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346

봉사활동의 추억을 되새기며-눈싸움 한바탕


BY 박영숙 2006-08-31

봉사활동의 추억을 되새기며-눈싸움 한바탕

키르기즈스탄에서 봉사활동을 했었는데, 요즘은 가끔씩 그 때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분명 그 때의 나는 달걀 후라이 한 개가 식탁에 오르는 것으로도 감사가 넘쳤었다. 다시 그 마음을 되찾고 싶다. 작은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르쳐 준 곳, 키르키즈스탄 가난한 나라에 살고 있는 이들의 고통스런 삶의 냄새와 신음 소리, 1주일 머무는 여행자였다면 못 보았을 고통의 현장을 생생히 바라보던 몇 개월 동안 나는 국립대학 한국어 교수로 봉사자로 지냈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알게 되면 알게 될 수록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의 염려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더 많아졌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는 것의 의미, 작은 일에 자족하고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매월 최저식비 30달러도 없어 매일같이 쓰레기통 뒤지는 사람들, 구걸하는 할머니, 구걸하다 지쳐 길에 누워 잠자는 아이들을 보았고,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힘겨운 삶이 내게 크고 작은 소유를 나눠 배가 되는 기쁨을 누리는, 풍요로운 삶의 비밀을 가르쳐 주었다. 가장 큰 문화충격이었던 무사르까(쓰레기통). 어느 날은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기어이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한 할머니가 뒤져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만큼 쓰레기 밖에 없는 무사르까(쓰레기통이 모여 있는 곳)에서 음식 쓰레기를 찾아 먹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너무 놀라 할머니를 못 본채 정신 없이 달음질 했고 얼마 못가 토하기 시작했다. 음식 쓰레기를 먹는 모습이 메쓰껍고 역해서라기 보다는 늘 배불리 아니, 항상 맛있고 즐겁게 식사하는 나와는 너무 다른 처절한 환경에 있는 할머니에게 충격을 받아 나도 모르게 나오는 구토, 눈가엔 눈물이 흘렀다. 주머니에 몇 푼 들고 할머니를 다시 찾았을 땐 내가 버린 쓰레기에서, 바로 내가 먹고 버린 뼈다귀만 남은 닭다리를 쥔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하나님, 이 할머니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세요.’ 빵을 사 드시라고 몇 푼 안 되는 돈을 건네주던 그 날 이후 나는 음식은 맛있게 먹되 매일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추위가 극심한 한 겨울, 키르키즈인들은 늘 가스가 끊어져 고생을 했다. 벌써 몇 년째 계속 되는 일이기에 현지인들은 추운 겨울을 확실히 날 수 있는 생존방식을 나름대로 터득해야 한다. 도시보다 시골은 상황이 더 열악하다. 학교, 병원, 유치원 등 공공시설과 아파트가 난방이 되지 않아 수 천 가구가 추위에 떠는 일이 많다. 난방 없이 추위를 견뎌야 하는 사람들이 무사히 겨울을 잘 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내가 사는 집도 가스 공급이 뚝 끊어졌다. 알고 보니 나라 전체가 가스가 끊겼다. 가스가 없기에 모든 가구들이 전기를 사용하면 전기도 과부하로 끊어진다. 제일 먼저 주택가의 전기가 끊어지고 나중에는 아파트의 전기마저 끊어진다. 그러면 온 나라가 밤의 정적과 추위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몇 주 지나고 전기와 가스가 들어오자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다. 한동안 오고 가는 인사말은 가스가 있어 감사하고 기쁘다는 것, 한국보다 한 단계 낮은 생활을 하던 키르키즈에서 나는 오래 전 잊었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무엇이 내게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르쳐 준 것일까. 다 떨어진 운동화와 구멍 난 바지, 그리고 몸에서 지독히 풍기는 아이들을 보며,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보며 굶지 않고 맛있게 식사할 수 있는 나의 환경에 감사했다. 내 마음 속에 뜨는 별, 키르키즈에서의 추억, 아이들과의 한바탕 눈싸움을 하면서 나는 행복했다. 시골학교 운동장에서 영하 40도의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 놓고 웃었던 곳... 나는 다시 감사의 마음을 되찾아 한 바탕 웃고 싶다.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