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따르릉~" 직장에서 분임토의중 친정 엄마와 관련된 옷 가게에서 연락이 왔다. 옷을 구입하고 외상값을 갚지 않아 수소문해서 시집간 딸 직장에까지 연락을 한 것이였다. 친정 아버지께서 대학교때 돌아 가신후 남동생과 여동생을 줄줄이 고등.중등을 시키려니 나름대로 일수.계.보험.전자제품등을 연계해 가며 생활 하셨지만 생활력이 능통치 못해 도리어 손해 보기가 일수였다. 첫 아이를 임신해 만삭이 될 무렵 엄만 빚 독촉에 은신중이였고 난 빚쟁이분들에게 이끌려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집에까지 오게 되었다. 협박 전화와 신랑 직장에까지 빚쟁이들이 찾아가니 정말 시어머니께 얼굴들 낯이 없었다. 첫 아이를 순산할때에도 친정 엄만 옆에 있질 못했다...은신중이였으니깐... 정말 소리 한번 지르지 못했다. 나의 초라함을 조금이라도 들킬까 싶어서인지...그래서 마냥 끙끙대며 아이를 낳았다.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고 실 핏줄이 다 터져 있었다. 시어머니께서는 잘 참고 대견하다 하셨지만 나에겐 아직도 맘 한구석에 응어리가 져 있다. 둘째 딸 아이를 낳았다. 두 아이를 시어머니께서 보시기엔 힘겨우셔 둘째아인 친정 엄마에게 맡겼더니 밤에 전화가 왔다. 울먹이는 엄마의 목소리였다. 빚쟁이들이 어떻게 집을 알았는지 찾아와 엄마등에 업힌 아이와 함께 방바닥에 내 팽겨져 딸아이는 소스라쳐 놀라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고 엄마 또한 서러움에 복 받쳐 울고 계셨다. 떨리는 손으로 경찰서로 연락을 하게 되었다. 경찰 두 분이 오셔 이런식의 가택 침입은 불법이라며 어떻게든 좋게 합의 하라고 하셨다. 엄마가 정말 미웠다. 나와 신랑 그리고 우리 아이와 시댁까지 그 영향이 미치니 두번 다시 마주 대하기가 싫어 친정 없는샘 치고 남남처럼 살거라 큰 소리치고 나왔지만 난 두손으로 주체할수 없는 눈물 을 닦으며 엄마를 불쌍하고 가엾고 내가 결혼을 안했으면 옆에서 보호해 줄수 있었을텐데 하며 나 자신을 미워하며 채칙질을 하고 있었다. 이젠 빚 잔치라고나 할까 ...잘은 모르지만 어느정도 해결하고 엄만 다른 사람명의로 계약해 놓은 집에서 생활하신다. 두 동생 또한 결혼해 현재는 조그마한 집 한채를 소유하고 살고 있다. 그리 돈 많은 부자는 아니지만 남한테 손 안 버리고 신용불량자 없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해 가정과 직장에 다니고 나또한 두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니며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친정 엄만 내가 이 만큼이라도 했으니 너네가 이렇게라도 산다며 큰 소리치신다. 그리고 주위에서도 우리 남매들을 보면 엄마를 닮지 않았다고들 한다며 너털 웃음을 지으신다. 동생들과 함께 이야기 한것중에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 가셨지만 그래두 엄마가 잘 키워 손가락 질만은 받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 보자고 했다. 그래서인지 각자의 맡은 역활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동생들과 나 자신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도 이젠 두 아이의 엄마로서 힘겨움을 느낀다. 친정 엄마 혼자서 세 아이 모두 대학 보내고 나니 빚 밖에 더 남겠는가... 처음엔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당연히 받아야할 권리이며 남들도 다 그렇게 하던데라고 생각하며 빚 독촉에 시달릴땐 엄마를 죽도록 미워했었는데 ...이젠 돈 주고도 못 배울것을 일찍 경험해 사회 생활하면서 좀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그리고 남매간에도 이러한 역 경으로 인해서 더 끈끈한 정이 생겨 난것 같다. 내가 바라는게 있다면 ... 엄마~!!!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우리들 곁에 있어 주세요. 그리고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합니다!!!!!!!!!!!!!!! 정...말... 사랑해요! 제가 살아 숨쉬는 그날까지...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