병원 호스피스]의 안
내에 대한 팜플릿을 함께 지나는 시민들께 나누어 드립니다.
[음. 일수 쪽지 돌리는 사람같군요...] [이런 것도 좋은 경험이
야. 열심히 하라구...]
어쨌거나 초원을 쓸고 온 바람은 향기롭기 그지없습니다. 가
까운 곳에서는 뙤약볕 아래 전투 警察隊(경찰대)의 훈련이 열
심이지만, 우리가 휴식을 취해 누운 초원과 가까운 은행나무
꼭대기에서는 말이라는 신기한 동물의 출현을 알리는 까치들
의 울음소리가 빠르게 번져 갑니다...
이제 아우들은 하나, 둘 나무 그늘 아래 텐트와 간이 침대를
펼치고 낮잠을 청합니다. 새벽 4시 반 기상으로 부족한 수면
을 보충하기 위해서 입니다.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게으르게
기지개를 켜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이 세상 어느 그림
보다도 평화로운 風景畵(풍경화)입니다. 때로 이런 엉성한 모
습의 자유가 우리에게 切實(절실)합니다. [야아아... 이렇게 풀
밭에 텐트 치고 밥지어 먹고....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그
래? 이제 15박 동안 잘 해보자구... 잠깐 아우의 얼굴을 스치
는 낭패스러운 표정을 바라보며 짓궂은 미소를 짓습니다. 아
침에 흘린 땀이 서서히 말라 가는 발치엔 민들레의 하얀 미소
를 하늘거립니다... Fattburger의 말캉한 연주로 Oye Coma
Va가 아까부터 머리 속을 맴돕니다.
오후 1시에 기상을 하고 간단한 식사를 한 후, [시민을 위한
무료승마 행사를 가집니다.] 자아 말을 타보세요. 잡아 드리니
까, 위험하지 않습니다. [이야아... 이게 굉장히 높으네요... 잘
잡아 주세요...], [아니, 그냥 만져만 보면 안될까요?] 안됩니다.
모처럼의 기회인데 놓치지 마세요... [와아! 생각보다 재미있네
요...] 아저씨, 아주머니, 지나가는 남녀 학생들 모두들 신기하
고 재미있어 합니다. [100원이라도 좋습니다. 호스피스를 위해
조금씩만 성의를 보이시면 됩니다.] 첫날 모금. 2,0320원... 비
록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시민들의 정성이 모인 것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수원을 향하여 말을 달립니다...
종주 첫날 호스피스 모금 액은 - 2,0320원...
4. 국토종주 둘째 날 오전 -
[飛越(비월)이를 위한 기도...]
수원의 목적지인 화성언덕을 먼저 찾으러 간 先發隊(선발대)
의 착오로 그만, 의도와는 다르게 수원시내를 한바퀴 돌고 말
았습니다. 마침 퇴근 시간이라서 길에는 차량과 인파가 넘쳐
났지만, 모두들 신기한 눈길을 보내시고, 때로 대.한.민.국! 을
외쳐 주시는 분들로 달리는 우리들도 역시 신이 나는 구간이
었습니다. [역시 지나치게 자의적이로군!] 수원의 로터리를 몇
개나 돌고 재래 시장까지 통과하여, 마침내 1번 국도를 다시
찾아 올림픽 공원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침 공원엔 수도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말들을 洗馬(세마)
하고 우리들도 등목을 하며 뽀송, 깔끔한 저녁을 맞습니다...
마침 길을 헤메는 중간에 합류를 하신 조병로 교수님의 말에
대한 강의를 시원한 저녁 무렵의 野外(야외)공원에서 듣습니
다. 조선시대엔 우리 나라 전역에 50,000필의 말이 있었다고
하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와아! 그 엄청난 말똥!] 방
금 말똥을 치우고 온 한 대원의 걱정 어린 비명을 묵직한 꿀
밤으로 막습니다. 제주도에만 20,000필이 있었다고 하구요... 말
은 국가의 국력이며 일반 백성의 財貨(재화)였고 富(부)의 척
도라는 설명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리 가난하지?] 기
마대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조금 아득해 집니다.
驛路(역로)와 站路(참로)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후, 교수님께
서 [자네들이 수원종합운동장의 도로를 돌고 있는 모습을 오
다가보았지, 어쩐지 가슴이 울렁거리더군...]라고 말씀하십니다.
교수님뿐이시겠습니까? 기마대의 우리들도 모두 유서 깊은 조
상 님들의 옛터를 밟고 지날 때마다 가슴이 여울목처럼 울렁
거린답니다. [좋아, 내가 맥주 쏘지!] 감사합니다! 그래서 김치
찌개에 코펠 밥으로 저녁을 하다가 몇 병의 맥주를 비웁니다.
어둑한 저녁 공원의 소나무 사이로 말 그림자가 어른거립니
다. 국토종주를 훈련하는 내내 늘 꿈꾸던 비현실적인 모습입
니다... 그리고 내일을 위하여 억지로 잠을 청하려 모기향 연기
가득한 텐트에 들었습니다.
[아차! 늦었군.] 하고 진땀을 흘리며 새벽 꿈에 일어나 보니,
아직 아침기상 시간이 10여분이나 남은 오전 4시 20분입니다.
대원들을 모두 깨우고 수돗가에서 양치질을 하다보니, 이미 오
전 종주를 준비하는 대원들로 새벽의 공원이 술렁거립니다.
