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리 움
그래,
그랬겠지.
언제부터인가
바람 끝에 서면,
억새풀로 뒤덮인 바닷가를
그리며 살았다.
눈물로 배웅하는 아내를 뒤로하고
끝간데 없는 그리움만
찾아 헤매는 이 무서운 방랑벽은
대체 언제 멈출 것인가.
그리움만,
그리움만 게워내는
담배연기처럼
밤새 뒤척이다 눈을 뜨면
어느새 나는 이슬로 촉촉이 젖은
나의 現場으로 돌아와 있다.
그리움 그리움만 좇다가
애오라지
그리움만 두고 온
나의 이 現實.
- 97년 광주 출장지에서.
사랑하는 당신에게
여보, 얼마만이오? 당신을 만나 죽도록 사랑을 시작한 게 벌써 7,8년의 세월을 거슬러올라가야하는군요.
밤새껏 당신에게 사랑의 연시와 사랑의 밀어를 나누던 게 엊그제인 것만 같소.
그로부터 삶의 시계에 쫓기며 살아온 나의 삶에 당신에게 편지 한 번 제대로 건넨 적 없던 못난 나를 부디 용서하시오.
그래, 그랬었지.
당신이 농촌봉사활동가고 덩그러니 홀로 남아 취업의 문턱에서 합격연락을 기다리며, 차라리 내가 불합격되어도 당신이 있는 곳이 제발 태풍재해로 농민들의 주름살이 더 늘지 않고, 당신의 발이 묶이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나는 4일 밤낮을 당신에게 바칠 사랑의 밀어들과 시들을 적어나갔었지.
첫 직장 합격의 기쁨보다도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가슴 떨림에 당신에 대한 사랑의 밀어들이 빼곡이 적힌 노트를 장마비에 젖을 새라 가슴에 꼭 품고 한 달음에 달려가 당신을 조우했을 때의 그 기쁨을 어쩌면 난 삶의 무게에 짓눌려 한동안 잊고 살았었는지도 솔직히 모르겠소.
그러나, 잊은 건 아니었소.
어찌 그 사건을 잊을 수가 있겠소.
그 사건으로 결국 선후배 사이이던 나와 당신은 마음의 빗장을 모두 열고 하나가 될 수 있는 동기가 되었던 것을,
졸업여행 시즌에 남아서 일주일 공사판 노가다를 뛰며 번 돈으로 처음으로 당신에게 반지를 선물했을 때도 꿈쩍도 하지 않던 당신이, 그 날 건넨 그 노트 한 권에 나에게 넘어왔던 사건인데.
우리 나영이가 벌써 초등학교에 들어갔다니, 믿기기나 한 일이오?
더구나, 우리 나영이가 나의 초등학교 후배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난 너무 행복하다오.
여보, 생각이 나는구료.
결혼식을 끝내고 첫 날 밤에 신혼여행지에서 당신을 붙들고 엉엉 소리내어 울었던 부끄러운 나를 보며, 함께 부둥켜안고 울었던 못난 우리의 첫날밤. 아니, 못난 건 나였었지요.
졸업 후 양가 부모님들을 속이고 떠난 강원도 여행지에서 결국은 사고를 치는 바람에, 당신의 뱃 속에는 새로운 생명의 씨앗이 뿌려지고. 꽃같던 나이와 외모의 당신을 졸지에 뚱뚱해진 임산부의 반열에 올려놓은 나의 그 원죄.
임신 5개월의 배를 억지로 숨기고 결혼하던 그 날,
신혼여행짐을 부려놓고 났을 때, 그런 내 자신이 너무 무안하고, 졸지에 맘고생, 몸고생시킬 내가 밉기도 하고, 당시 돌아가신지 얼마되지 않았던, 손자 결혼하는 걸 꼭 보고 죽어야한다고 노래를 하시던 내 친할머님 생각에 맘이 아팠다오.
벌어놓은 것 없이 이제 갓 취업한지 6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은 내가, 2~3년 후에 당신을 나에게 내주시겠다던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천추의 한을 심어놓은 못난 사위가 바로 나였었지요.
무작정 사고 치고나서, 예물값이나 간신히 되는 단돈 300만원만 내놓고 결혼을 한다고 남들 앞에서 바보처럼 싱글벙글하던 못난 나, 철부지였지.
그렇게, 반지하 단칸방에서 우리의 삶은 시작되고 그 때부터 당신의 고생은 시작되었지.
첫 직장은 그런대로 반듯한 직장이라고 모든 식구들 좋아들 했었는데, 4년 후에 찾아온 IMF 때, 상사분께 사정사정해서 사표를 던지고 나온 나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던 당신의 눈빛을 어찌 잊을 수 있겠소.
그로부터 몇 년 동안 이 직장, 저 직장 전전하며 돈 벌기는커녕 돈을 써대기만 하는 나를 그래도 잘 감싸주던 당신은 참 못난이요.
그나마 한 직업만, 한 우물만 파왔기에 이제는 먹고 살만해졌다고 당신과 나, 다들 생각했는데, 이제 또 난 사고를 치겠다고 멀쩡한 직장 사직하고 나온 못난 나를 용서해달라는 말도 염치가 없음을...
그런 나를 별 말 없이 "당신, 믿으니까 열심히 해"라는 말에 난 뒤돌아서서 한 동안 멍하다가, 얼마나 많은 속눈물을 흘렸었는지...
당신이 믿는 만큼, 지금껏 해왔던 일보다도 더 잘 할 수 있을거라는 당신의 그 한 마디에 난 내 가슴에 우주를 품은 것만 같았소.
돈이 없어도, 빽이 없어도, 학벌.학력 달려도 믿는 당신이 이 세상에 아니, 영원히 내 가슴에 살아있는 한, 난 내 갈길을 묵묵히 때론, 정열적으로 걸어갈 작정이오.
여보, 난 이제 점점 강해지고 있소.
나에 대한 어떤 시련도, 어떤 음해도, 어떤 칭찬도 개의치 않을 수가 있게 되었으니 말이오.
그저, 내 할 일이, 내 목표가 저기에 있기에 난 어떤 어려움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소.
일주일간의 고된 노동으로 지쳐 누운 사랑하는 당신,
날마다 한 웅큼의 삶의 비듬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발이 퉁퉁부어 귀가하는 '며느리밥풀꽃' 같은 당신, 존경하오.
한 가지만 알아주시오.
이제야 고백하건대, 차라리 내 목숨보다 당신의 모든 것을 사랑하오.
당신의 단점까지도.
조금만 참아주시오.
돈 많이 벌고, 명예 얻는 남편과 아빠보다는
'자랑스러운 남편', '자랑스러운 아빠'가 될 수 있도록 신명나게 일해보겠소.
나에겐 사랑 그 하나만 충만하면 됩니다.
창 밖에는 비가 내리네요. 장마를 예고하는 장대비가.
외근다닐 때, 비는 맞지 말도록 채비 잘 갖추고 다니시오.
우리 사랑도 그렇게 저 비처럼 끊임없이 서로의 가슴에 쏟아져내리는 비가 되길 바랍니다.
내내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