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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아직 청춘이 남아있을까?


BY as7906 2002-09-13

그날, 동창모임에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다가 이 사람은 문득
오래된 기억의 저편에 숨겨져있던 이름을 떠올렸다네.
친구의 동생 N.친구는 내가 자기동생 이름을 기억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놀라는 표정이었지만,
난 아직 N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지.
충주여중 2학년에 다니던 N은 참 예쁘게 생겼었고 똑똑한 편이었지.
이를테면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있는 신세대가수 '보아'같은
이미지였다고나 할까. 난 77년 당시RCY충주지구협의회 의장자격으로
여학교들을출입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었는데,
그래서 충주여중에도 갔었고 겨울날 눈이 많이 쏟아지는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있는 N을 볼수 있었다네.
나는 N에게 시를 몇편 써준적이 있는데, 지금 그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참으로 순수한 열정이 가득했던 것만은 분명하네.
마치 베르테르가 롯데에게 애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쓰던 것처럼,
소위 문학청년이라 자부하며 호암지를 거닐던 이 사람의 가슴 속엔
귀여운 N에 대한 젊은날의 연정(戀情)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원고지를 메꾸곤했었네.
그러고보니 세월이 많이도 흘렀군. 그날 친구의 입을 통해서 나는
N이 지금은 좋은 신랑 만나서 외국에 나가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뭐랄까 아주 잠시 아스라히 사라진 그 시절이 그리워졌었네.
참으로 순수하고 참으로 열정적이던 열여덟살의 간이역 풍경이---. 그 풍경은 다시는 돌아올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립고 안타까운 것.

그날밤 나는 내 가슴 속에 아직도 살아숨쉬는 청춘을 보았다네.
생각해보게. 그저 귀엽고 사근사근하던 친구의 동생을, 그저 내가슴
속에 숨겨진 야망을 털어놓거나 헤르만헷세 얘기나 좀 들려주었던
N의 소식을 들으며 가슴한켠에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던 그리움은
도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내 가슴 속에 아직 청춘이 살아있다는 느낌 혹은 확신이 이 사람을
기쁘게 만들었네. 삶의 무게에 눌려 압사당했을지도 모를 우리들의 청춘. 그러나 찾아보면 우리의 청춘은 우리의 가슴 속에 전설처럼
살아있다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장미의 용모,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손발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가리킨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샘의 청신함을 말한다.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선호하는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20세 청년보다도 70세 노인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잃어버릴때
비로소 늙는다. <샤무엘 울만> *****

친구여, 자네에게도 세월의 강을 넘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어떤
이름이 있는가? 대단한 추억이나 흔적같은 것은 없었더라도,
그저 책갈피에 꽂혀있는 은행잎같은 존재의 이름이라도---.
그런 이름 하나쯤 갖고 있다면, 그리하여 그 이름 석자로 인해 자네
가슴에 호암지의 잔잔한 물결같은 기억이라도 일렁인다면
자네는 아직 청춘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네.

생떽쥐베리가 <인간의 대지>에서 "인간의 가슴 속에서 모짜르트가 암살 당했다"고 썼지만 나는 "인간의 가슴 속에서 청춘이 암살당다"고 쓰고 싶네. 우리는 바로 청춘이 암살당하지 않은 가슴을 지닌, 몇 안되는 인간이 되세.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가슴 속에 늘 청춘의 푸른 소나무가 살아 숨쉴수 있게 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