[아니 웬 말이지?] 산책을 나오셨던 시민들의 놀란 눈을 뒤로
하고 오산으로 달립니다. 이런, 飛越(비월)이가 그만 발을 삐
고 맙니다. 전원 平步(평보)로 1시간에 5 Km 밖에 달리지 못
하는 마음 무거운 시간이, 태엽이 다 풀린 인형의 동작처럼 느
리게 지나갑니다. 하지만 얼마 후 다시 속보로 달려보니 그다
지 심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나머지 두 필은 단축구보를 하고 비월이만 경속보를 하여 근
육을 풀면서, 7시 30분 경에 오산 삼림환경연구소의 정문을 통
과합니다. 말이 조금 다쳐서요... 쉬어 가게 해 주십시오. 잠시
담당자의 호기심이 이는 순간, 이구 돌쇠놈이 눈앞에서 아침
실례를 해 버립니다. [아니 이렇게 어지럽히시면...] 아니요! 저
희가 다 말끔히 收去(수거)합니다. 49%의 肯定(긍정)에서 머뭇
거리시는 분을 간신히 설득하여 숲 속에 임시 馬房(마방)을
짓고 아침 식사를 합니다.
표표히 떠난 만큼 편안하지 않은 기마대의 주머니 사정으로
모든 것에 여유가 없습니다. 말도 세 필, 안장도 세 개, 채찍과
고삐도 세 개뿐입니다. 게다가 일정 역시 하루라도 그르치면
24일에 맞추어 댈 수 없습니다. 제주시 오라동에서 개최되는
패트롤 잼버리의 개막 일에 맞추지 못하는 것이지요...
숲에 누워 하늘을 보았습니다. 등에서 우드드! 소리가 나며 나
른하게 피로가 물러갑니다. 찌를 듯이 높은 나무 위로 옅게
푸른 하늘이 보입니다. 그래 마음을 비우자... 하고 싶은 국토
종주를 하고 있고, 강남 성모병원 호스피스에 나름대로 병아리
눈물 같지만 후원도 하고, 팜플릿도 돌리고... 이만 하면 됐지...
그렇게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지긋이 눌러 놓습니다. 그리
고 어제 교수님께 들은 遲遲(지지)대 고개의 이야기를 떠올립
니다. 임금님이 先王(선왕)의 묘소를 다녀가며, 고인이 되신
부친을 그리워하여 천천히, 천천히 가자는 명령으로 지지대 고
개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주를 목적지로 하는 우리도
천천히,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길을 갈 것입니다.
오늘 오후엔 오산역전에서 시민을 위한 무료 승마 행사를 하
고 호스피스 모금을 한 뒤 다시 평택으로 떠날 예정입니다.
물론 비월이의 앞발이 괜찮아 진다면 말이지요...
우리 말 중에서 하나뿐인 예쁜 암말입니다. 여러분! 비월이를
위한 기도를 부탁 드립니다...
삼림환경연구소에서....
5. 국토종주 둘째 날 오후
[권율장군에게 속다.]
오산시 입구에 秀山城(독산성) - 洗馬臺址(세마대지) 라는 푯
말을 보았습니다. 음. 이곳에 들러 말이나 씻고 갈까? 세마대
사거리의 구멍가게 아저씨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얼마나 멀지
요? [4Km요.] 음 그럼 왕복 8Km... 비월이의 컨디션도 안 좋
은데 안되겠다. 싶어서 그냥 통과하였습니다. 게다가 산성이라
니 아무래도 조금 높은 곳에 있겠지요. 하지만 오후에 시간
여유가 있어서 잠깐 세마대를 향하였습니다. 어쨌든 궁금하니
까요...
차를 타고 산을 한참이나 올라가도 세마대는 보이지 않았습니
다. 아니 이렇게 높은데 물이 있다구? 그래도 어딘가 숨겨진
계곡에 시원한 물이 흐를 것만 같아서 자동차도 헉헉거리는
언덕을 겨우 올라가 보니 끝에 고적한 산사가 하나 정적 속에
놓여 있었고 살찐 청설모 한 마리가 여름 과일을 입에 물고
천천히 여유롭게 소나무를 오릅니다. 땀을 닦으며 세마대에
대한 내력을 읽다가 그만 놀라고 말았습니다.
임진란 때 권율장군이 이곳 독산성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적장
가등청정이 이곳을 보고 [흠! 물 이노가 부족이노 하겠군!] 하
고 일부러 물 한 지게를 올려 보내며 조롱하였습니다. 이에
권율 장군은 세마대 꼭대기에서 白馬(백마)에 흰쌀을 부어 세
마를 시키며 물이 풍부한 것으로 위장하여 왜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결국 물은 한 방울도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자! 세마대로 가자!] 라고 했다면 이구! 결과는 생각도 끔찍합
니다... [이 산이 아닌개비여!] 영민하신 권율 장군의 세마대에
저 역시 그대로 속고 말았던 것입니다.
어제 조병로 교수님의 특강 때, 한반도에 그렇게 많은 외침이
있었어도 우리가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험한 지형과 유능한 장수, 그리고 많은 말들이라고 하였는데,
진짜 유능한 한 장수는 수 백년이 지난 후, 한 우매한 백성까
지도 속였던 것입니다. [그나저나 목포 유달산 낟가리 사건부
터 倭將(왜장)들은 늘 그렇게 바보지?] 하고 아우와 함께 한참
을 웃었습니다. 지금도 레이더 사이트가 있을 정도로 사방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세마대지엔 태고적의 바람이 여전히
시원하게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오후에 오산시내를 말로 달리고 오산 역에서 驛長(역장)님의
허락을 얻어 시민을 위한 무료 승마교실 행사를 두 번째로 하
였습니다. 처음으로 말을 타는 시민들의 즐거운 모습을 뒤로
하고 다시 우리는 송탄을 지나 평택으로 향했습니다. 왠일인
지 Freddie King의 Hoochie Coochie Man이 자꾸만 입가를
맴돕니다.
지금은 비전1동 시민공원에 말을 묶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
고 저녁 산책을 나왔던 시민들은 뜻밖의 珍客(진객)을 진심으
로 환영해 주십니다. [야아! 얘들아! 어서 여기 와서 말들 봐
라... 애들 데리고 나오기를 잘했지.] [이건 절대로 자의적인 해
석이 아닙니다.] 간단히 달빛아래 저녁식사를 하고 지금은 꿀
단지 속의 벌이 된 듯한 휴식시간입니다... 아주 먼 곳에서부터
Greg Koch의 Chief's Blues 가 느릿하게 피곤한 감정의 凹凸
(요철)을 타고 흐릅니다.
