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기뻐함은 자기 존재가 확인이 되었을 때이다. 삶은 존재의 확증이다. 기뻐하는 것은 내가 있음을 인식할 때이며 내가 발견이 될 때이다. 기쁨도 슬픔도 다 내가 있다는 증거이다. 사람이 생각한다고 하는 것은 내가 있다는 증거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생각이 없으면 나는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생각이 깊은 사람일 수록 자기가 강하다. 내가 없으면 슬픔도 없고 기쁨도 없다. 괴로움은 내가 있어 생기는 것이다. 내가 없는 자는 괴로움이 없다.
육을 가진 인간은 누구든지 육의 쾌락을 좋아한다. 그래서 육은 어차피 육의 쾌락을 좇아살게 되어 있다. 육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육을 벗으려 함이 도인되려 함이다. 사람으로서는 도인도 없다. 사람 자체가 도인이기 때문이다. 도인이 아닌 자 아무도 없다. 도에 다다른 자도 없다. 모든 사람은 도인이며 도인이 아니다. 육을 입은 자로서는 진정한 도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 다만 육이 그 한계일 뿐이다. 그래서 진정한 도인은 자기가 아님을 고백하는 것이며 자기 안에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자기가 무엇이 되었다 하는 자는 거짓된 자이며 가짜임에 틀림이 없다.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 함이 가짜이며 자기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함이 종교적인 확신일 뿐이다. 사람에게는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구원은 오직 구원하시는 이에게 달려 있는 것이므로 사람이 구원이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다. 다만 구원 하시는 이가 구원하시면 구원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논할 자는 구원을 받을 대상인 사람이 아니라 구원자이시다. 그가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구원하였노라 하면 사람은 아멘할 뿐이다.
육이 건강하면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고 살게 되어 있다. 육이 강하면 육신의 식욕도 왕성하고 육의 탐욕도 강하다. 육의 탐욕이 곧 우상 숭배이며 허상이다. 그 욕구는 육이 끝남과 동시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는 육의 속성에서 나오는 욕구이며 식욕 성욕 수면욕이 다 그러하다. 육은 다 그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나쁘고 좋다고 말함이 아니라 육이 그러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육에게 영적인 욕구를 가지라 하면 사망이며 저주가 될 것이다. 육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인생 자체가 무저갱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옥은 내가 생긴 인생 그 자체이다. 내 안으로 끝없이 떨어져 내려가는 것이 지옥이다. 그러나 영이 살아 있으면 영적인 욕구가 강하다. 그 영이 죽어 있는 자는 영적인 요구가 없고 그 안에 영적인 거룩한 욕구가 전혀 일어나지 않으며 오직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에만 관심이 다 가 있다. 이로서 그가 그 영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알 것이다. 육은 살아 있어도 영이 죽은 자가 있고 육이 죽었을지라도 그 영이 산 자가 있다.
육도 자기 존재가 확인이 될 때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것이다. 자기 존재를 확인 받은 자는 감동하고 감격한다. 자기를 일깨워 주는 것이 감동이다. 감격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인식과 의식이 최고조에 달해있을 때이다. 이는 육적인 황홀함이며 자기를 거기서 잠시 잃어버린다. 모든 자들은 그 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자기를 잃어버리고 어디에 몰두하고자 한다. 이는 완전한 자기 존재의 확인을 위함이다. 그 상태가 무아지경이며 거기는 자기가 큰 능력에 싸여 있음을 알 때이다. 그래서 자기 존재의 확증을 위해 종교에 심취하는 것이다.
육도 자기 존재의 확인을 위해 이것도 저것도 가져보지만 결국 그것이 육신의 쾌락뿐임을 알고 모든 것이 헛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가져 보아야만 알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이 가져도 알지 못한다.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갖고 싶은 것이 육에 속한 것들이며 소유이며 정욕으로 좇아난 것들이다. 그것들은 참 만족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더욱 갈증만 더하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있는 것은 가질수록 더욱 많이 가지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영적인 욕구는 가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아니함으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려서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만유를 가지는 것이며 내가 없는 그 자리가 영적인 완전한 자리이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가지지 아니하시므로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 그분은 그분의 소유를 따로 가지지 아니하셨다. 다만 그분 자신이 그의 전부이시다.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 안에서 나온 아들만을 소유하셨으며 아들은 아버지의 소유의 전부이시다. 그분은 나를 혹은 너를 가지지 아니하신다. 그분은 나 아닌 나이시다. 그분은 나를 원치 아니하신다. 그분은 오직 내가 없는 자신을 원하신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분이 주신 것만 받으시며 그가 주신 것을 드린 제사만 받으셨다. 그의 받으시는 것은 그의 준비하신 재물이며 그의 준비하신 제사장이시며 그의 준비하신 제단이다. 그 제단이 아벨의 제단이었으며 이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자였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신 제단이시며 제물이시며 제사장이시다. 그는 아들로서 아버지의 온전한 예배가 되셨다. 그 아들 이외에 아버지께 예배 드릴 자 아무도 없다.
그분은 내가 드리는 그 무엇이라도 받지 아니하신다. 다만 나의 가진 모든 것을 버리기를 원하시며 내가 드리는 것을 포기하기를 원하신다. 즉 종교 생활을 포기하고 그의 긍휼을 받으라 하신다. 그것들 중에 원래도 내 것이 아니었으며 지금도 내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내 것이 아니다. 나는 그분에게 드릴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다만 나를 부인하고 그를 시인하는 것뿐이다. 나는 그분에게 예배를 드릴 자격이 없는 자이며 나는 그분 자신을 예배로 드려지심에 아멘할 자이다. 그분이 그분을 위해 준비하시고 예비하신 제사에 아멘함으로 동참하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그분은 내가 없음을 알기를 원하시며 내 것이 없음을 바라실 뿐이시다. 내 것은 없다. 나는 전에도 없고 지금도 있는 것 같지만 없으며 앞으로도 없다. 나도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 나라고 하는 것은 없다. 이것이 도의 경지이며 십자가의 도인 것이다. 십자가를 지면 내가 끝나고 그 자리에서는 존재자 하나님 이외에 존재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거기서 그와 하나인 아니 그분이 오직 홀로 한 분 하나님뿐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안에 내가 없음을 알게 될 것이며 그 안에서 나 아닌 온전한 나를 발견케 될 것이다. 거기 영원한 기쁨과 평강이 넘쳐흐를 것이다. 이는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