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눈을 감고 상상을 해보자.
깍아지른 절벽 그아래는 거센강물이 흐르고….
그 강물에 몸을 던지는 삼천명의 여인들.
자못 비장감이 감도는 장면이라 할 수있다.
백제멸망과 더불어 대왕포의 바위에서 백마강 으로 몸을 던 진 삼천명의 여인.
후세사람들은 이곳을 낙화암 이라 이름지었다.
비장하도록 아름다운 낙화암이란 지명은 백제멸망 천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 강 으로 몸을 던진 여인들의 한을 증언하고 있다.
이 낙화암의 지명유래는 그 어느 개인이 지어낸 지명이 아니다.
지명이란 오랜세월을 거쳐 민중의 구전 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삼천명의 궁녀?
그들은 과연 의자왕 환락을 위한 도구였을까?
아니 과연 삼천궁녀 자체가 존재하였을까?
삼천명의 궁녀는 우리나라 어느왕권. 어느대궐에서도 수용할 수 없는 엄청난 인원이다.
왕권의 절정기라는 조선왕조의 어느 대궐에서도 삼천명의 궁녀를 수용할만한 궁궐이 없었다.
그럼 그들은 과연 궁녀들 이었을까?
결론은 아니다 라고 할 수 있다.
계백장군의 5천결사대는 나라와 운명을 함께하기로 하고 황산벌 에서 나당 연합군과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계백장군은그 아내와 자식의 목을 베고 온길이었다.
가족의 목을 베기전 계백은 말했다.
“이번싸움에 내가 살아서 돌아올 가능은 전혀 없다. 내가 나라를 위하여 죽는 것은 조금도 애석치 않다만 너희들이 포로가 되어 적에게 욕을 볼 생각을 하니 견딜수가 없다. 지금깨끗히 죽어 욕을 피함이 좋으리라,”
그 처자들의 목을 베고 온 계백.
결국 나당 연합군에 맞서 혈투를 계속 하였으나 중과부족, 5천결사병 모두 전사한다.
한편 황성 부근에서는 그 백제국 장수들과 병사들의 부인들이 모여 초조히 전쟁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조히 기다리던 이들에게 날라온 소식은 5천결사대의 전멸 이었다.
이 5천결사대의 부인들은 백제의 멸망을 예감하고 조국을 위해 장렬히 몸을 바친 지아비 들의 뒤를 따라 혀를 깨물고 대왕포 에서 꽃처럼 몸을 날렸다.
나라의 멸망과 운명을 함깨한 절개. 지아비와 목숨을 함께한 절개. 이 피눈물나고 처절한 절개는 승자들의 손에 의해 궁녀로 타락하고 만다.
지조와 절개의 꽃들은 이렇게 궁녀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역사의 뒤로 흘러간것 이었다.
그후 역사를 손아귀에 쥔 그 승자들은 외세의 손을 빌어 동족을 멸한 이유를 의자왕의 폭정과 삼천궁녀를 위시한 환락. 그로인한 백성의 도탄을 구하기 위해서 였다고 역사를 자신의 의중대로 재단한다.
역사는 이렇게 승자의 손에의해 왜곡되고 분탕질 쳐저 현재까지 내려오고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민주화를 위한 국민의 투쟁이 ‘폭도들의 난동’ 으로….
총칼로 국권을 찬탈한 반란이 ‘구국의 용단’ 으로 둔갑하는 현실에서 과연 역사는 승자의 시각 으로만 씌어지는 것 일까?
조국과 민족에대한 확고한 절개가 아쉬운 오늘날 낙화암의 삼천송이 순결한 꽃을 그리워한다.
피로쓴 역사 낙화암의 절개가 우리모두의 가슴에 우뚝 서기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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