평택에서...
6. 국토종주 셋째 날 오전
[국토 종주의 가장 큰 고비]
평택에서 새벽에 旅裝(여장)을 꾸려 떠나려는데, 어제 밤에 지
나가는 말처럼, [새벽에 오면 말 태워 줄께.] 라고 말했던 초등
학생 두 명이 어머니와 함께 나타났습니다. 스카우트 제복까
지 깔끔하게 차려 입구요... 어슴프레한 새벽까지 잠을 못 자며
두근거렸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아무리 갈 길이 바빠도 약속을
어길 수는 없더군요... 모두들 한바퀴씩 말을 태워주고 사진을
찍고, 벌써 [얘가 돌쇠야!] 말들의 이름을 줄줄 외는 아이들을
뒤로 남기고 떠나오는데, 이런~ 아이들이 천안의 길목까지 부
모님 차를 타고 에스코트하며 따라옵니다.
천안까지 가는 길목에 자전거 여행을 하는 학생들을 만났습니
다. 남원까지 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가능하면 함께 가는 것도
좋을 듯 한데, 아무래도 서로 속도가 맞지 않습니다. 지금 우
리의 젊은이들은 걸어서, 자전거로, 말로, 그렇게 자신의 국토
를 확인하며 곳곳으로 떠나고 있었습니다. 부디 저마다의 여
행길에서 스스로 발견 하고자 했던 것을 꼭 발견하게 되길 바
랍니다. 물론 건강하게 여행을 잘 마치는 것두요.
오늘이 制憲節(제헌절)이지! [음 그렇군요.] 갑자기 길가의 태
극기 몇 개를 걷어 망토처럼 두릅니다. 차에도 각각 태극기를
달고 모두 5개의 태극기가 새벽 국도 1호선을 달립니다. [우리
는 7인의 태극전사!], [태극전사는 무슨? 7명의 태극기 도둑
아니면 7인의 떼거지지...] 한바탕 웃음을 뒤에 남기고 천안대
로에 접어듭니다.
천안 시내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7시 30
분 경 천안 터미널 앞을 통과하여 선문대학교 앞 작은 공원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오전에 32Km를 주파한 말들도 파김치가
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국토 종주를 거듭할 수록 말들도
점점 더 强忍(강인)하게 바뀌어 가는 것 같습니다. 천안에 도
착하자마자, 조롱박 넝쿨 아래의 벤치에서 잠이 든 대원들은
오후 1시가 다되어 깨워도 영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할 수없이 밥과 카레라이스를 해놓고[쌀은 국토 종주 내내 한
번도 씻은 적이 없습니다. 그냥 물만 붓고는 바로 밥을 지어
버립니다.], 말들에게 다시 물을 떠주자, 단번에 한 통 반씩을
원 샷! 해 버립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장보기, 핸드폰
충전하기, 여자친구 데리러 가기 등등을 한꺼번에 들 해치우느
라 부산합니다. 오늘 저녁엔 광정에 도착하여야 합니다. 도합
60Km를 넘는 대 長征(장정)의 하루입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호스피스 후원모금은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일 중에 다
시 하여야 하겠지요...
조심스레 점검을 해 보니, 말도 대원들도 별다른 이상은 없습
니다. 비월이도 80% 정도의 상태라는 말을 듣고 불안한 가운
데 조금 안심합니다. 오늘 차령 고개를 넘어야 할 것 같은데...
쉽지 않은 하루로 이번 국토 종주의 가장 큰 고비가 될 것 같
습니다...
어쩐지 막막한 천안에서...
7. 국토종주 넷째 날 오전
[막혀버린 길.]
천안에서 출발하여 1번 국도와 23번 국도가 갈라지는 지점까
지는 快速(쾌속)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바람도 좋았고 날씨도
그리 뜨겁지 않아서 손을 흔들어 주시는 분들께 미소로 답하
면서 나는 듯이 달렸습니다. 그러나 23번 국도는 高速道路(고
속도로) 같아서 지나치는 차량 때문에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게다가 천안에서 광정으로 향하는 구간엔 보기에도 엄청난 차
령고개가 있었습니다. 말들과 함께 느린 걸음으로 가다보니
중간에 쉴 곳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냥 도로변 갓길이 조금
넓어진 곳에 임시로 下馬(하마)하여 말에게 물을 먹이니 보통
지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전에 이미 32Km를 달렸고, 이제
다시 28Km를 더 달려야 하니까요...
잠시 쉬었다가 출발하는 순간 비월이가 균형을 잃고 미끄러지
다가 앞으로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가 일어섰습니다. 하지만
騎乘(기승)자는 이미 아스팔트에 굴렀지요. 머리카락이 곤두서
는 순간이었습니다. 다행히 둘 다 많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비
월이의 양 무릎이 동전만큼씩 까지고, 기승자는 손가락을 삐었
습니다. 할 수 없이 한 마리를 타고 오른 손으로는 안장을 내
린 비월이를 끌고 23번 국도를 달렸습니다. 남은 길이 15Km
나 되었거든요... 눈으로 땀이 배어들어 쓰립니다. 눈을 뜨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하지만 양손을 다 사용할 수 없으니 얼
굴을 흔들어 땀을 털어 내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러나 나는
기다립니다. 시간은 어디서나 公正(공정)합니다. 어려운 시간
역시 참고 기다리면 지나갑니다. 나는 이미 몇 번의 어려움을
겪었고 기다림이 주는 결과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없이 말을 달리며, 나는 이럴 때면 늘 늘어지는 느린 시간
속에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광정을 지나 장원이라는 곳의 강가에 짐을 실은 선발대의 트
럭이 캠프를 쳤습니다. 자꾸만 고개를 트는 비월이를 한 손으
로 간신히 잡으면서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공
포심이 바람 속에 머리를 언뜻 언뜻 지나칩니다. 어쨌든 양손
에 한 마리씩 말을 잡고 구보로 차들이 쌩쌩! 곁을 지나치는
국도를 달리는 것이니까요...
