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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보내야 성숙한다.


BY 자매(펌) 2006-11-13

글쓴이: SHINER 떠나보내야 성숙한다.


성경은 거울이 될 수 있어도 샘플이 되지 않는다. 지금 살아 계신 하나님의 행하심 안에서 보지 않으면 성경도 제대로 볼 수 없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으니 지금도 그래야 한다고 하는 것은 줄기가 자라는 과정을 열매가 맺히는 과정과 비교하려는 것이다. 주님께로 가는 것이 저들을 구원하고 도와주는 길이지 저들을 돕기 위해 주님을 포기하는 것은 저들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 주님은 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저들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셨다. 이는 아버지가 일하시기 위함이다. 아버지가 일하시기 위해 내가 아버지께로 가야 한다. 아버지께 부탁해서 아버지가 일하시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가르치는 일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아셨다. 천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가르쳐도 되지 않는다. 오직 성령의 가르침만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낳아짐이 그러해야 하고 근본이 그러해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저들을 잡으려 하면 저들은 더욱 멀어질 것이다. 그러나 저들을 버리면 저들 중에 진짜는 주님을 따라갈 것이다. 저들을 버리지 않고주님이 감싸고돌면 저들 중에 가짜들도 붙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진짜 신부들을 골라내시기 위해 거짓으로 약속 시간과 장소를 말씀하실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살아 계신 주님임을 알 때만이 이해 할 수 있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 한 그 약속은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살아 있는 자는 돌이켜 회개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은 자는 더 이상 회개할 기회가 없다.

사랑하는 자가 떠나가면 섭섭하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으면 그가 가든 말든 아무 감정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 지를 알려면 떠날 때 보면 안다. 주님이 우리를 떠나실 때 얼마나 섭섭한가?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떠나시는 이유는 버림이 아니라 다시 오시기 위함이었다. 내가 다시 와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있겠다. 나와 관계 되었다면 나의 떠남을 아쉬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일하시기 위해 나는 떠나야 하고 또한 저들을 버림은 곧 나 자신을 버림인 것이다. 아브라함이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난 것은 자기 자신을 버린 것이다. 하나님은 거기 미련을 두지 않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성경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께로 가야 한다. 우리는 예수를 떠나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께로 가야 한다. 제자는 선생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선생의 선생에게로 가야 한다. 자식은 부모를 떠나야 성숙해진다. 남편은 아내를 벗어나야 한다. 아내는 남편을 떠나야 한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은 이렇게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부모와 처자를 버리지 못하면 주님께로 갈 수 없다. 거기 매이면 그 매임이 그곳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 형성된 것이다. 내가 누구를 사랑하면 그 사랑하는 대상에게 매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사람이 누구를 사랑하면 그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랑에 빠진다. 그래서 그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그를 떠나지 못함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그에 대한 이미지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룰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그렇다. 짐승들의 세계는 버리고 떠남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냉혹하다. 치타가 어느 정도 자란 자기 새끼를 버리고 떠나서 잠시 멀리서 지켜보다가 아예 독립을 시킨다. 그렇지 않고는 자기 새끼들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 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의 세계는 다 이렇게 버리고 떠나는 연속이다.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세상에 버려두지 아니하시면 더 이상 성숙하고 자람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잠시 버리는 것 같지만 버림이 아니라 성숙을 위함이었다. 부모의 마음에는 언제나 자녀들이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겉으로는 떠나보내야 하는 현실이다. 그래야 살아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양육하듯이 사자가 자기 새끼를 기르듯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