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를 보는 눈은 주인의 눈이다. 인생을 보시는 분은 인생을 지으신 자이시다. 창조주만이 모든 피조물을 볼 것이다. 농부는 봄만이 아니라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다 소중하며 그 계절을 다 파악하고 알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다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그래서 고난은 싫어하고 편하기만을 구한다. 따가운 햇볕은 싫어하고 시원한 그늘만 찾아다닌다. 해산의 고통 뒤에 생명이 잉태됨을 아는 것은 오직 어머니뿐이다. 사람은 창조자가 아니기 때문에 전체를 보는 눈이 없다. 사람은 그 누구도 아비가 아니기에 생명 전체를 볼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사람은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일부분만 볼뿐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전체이신 창조자를 알지 못한다.
사람이 안다고 하는 창조자에 대한 인식과 개념들은 극히 적은 일부일 뿐이며 자기가 알고 있는 자기 수준일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안다 할 자 아무도 없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안다 함이 거짓말이다.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함이 거짓말이다. 사람 안에는 하나님을 알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을 아신다 하며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다 했다.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자는 자기로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함을 아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함이 참으로 하나님을 안다 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뿐이시다. 그분 자신이 그분 자신을 알뿐이시다. 그래서 성령의 계시가 없이 즉 그분 자신이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기 전에는 아무도 그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를 아는 것은 그로 안 것이지 나로 안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없다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그분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그분을 안다고 하는 자들은 그분을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을 자기가 안다 하는 자들은 자기를 속이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안다 하는 자들은 자기가 하나님이 된 자들이다.
그분을 안다고 한 자들은 다 그분을 대적하는 자들이 되었다. 자기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자들은 한결같이 교만에 빠졌으며 결국 사단의 종이 되었다. 제자들이 주님을 위해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하는 것은 자기를 전혀 알지 못하고 한 말이다.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주님은 "네가 나를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할 것이라." 고 말씀하신다. 이는 베드로의 고백이 진실 되지 않아서도 아니며 그는 아직도 자기를 모르는 자였다는 것이다. 사람은 이처럼 자기가 누군지 자신도 모르는 자이다. 자기가 자기를 안다면 그 말을 식언하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므로 하신 말씀을 잊지 아니하시고 식언치 아니하신다. 그는 반드시 그의 말씀을 다 이루셨다.
주님은 그의 제자들과 우리 모두에게 나로서는 주님을 알지 못함을 알라 하신 것이시다. 나의 확신은 오히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배척하고 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자들에게 배반을 당하셨으며 버림이 되셨으며 배척이 되셨다. 즉 하나님을 열심을 내어 섬긴다고 하는 자들로 인하여 잡혀 넘겨졌으며 죽임을 당하셨다. 나의 열심은 오히려 하나님의 열심을 거역하고 거슬리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나의 열심을 끝내셨다. 지금도 그는 나의 헛된 열심을 끝내시기 위해 다메섹 도상으로 끌고 가신다. 나의 열심은 거기서 끝나고 그의 열심이 나를 채우시고 지배하실 것이시다. 이것이 성령으로 행하는 것이다. 성령은 나의 의지를 꺾으시고 그의 의지로 다스리시고 인도하신다. 그의 모든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을 입어 성령에 이끌려 살다가 성령에게 이끌려서 그의 나라로 갔다.
"너희가 본다고 말하니 소경이다." 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의 뜻이 그러하다. 성경에는 자기가 하나님을 안다 하는 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 대표적인 자들이 종교인들이며 특히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율법사 바리새인들이었으며 하나님을 밤낮 섬기는 제사장들이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자기들만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여겼으며 그들은 스스로 선택받은 자라고 자부했으며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대단한 자부심으로 여겼다. 그러나 주님은 저들을 향하여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도 알고 너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지만 너의 아비가 참으로 아브라함이었다면 나를 알아보고 영접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셔서 온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너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사단의 자녀로 들통낸 것이라." 하셨다. 그리스도는 저들이 자신을 하나님의 보내신 자로 믿지 않는 증거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믿고 믿지 않는 근거는 그의 아버지가 누구냐에 있을 뿐이다.
믿음은 믿는 행위를 말하지 않는다. 그의 믿음과 행함은 그의 출처와 근본을 드러내고 있는 것뿐이다. 그의 아버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누군지 는 상관도 없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종교적인 교훈이다. 말과 행함은 그의 근본을 드러내고 있는 것뿐이다. 그 열매는 그 나무를 드러내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믿음과 행함은 그 나무에서 그 열매가 맺히듯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히 맺혀야 할 열매인 것이다. 이는 의무 사항도 아니며 강제 조항이 아니라 그 생명의 법에 의해 그렇게 드러나는 열매인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생명의 열매이다. 인조 된 열매가 아니다. 사람의 의지로 맺어진 열매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은 사람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이시다. 그에게서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것은 그의 근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맺는 것이지 맺는 자의 어떠함이 아니다. 이를 성경은 구원은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원인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동기가 결과라고 말하는 것이며 그 뿌리가 곧 열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시작이 곧 그의 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의 시작이 하나님이시라면 그의 끝도 하나님이시라 한다. 그의 드러남은 처음부터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가 가라지로 드러낸 것은 처음부터 가라지였던 것이다. 가룟 유다는 처음부터 가라지였다.
열매는 그 뿌리로 인하여 즉 근본, 씨, 아버지,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으로 맺은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사람이 맺을 열매가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행했다고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추수하시기 위해 당신 자신의 씨를 뿌릴 밭을 요구하신다. 농부는 자신의 원하는 수확을 위해 자기의 원하는 씨를 뿌린다. 그러나 농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라지를 뿌리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농부는 자기의 뿌린 씨를 더욱 지키기 위해 가라지들과의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 가라지들은 더욱 알곡으로 알곡 되게 할 것이다. 가짜들은 진짜를 더욱 진짜 되게 하기 위해 있는 것들이다. 어두움은 빛이 비취기 위해 있는 것이다. 심판은 새로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