겨우 말안장을 풀고 찬물을 마시는 순간, 묘하게도 몸의 절반
씩 서로 다른 곳에서 희미한 痛症(통증)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긴장이 풀리며 엄청난 피로가 몰려옵니다. 그러나 강 너머로
지는 DARK MAGENTA의 회오리 같은 노을 사이로 천천히
하나 둘씩 별이 떠올라 옵니다... 말들은 엄청난 양의 물과 저
녁 사료를 먹고 이내 푸르륵! 거리면서 검은 浮彫(부조)의 벽
화가 됩니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문득 익숙한 그리움과 마주
칩니다. 버릇처럼 담배 한 개피가 다 탈 때까지 또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립니다.
두 마리의 말이 편자가 다 닳았습니다. 서울서 떠난 지 3일,
25Km+ 50Km+ 60Km 그러니까 135Km만에 새로 한 편자가
완전히 종잇장처럼 얇아진 것입니다. 200Km를 예상했는데 예
정보다 빠르게 편자가 닳아서 裝蹄(장제)사를 구하는 일이 큰
문제 입니다. 편자가 없으면 국토종주도 그만이니까요. 어쩐
지 꽉 막힌 길의 가운데 있는 듯한 무거운 시간이 느릿느릿
흘러갑니다. 오전 내내 이곳저곳 연락을 해본 결과 제주도 기
마 경찰대의 협조로 장제 할 분을 찾았습니다. 내일 오후에
도착하여 장제를 한다는 결론을 얻은 후에야 비로써 마음이
풀리며 나머지 일을 처리할 여유가 생깁니다. 그래도 하루 반
이나 일정이 늘어집니다. 아무래도 평보로 천천히 한 두 시간
씩을 더 가야만 나중에 간신히 일정이 맞추어 질 것입니다...
말을 달리며 묵묵히 바닥에서 따라오는 그림자를 바라보았습
니다. 요즘엔 자신의 그림자를 떼어내는 류의 이야기들이 제
법 많습니다. 아마도 내면의 존재에 대한 비현실적인 槪念(개
념)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제는 침묵
한 그림자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었습니다. 혼자
하는 여행은 자신의 내부에 대한 省察(성찰)을 들려줍니다. 하
지만 이렇게 여럿이 하는 여행은 자신의 사회적인 위치를 금
새 극명하게 나타내 줍니다. 나의 본 모습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의 위치에서 어떻게 보여 지느냐? 하는 그런 단순하지 않
은 문제입니다.
이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합니다. 뜨거운 강변의 천
막그늘에 길게 비친 그림자를 보며 갑자기 떠오른 생각입니
다. 아직 아무도 하지 않은 일에 대한 도전? 호스피스를 위한
후원? 나 스스로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한 자기 證明
(증명)? 여러 가지 생각들이 가슴을 잠시 소용돌이치며 머물
다가 다시 사라집니다. 그러나 아직은 이른 답변입니다. 무엇
이 스스로를 이렇게 힘든 여정으로 몰고 가는 지는 아직, 아직
입니다... 제주까지 고되지만 꾸준한 일정을 모두 마치면 뭔가
가슴속 응어리진 아직은 형태를 갖추지 못한 이 불투명한 질
문의 본 모습이 드러날 것 같습니다. 그때는 누구에게라도 좀
더 명확한 형태의 제대로 된 答辯(답변)을 할 수 있겠지요...
오늘은 장원에서 그간 밀린 빨래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낼 것
같습니다. 차령을 넘어온 피로도 풀고요... 아까 이곳의 里長
(이장)님 댁에 인사를 드리고 왔습니다. 인심이 좋은 동네 같
습니다. 길은 사람들 사이의 通路(통로)를 열어줍니다. 우리는
새 물을 찾아가는 물고기가 되어 또 다른 길을 열어 갑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내가 찾아가고 싶은 단 하나의 길은 언
제까지고 열리지 않겠지요. 바로 당신에게로 향하는 [막혀버린
길] 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우울해 하지는 않습니다. 이번
종주의 의미처럼 우리가 해보려는 시도와 그 과정이 成敗(성
패)보다도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내가
당신을 사랑하여 얻은 값비싼 교훈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바
닥에 가라앉은 물고기가 되어, 행여 햇살에 비늘이 성급하게
반짝이지 않기를 바라며 침묵 속에 또 내일 하루만큼의 차분
한 운명을 기다립니다.
오늘 저녁엔 되도록 가벼운 마음으로 잠이 들기를 바랍니다.
내일 오전 역시 뜨거운 기다림을 보내 버려야할, 촛농이 떨어
지는 듯한 느린 시간들이 될 테니까요... 이 저녁엔 기마대의
대원들에게 그간 하지 못한 부끄러운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열심히 믿고 따라 주어서 고맙다는 뭐 그런 種類(종류)의 이
야기입니다. 소주라도 한잔하며 말할까? 괜히 마음이 울렁이
는 시간이네요...
공주에서 14Km 못 미친 장원에서...
8. 국토종주 7월 20일
[길을 잃다.]
일부 대장들이 바쁜 행사 일정으로 서울로 돌아가고, 국토종주
를 함께 하겠다고 허범한, 배종언, 홍형석이라는 세 명의 中學
生(중학생)대원이 도착하였습니다. 단복을 깨끗하게 차려입고
앞으로 고생길을 함께 하겠다고 합니다. 방학을 맞아 즐거운
피서만을 생각할 나이인데도 일사분란하게 마방을 짓고, 물을
떠다 먹이고, 말밥을 주고, 말똥을 치우는 등, 아직 채 여물지
않은 손이지만 자신들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씩씩하기만 합
니다. 멀리 계룡산이 보이는 계룡이라는 小邑(소읍)에 말을 매
었습니다.
