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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탕에서.....


BY 나의복숭 2002-11-04

목욕탕엘 갔다.
오메 좋은거...
돈 3200원만하면 세상만사 부럽지 않는곳이
목욕탕이 아닐까 싶다.
내가 살아가면서 대통령 마누라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할때가 있다면 바로 목욕탕에 있는 순간이다.
왜냐고?
생각해보라.
시방 영부인이라 일컫는 이희호 여사가
나처럼 옷벗고 이렇게 사람들 있는데서
기분좋게 목욕을 할수있겠는가?
물론 청와대의 삐까뻔쩍한 목욕탕이 있겠지만
대중탕의 이런 자유스럽고 유쾌한 분위기는
택도 없으리라.

뜨뜻한 탕안도 좋고
안개김이 팍팍~ 나오는 사우나탕도 좋다.
앉아있건 누버있건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1시간을 있건 하루종일 있건 돈 더 내라지도 않고
빨리 나오라고 누가 독촉하는 사람도 없으니까...
또한 목욕탕만큼 공평한 공간이 어디 있으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교양있는 여자나 없는 여자나 벗어놓으면
누가 누군지 모르게 다 똑같다.
벌거벗고서 우아하게 교양있는척 아는척은
해봤자 빛도 안나는 공간이니까 ㅎㅎㅎ.

열심히 때를 빡빡 밀었다.
어떤 유식한 양반들이 저얼데 때는 빡빡
밀지 말라고 하드라만
우리 자랑스런 조선 여자들은
목욕탕와서 때안밀으면 왠지 목욕 안한 기분이고
손해본 기분이다.
이태리서 사온것도 아닌데 이태리라 이름붙인
그 조그만 앙징스런 타올.
이름하여 이태리 타올.
그 손바닥만한 타올로 때를 빡빡 미는것도
엄청 재밋다.

저쪽 구석에서 눈만 빠꿈히 내어놓고선
온 얼굴에 오이를 갈아서 붙인 여자가 보이는데
지하에 계시는 우리 할매가 봤다믄
먹을것도 없는 판국에 얼굴에 오이를 덮어썼냐고
야단치셨을게 분명하다.
없이 살았든 그 시대는 입치레가 우선였지만
세월이 마르고 닮토록 변해서
요새는 입치레하고도 남아서 저렇게 얼굴과 몸에도
바르는 시대가 됐으니...
또 요즘 할매들은 옛날 우리할매들하고 달라
귤껍질같은 쭈굴쭈굴한 피부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람들에게 질세라 열심히 바르니 격세지감이랄까?
차라리 묵는게 더 피가 되고 살이될거같은데
그건 나만의 얼팡한 생각이겠지?
'니들만 오이맛을 알어?'
할매들이 따지면 할말이 없으니까...
또 나도 머잖아 할매가 될꺼 아닌가?ㅎㅎㅎ

오이바른 그녀에게 자꾸 신경이 쓰이는건
평일이라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널너리한탓도 있지만
수도물을 계속해서 틀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릇에 물이 철철 넘쳐흐르는데도 첨부터 끝까지 계속
물을 안잠궈고 있는게 목욕탕 쥔은 아니지만 눈에 너무 거슬린다
바로 옆에 있으면 성질머리 급한
내가 팍 잠궈버리겠구만 조금 떨어져 있으니
그렇게도 못하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한번씩
훌끔훌끔 보기만 할뿐 도리가 없다.
아무리 내가 내는 수도세가 아니라지만
너무 한거 같다.
꼭 저런 사람이 있다.
돈내고 와서 사용하는데 누가 뭐라겠나만
그냥 철철~ 흘러넘쳐보내는 불필요한 낭비는 너무하지 않는가?
돈을 버리는거나 마찬가지고
저그집같으면 저러진 않을껀데....

사우나 들어가서 한참 땀을 빼고 나왔다.
찬물에 들어가니 천하가 내것같고
최초로 목욕탕 고안해낸 사람이 누굴까?
싱겁한 생각도 들고 얼굴도 모르는 그양반에게
무지 고마운 맘도 든다. 하하
다시 자리에 왔드니 아까의 오이바른 여자는
얼굴에 오이를 다 벗겨내고 푸~푸~
물로 얼굴을 두드리며 세수를 하고 있었다.
여전히 물은 대야에 넘치고 흐르는데
도데체 어떤 인간인지 얼굴 낮짝이나 함보자는
생각으로 옆눈으로 가만히 홀겨봤드니
아이구 옴마야
내가 잘 아는 사람이네.
이걸 우째?
아는척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갈등 생기는순간 그녀도 나를 휠끗 쳐다봤다.
둘다 시선이 팍~ 마주치는 순간
그녀가 반갑게 웃으며 나에게로 왔다.
'아이구 형님. 목욕 왔어요?'
'그래. 니도 목욕 왔구나'
우째 이런일이....

그다음부터는 내옆으로 옮겨운 그녀와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서 열심히 때를 밀었는데
그녀가 계속 물을 넘치도록 했냐고?
노우
결코 안그랬다.
내눈이 무서버서 그런건 아니고
아는 사람을 의식하는거지 뭐.
아무도 모른다는게 사람을 그렇게 변하게 할수 있나보다.
근데 더 웃기는건
그녀가 열렬한 환경 운동가라는거다.
평소 과일조각 하나 버리면 그 물이 정화되는데
몇십년이 걸린다는 소릴 목아프게 외쳐대는
교양있고 수준높은 여자인데
세상에 지는 목욕탕와서 온 얼굴에 과일을
바르면서.....쯧쯧.
하긴 오이는 과일이 아니고 야채에 속한다면
할말이 없지만 말이다.
난 뭐 환경 운동가가 아니라서
퍼석하고 윤기없는 내 피부에 영양 준다고
오일도 바르고 환경운동에 역행하는짓 다했다.(죄송!)
근데 그녀도 이것저것 온갖거 다 바르고
내보다 더 하드만.
자신이 바르는건 환경에 괜찮고
남이 바르는건 환경오염을 시키는가 보다.
'넌 환경 운동가라서 요런거 바르면 안되잖아?"
입빠른소리가 입에 맴맴 돌았는데 무안해할까봐
참아줬다.
'내껀 무공해라서 괜찮아요'
요렇게 말하믄 할말이 없잖은가?
더러븐 성질 머리도 아는 사람앞에선
맥을 못추나보다.
비겁한줄은 알지만 나 아닌 다른 사람이라도
안면몰수할 생각 아니면 어떻게 꼭찝어 말하겠는가?
(안다고 눈감아 주는거 망국의 지름길인데...ㅎㅎㅎ)


그녀와 헤어지고 집으로 오면서 생각해봤다.
평소엔 아주 교양인임을 자처하며
열렬히 환경운동을 하는 괜찮아보였든 그녀가
공중탕에서 아무도 안본다고 물을 철철 넘치게
흘리고 환경운동에 역행하는 그 이중성은
도데체 뭘까?하고...
너도 나도 다 똑같은 벌거벗은 공간에서
아무도 안보는 자유로움탓이었을까?
에구 모르겠다.
그녀도 3200원이 주는 행복이라 생각하겠지뭐.

목욕을 하고 나올때마다
몸의 때도 벗기고 세상의 찌든때도 벗기고 나온거같아
언제나 기분이 좋다.
오늘도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