고속도로가 다 되어버린 23번 국도를 따라오면서 내가 본 것
들을 하나씩 돌아보았습니다. 바싹 말라버린 동물들의 주검,
트럭용 타이어의 조각들, 도로에 길게 남은 스키드 마크, 중앙
분리대를 넘어가 버린 타이어 자국들... 모두가 죽음의 칼날이
순간, 순간 번득이는 停止(정지) 화면들입니다. 무엇을 위하여
이렇게 많은 죽음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질풍같이 떠나고들 있
는 것일까? 우리가 생명을 넘어서 이루어야 할 일은 무엇일
까? 집에서 우리를 맞아주는 된장찌개의 구수한 향기와 저녁
시간을 상쾌하게 보듬어 주는 목욕물... 그 아스라한 日常(일
상)을 넘어 우리가 추구하여야 할 절대적으로 멍청한 理想(이
상)은 무엇일까요? 과연 그런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요?
이런저런 생각으로 말발굽 소리마저 잊은 채, 누구의 주목도
받지 않고 그저 자유롭게 달리는 국도 변엔 武勇(무용)총의
벽화 같은 그림자가 도로의 防音壁(방음벽)을 따라 함께 달립
니다. 침묵한 그림자는 일정한 구보 동작을 계속하고 있습니
다. 바람에 날리는 말갈기와 조금씩 오르내리는 모자, 넓은 들
녘이 나타나자, 햇살을 받아 싱그럽게 빛나는 넓은 논엔 밝은
GREEN YELLOW 의 벼들을 헤치고 그보다 조금 어두운 나
와 찰리의 그림자가 켄타우로스(Kentauros)가 되어 달려가고
있습니다.
논산을 지나며 破竹之勢(파죽지세)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어
제 편자 때문에 곤란을 겪은 일정을 메울 기세로 조그만 소읍
들을 차례로 지나고 논산시 외곽 도로를 지납니다. 자동차로
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하여 그저 빨리 지나쳐야할 地名(지
명)들이, 말로는 보다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예전에 外敵(외적)
의 침략을 맞은 우리의 장수들도 이런 급하지만 담담한 마음
으로 말을 달렸을 것입니다. 소읍을 지나고 새로운 도시들을
하나하나 지나며 다가올 결전의 시간을 마음속으로 새겼겠지
요. 地圖(지도)상에 하나의 도시를 지워갈 때마다 왠지 모를
뿌듯함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오전에 30Km를 달려 논산을 지나고 연무대 정문 앞 공원에
임시 마방을 지었습니다. 초소를 지키던 군인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조금 동요합니다. 아무래도 묘한 것이겠지요... 동네
꼬맹이들이 부모들의 손을 잡고 나와, 말! 말이다... 라고 소리
칩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어른들 보다 말을 덜 무서워하며 다
가와 만져보고 신기해합니다. 우리의 핏줄 속에 기마 민족의
DNA가 있다는 것은 아마도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일부 인원을 남겨두고 무창포로 떠났습니다. 牧場(목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곳의 향토 사학자 님께 부탁하여
예전에 무창포 일대에 말을 방목하여 키웠던 흔적을 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여기까지가 土城(토성)이고, 저기가 石城(석성)
이지요. 만약 전투용 성이었다면 저렇게 고지를 성에서 제외
시키거나, 일부 要衝地(요충지)를 제외하지는 않겠지요. 게다
가 둔덕의 정 가운데 쌓은 것도 그렇구요. 만약 전투용 성이
었다면 적에게 불리한 위치에 축성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쪽 해안으로 임진란 때 명나라의 원군이 도착하였지요...] 허
름한 돌무더기가 한 鄕土(향토) 사학자의 설명으로 금새근육
이 불룩한 장정들이 축조하는 성터가 되고, 수많은 말들이 방
목되는 광활한 목장으로 바뀝니다. 매립되어 사라진 좁은 만
에서는 명나라 수군의 갖가지 색의 督戰旗(독전기)가 펄럭이
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우리의 강토에 스며들게 만든
것. 先人(선인)들이 고민하고 노력한 모습. 역사학자들은 시간
을 되돌려 그런 것들을 생생하게 눈앞에 되살립니다.
오후 5시에 전주를 향하여 떠났습니다. 그리고 어둑해질 무렵,
17번 국도쯤에서 방향을 잃고 말았습니다. 국도라고 짐작되는
커다란 다리 아래에 비를 피하여 캠프를 쳤습니다. [이젠 갈
데까지 갔군요.] 그게 무슨 소리지? [다리 밑에서 캠프 치면
바로 거지 아녜요?] 아우의 농담이 그저 지나가는 말처럼 들
리지 않습니다. 다들 젖은 수건처럼 심신이 지쳤습니다. 신경
들도 예민한 것 같습니다. 1~2Km도 아쉬운데 6~7km는 돌아
온 것 같습니다. 가까운 주유소에서 말을 씻기고 물을 떠다가
다리 밑 살림을 시작합니다. 비록 하룻밤뿐이지만 말입니다.
대형차가 지나칠 때마다 발 아래가 울리지만, 다들 지친 몸을
누이고 억지 같은 잠을 청합니다.
전주에서...
9. 국토종주 7월21일
[어린이들로부터 더 많은 미소를 배우길...]
전주를 떠나 정읍으로 향하는 길은 그간 늦어진 일정으로 몸
보다 마음이 더 무겁습니다. 이미 정해져 있는 기한이내에 어
떤 일을 해낸다는 것. 그런 식의 일은 하지 않기로 하였는데
어쩌다 보니 또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음엔 한 보름쯤 여유를
가지고 바쁜 마음보다 더 천천히 국토종주를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땀에 질척하게 젖은 단복상의가 몸에 달라붙습니다. 일정한
구보 동작을 계속하다보니 머릿속에 하얗게 표백이 된 듯, 생
각자체가 자꾸만 길을 잃고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어느덧 나
는 호흡을 하고 있지 않음을 느낍니다. 말을 달리는 동안 시
간은 자꾸만 거슬러 올라가, 어쩌면 내 몸 속에 남겨진 표피
호흡을 하던 兩棲類(양서류) 시절의 기억 정도에 머물러 있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러 지역을 거치면서 물을 갈아먹은 탓인지 배탈이 심합니
다. 땀으로 대부분의 수분이 배출되지 않았다면 더 심한 증세
일 것입니다. 매번 말을 쉴 때마다 매번 500cc이상의 물을 마
시고 중간 중간에 차가운 음료수까지 챙겨 마시는 것을 따지
면 아마 아가미 없는 물고기에 비슷한 수준입니다. 몇 알의
腹痛(복통)약을 먹으려 아담한 성암교 근처에서 말을 쉬었습
니다. 말도 사람도 온통 땀 투성이 입니다. 어디에서 샤워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절대 소원이, 한 주유소화장실에서 해
결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바라는 것과 그 해결은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내일부터라도 해가 비추어,
물에 젖지 않은 寢囊(침낭)에서 자는 것! 정도라면 더 바랄 것
도 없습니다.
마주치는 자동차에서 말을 타고 지나는 우리를 향하여 웃음을
짓는다면, 그곳엔 예외 없이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어른들끼리
타고 있는 차량은 그저 흘깃거리거나, 굳은 표정의 얼굴을 한
번 돌릴 뿐입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함께 한 자동차에서는
박수소리,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주는 소리. [말이다!] 하고
외치는 맑은 음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웃음은 결국
어린이들에게 배운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잊지 못하는 한 미소도 그렇게 이지러진 곳
하나 없는 맑고 깨끗한 웃음이었습니다. 그 미소가 어린이의
미소였음을 오늘 달리는 말 위에서 다시 알았습니다. 눈자위
가 초승달처럼 둥글게 휘고 선홍빛 잇몸이 드러나 보이도록
스마일 배지만큼이나 입 꼬리를 잔뜩 당겨 올린 그 미소로 인
하여, 나는 아직도 선연한 기억의 상처를 治癒(치유)중입니다.
어쩌면 불치의 병이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나를 포함한 설
익은 어른들이 어린이들로부터 더 많은 미소를 배우길 잠시
말 위에서 기도합니다.
갑자기 뒤편에서 오! 솔레미오가 들려 옵니다. 성악을 어깨 너
머로 배운 아우가 후미에서 시원한 소리를 쏟아내는 것입니
다. 차캉! 거리는 말발굽 소리와 묘하게도 어울립니다. 이서면
이성마을을 지날 적에, 황금색으로 노랗게 잘 여물어 가는 담
배 잎을 보았습니다. 아아! 저 속에 잠시 머물러 呂宋煙(여송
연)이라도 말아 피울 수 있다면...
금구를 지날 무렵부터 길은 자꾸만 아래로 낮아집니다. 어쩌
면 이러다 목포에 다다르면 우리는 물밑으로 가라앉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한나절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어깨 죽지쯤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니
까 이별을 예감할 때의 그 불안감과 흡사한 무게의 느낌입니
다. 이런 이런! 또 쓸데없는 생각이 심장 언저리에서 서성이
려고 합니다. [자! 힘을 내자구!] 결국 나 스스로에게 하는 다
짐으로 스멀거리는 잡념을 쫏고, 물먹은 감자 칩 같은 몸에서
간신히 희망을 끌어올려 먼 하늘을 바라봅니다. Gidon kremer
의 애잔한 Oblibion이 아까부터 귓가에 머물고, 시선의 끝 먼
서녘엔 포도 알갱이 같은 구름이 地平線(지평선)에서 솟아올
라 하늘 끝까지 닿아있고, 천도 복숭아를 닮은 태양이 느리게
산너머로 돌아갑니다. 왕거미 한 마리가 빗방울을 머금은 거
미줄에서 나뭇가지로 올라가고, 우리의 꿈은 이제 성급한 成功
(성공)을 그려봅니다.
태인에서...
10. 국토종주 7월22일
태인을 지날 무렵 새벽, 길가의 조그만 돼지농장에서는 다 자
란 돼지들이 차에 실려 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날
아침 그들은 이유도 모른 채, 차에 실려집니다. 아마 그날 저
녁엔 그들의 존재이유가 다했음으로 殺害(살해)당하고 부위별
로 해체되어 어디론가로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운명
이겠지요. 자신들이 원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룰에 의한 일
방적인 終末(종말)이요. 다만 우리가 타인의 운명을 그런 식
으로 저울질하지 않게 되는 정도의 이성을 가지게 되어 언젠
가는 진정한 문명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번 어느 문학가
의 수필을 읽다가, 인간이 동료의 시체를 훼손하거나 뜯어먹
지 않는데 걸린 시간이 3만년정도라고 하는 주장을 보았습니
다. 그러니까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엔, 분명하게 進化(진화)하
고 있는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미워하거나 질시하지 않고 정
말 사이좋게 살아가는 때가 올 것 같습니다. 아마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아니겠지만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내가 세상의
중심은 아닌데요... (재미난 것은 그 마을의 한 식당 입구엔
타조 한 마리가 말들을 보고 놀라 패닉상태에 빠졌습니다. 한
순간 내가 아프리카에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정신적인 빈틈
속에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아직 시골마을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비가 몹
시 내리는 날 아침이므로 굳이 일찍 일어날 이유 같은 것은
없겠지요. 논밭에서 출근 카드를 긁을 것도 아니니까요. 아마
거룩한 농부 님들은 오후 무렵, 김치전에 막걸리 정도로 하루
를 마무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잠깐 들러서 한 잔 얻어먹고
갈까? 결국 쓸데없는 잡념입니다. 이제 목포까지는 120Km정
도 남아 있습니다. 말이나 사람이나 쓸데없는 기운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빗물에 흠뻑 젖은 엉덩이가 안장에 자꾸
만 들러붙습니다. 하늘과 地平線(지평선)의 구분이 없고, 산허
리에는 흰 구름이 여름 꽃들처럼 감겨 있습니다.
하루 40~50Km의 장거리로 말을 달리면 몸은 피곤에 젖어들
고 시간은 자꾸만 단순해집니다. 타각! 거리는 말발굽소리를
들으며 지나간 시간들을 하나씩 매듭처럼 풀어냅니다. 한 걸
음씩 다가오는 전신주를 세어 봅니다. 47, 48... 50미터의 간격
으로 서 있는 전신주들은 하나씩 차례로 인사라도 건네듯이
여유롭게 다가옵니다. 전신주가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
나는 외로운 것인가 봅니다. 이 행성에서는 내가 무슨 일을
하건, 잦은 기침 같은 이 그리움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문득 당신이 그리워집니다. 때로는 바싹바싹 타오
르는 목마름으로, 때로는 세상을 온통 물에 잠기게 하는 아주
직설적인 憂愁(우수)로 그리움은 다가옵니다. 네 알고있어요.
역시 바보 같은 짓이지요...
폭우가 쏟아지자, 한 아우는 아예 윗통을 벗고 말을 달립니
다. 앞이 보이지 않는 暴雨(폭우)라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쓸 일
도 아닙니다. 잠시 새벽 논물을 보러 나오신 농부의 얼굴에
當(당혹)감이 머물다가 주름에 깊이 새겨진 미소로 번져 갑니
다. 노란 우비가 아주 잘 어울리시는 혈색 좋으신 영감님입
니다. 안녕하세요? [음... 수고가 많구먼...] 말을 달리며 건네
는 빠른 인사지만 달리는 사람이나 바라보는 사람이나 따듯
한 정을 느낍니다. Mary J Blige ft. Ja Rule의 Rainy Dayz가
말발굽의 리듬에 부드럽게 섞여 듭니다.
노령고개 위에서 임시 馬房(마방)을 짓고 짐을 풉니다. 雲霧
(운무)가 자욱한 가운데, 산머리가 불현듯 나타났다 스르르
사라집니다. 빗발은 얼굴이 따가울 정도지만 몸이 피곤할수록
농담은 생기를 더합니다. 아우가 가져온 천도 복숭아를 한입
욕심 내어 베어 뭅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커피를 한 모금
머금습니다. [야아~ 꼭 신선이라도 된 것 같은데요? ] 그러니
까 모두 신선답게 言行(언행)에 주의하자구... 안개가 되어버
린 비구름 속에서 대원들과 말들이 한 폭의 수묵화가 되어
또 나타났다 스르르 사라집니다. 마른 옷으로 대충 갈아입고
산머리의 바람을 맞습니다. 비가 잦아듭니다. 이대로 멈추었
으면 하고 바랍니다. 산허리에 비가 잦아들 듯이 그리움도
이쯤에서 마름 되기를... 이대로 천천히 이대로...
저녁이 이슥해서야 도착한 장성에서는 입구에서부터 경찰 차
가 에스코트를 해 주셨습니다. 밤늦게 수고해주신 경찰관 분
들과 일부러 다시 출근하여 황룡강 고수부지 공원의 수돗물을
열어주신 공무원 분들께도 감사드리구요. 그리고 김면장님, 내
년도 [홍길동 축제의 초청약속] 잊으시면 안됩니다.
홍길동의 고장 장성에서...
11. 국토종주 완료 - 여기는 제주도입니다.
거리를 잘못 계산해서 최종구간은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습니
다. 오전 오후, 합쳐 약 90Km의 구간을 8시간에 걸쳐 달려야
했습니다. 저녁9시경이 되어 완전히 視界(시계)가 어두워지자,
목포경찰서 소속의 패트롤카가 계속 기마대의 뒤에서 에스코
트를 해 주셨습니다. 커다란 고개를 세 개 힘들여 넘고 나자,
멀리 목포 시내의 불빛이 보입니다. 그리고 일단 한반도 내에
서의 국토종주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어쩐지 후련하기도 하고
마음속에서 어떤 버팀목이 빠져나간 것처럼 아쉽기도 한 마지
막 구간이었습니다. 애 타는 고난도, 견디어야 할 어떤 것도 이
제는 마무리니까요...
그리고 목포 삼학도 항에 말들을 두고 9일만에 제대로 된 저
녁식사를 하였습니다. 물론 그 식당의 화장실 문을 걸고 샤워
도 잊지 않았지요. [저기 가난한 학생들이거든요...] 미리 선박
관계자 분의 허락을 받아 배의 2등 침대 객실에서 오랜만에
제대로 된 잠자리를 얻었습니다. 4,700톤 짜리 큰 배여서 롤링
은 거의 느낄 수 없었습니다. 함께 간 중학생 도우미 대원들
의 코고는 소리가 작게 들려 옵니다. 아마 절반의 성공은 분
명히 이들의 몫일 것입니다. 내년에는 이들과 함께 다시 영남
대로 쪽을 택해 또 다른 도전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슬그머
니 머리를 듭니다. 그러나 피곤은 곧 천장에 달린 작은 등불
을 흐리게 만들었고, 내 눈앞의 세상은 이내 커피 잔에 잠겨드
는 크래커처럼 부드럽게 곤한 잠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24일 오전 9시에 목포항을 출발한 배는 多島海(다도해)를 지
나 外海(외해)로 약 6시간의 항해를 하였습니다. 말 차에 실린
말들도 의외로 차분한 모습입니다. 이제 말들의 천국이라는
제주로 향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밥을 천천히 씹고 있
습니다. 등과 발목에 난 상처를 대강 치료해 주고 지도를 보
며 제주에서의 국제 패트롤 잼버리장까지의 길을 확인합니다.
제주항에서 약 14Km, 그것도 600m고지를 올라가야 한답니다.
선착장 밖 언덕에서 말을 매고 천천히 언덕을 올라갑니다. 제
주 시내를 또 바람을 가르며 내달렸습니다. 말이 흔한 제주도
에서도 대형 마가 거리를 달리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닌가 봅니
다. 여기 저기서 [대한민국!] 하고 소리를 질러 주십니다. 약
440km, 그러니까 천백 리를 달려온 찰리, 비월, 돌쇠 세 마리
의 말은 이제 마지막 구간이라는 것을 아는지 가파른 언덕길
에 힘을 더합니다.
제주도에 사는 후배가 에스코트를 해주어서 길을 잃고 헤매지
는 않았습니다. 곧바로 목장들이 이어져 있는 5.16 도로를 뛰
어 오릅니다. 날씨가 상당히 더워 말들의 땀이 아스팔트 도로
를 적십니다. 안경에 땀이 흘러 온통 뿌옇게 흐려진 시야인데,
갑자기 말들이 정지합니다. 뭐지? 저런 조랑말 일가족이 목장
안 에서 거리를 내다보다가 처음 보는 말에 놀랐습니다. 놀라
긴 비월이도 마찬가지인지 갑자기 달아납니다. 이런이런! 덩치
가 아깝다... 조랑말가족도 이리저리 이쪽의 대형 마들을 살피
더니 부모 말들 뒤로 망아지들을 숨긴 채 달아납니다. 그렇게
동, 서양말들의 遭遇(조우)는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제주시 오라동 섬 문화 축제의 마당으로 한걸음에 내 달렸습
니다. [와아! 서울에서부터 왔다구요?] 네! 다들 말들의 목을
어루만지고 대단한 말들이라고 감탄합니다. 네 아무리 생각해
도 정말 대단한 말들입니다. 본부막사로 가서 [기마 스카우트
555단 전원, 국토종주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 하고 도착보고
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경례하는 손끝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9박10일 동안의 힘든 국토종주와 모기떼, 비에
젖은 침낭 속의 실 끝 같은 잠. 야영의 끝이 바로 이 한마디
에 모두 압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무사히!] 말들이 상처를 입
거나 기승자가 균형을 잃고 비틀거릴 때, 대형 트럭이 질주하
는 국도변 을 따라 땀에 온통 젖어 달릴 때, [무사히!] 라는
말은 그대로 生物(생물)이 되어 가슴을 찌릿 하게 만들곤 하
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람과 말 [전원 무사히!] 해낸 것입니다.
Saltacello의 Salted Samba 리듬이 어깨선 근처에 머무는 것
같습니다. 모두 같이 기념 촬영을 하고, 제주시에서 자축파티
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늦은 밤 제주시 탑동 바닷가에서 탄탄
한 달빛을 반사하는 밤바다를 보다가 트라이 폴 위에 잠시 누
웠습니다. 트라이 폴 밑에서 올라오는 파도가 일렁이는 소리
를 듣습니다. 그리고 가슴속의 열망이 하나 차분하게 가라앉
는 것을 느낍니다. 별들은 유난히 파랗게 빛을 내고 있었습니
다. 어느덧 내 가슴속에도 또 하나의 별빛 같은 추억이 천천
히 제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오늘밤은 그리움 없이 잠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가슴속의 별빛이 일렁이는 제주도 오라동 언덕에서...
12. [종합편] 한국 스카우트 기마대 서울-제주 국토종주 성공!
제1대 한국 스카우트 기마대인 한국스카우트연맹 기마 스카우
트 555단(단장 김명기) 단원들이 11박12일의 서울-제주 승마
종주를 끝마치고 24일 `말의 고장' 제주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4월 창설된 기마스카우트 555단의 김명기(41) 대장과 이
상선(27) 팀장, 엄재호(27) 팀장, 윤기훈 팀장(27), 서경희 대원
(26), 박경은 주무(24), 임대균(23), 김동건(21) 대원 등은 5명의
중학생 벤처스카우트 도우미들과 함께 [말과 함께 한 우리 민
족 5000년!]을 기치로 지난 7월 14일 서울 서삼릉의 한국스카
우트연맹 중앙훈련원을 출발했습니다.
기마 스카우트 555단은 이날 구파발과 무악재를 넘어 광화문,
종로, 퇴계로를 달리고 저녁엔 조선시대 한양으로 올라가는 제
주산 말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마조제가 열렸던 제단인 `마
조단'이 있는 한양대학교에서 한국교통사 연구소의 소장인
조병로 교수님, 남도영 교수님 등을 모시고 제를 지낸 후 수
원, 천안, 공주, 논산, 정읍, 나주, 목포 등을 거쳐 제주에 도착
했습니다.
국토 종주 중간 기착지마다 준비해간 패널을 설치하여, 우리
역사상 말이 차지했던 위치와 그 중요성 그리고 현대 스포츠
로써의 말의 역할을 알리는 시민 무료 승마교육과, 강남 성모
병원의 호스피스 단체를 돕는 모금 활동을 함께 하였습니다.
기마 스카우트 555단은 찰리, 비월, 돌쇠등 3필의 말을 번갈아
타며 360㎞가 넘는 길을 달려와 이날 `2002 인터내셔널 패트
롤 잼버리'가 열리는 제주시 오라관광지구에 도착해 참가자들
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http://www.yonhapnews.net/news/20020724/2716000000200207241712570.html
(연합뉴스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