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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들을 생각하니 엄마가 너무 부족하네.


BY naiad71 2006-12-19

오늘도 추운데 외투를 한손에 들고 흙먼지를 뒤집어 쓰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 상원아. 신발에서부터 시작해서 양말.바짓단.책가방과 신발주머니에서 털어낸 먼지가 과장해서 쓰레기통 가득 채우고도 남지? 엄마와 선생님과 아줌마들 눈에는 너무 잘보여서 탈인 이 먼지들이 상원이에겐 왜 안보이는지,아니,그것보다도 왜 아무렇지도 않은건지 참 신기해. 항상 머리통속 어느 한부분은 저기 어디다 빼놓고 다니는 것처럼 거실에 던져버린 자켓을 찾으러 온집안을 뒤지고 다니다가 잔소리 듣고,한번도 제대로 벗어놓은 적이 없는 양말을 그대로 빨아서 그대로 말려주는 엄마때문에 힘들지? 오늘은 빨래말리다가 보니,내복바지 다리 두짝이 모두 멀쩡하게 있어서 엄마가 조금 웃었어. 꽈배기처럼 한쪽은 바르게,한쪽은 뒤집혀있던 내복바지 엄마가 그것도 그대로 빨아서 그대로 말려주기를 세번하니까 상원이 너의 뇌가 반응한거야. 그렇지? 상원이 니가 엄마의 잔소리와 핀잔과 야단에 힘든것처럼 엄마도 힘들어. 도저히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이런 행동들때문에 말이야. 저번에 저녁먹고 오면서도 그랬잖아. 너가 아들이기 때문에 엄마가 너를 키우면서 특별히 더 좋은 점이 뭐있는지 대보라고.. 상원이 너의 대답도 참 재밌었지. '제사를 모실 수가 있잖아요.' 이놈아. 그게 좋은 건줄 아니. 엄마는 너한테 제사를 물려주게 되는게 가장 가슴아픈데. 하긴 그건 엄마생각일 뿐 너의 생각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아빠의 서로 다른 생각중에 최고로 다른 생각도 바로 제사에 대한 거니까...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하늘을 보다가,우리집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는 건널목을 뛰어가는 어떤 남자애를 보니,문득 상원이가 생각나더라. 우리 아들도 건널목을 저렇게 뛰겠지. 어렸을 땐 입이 짧아서 좋아하는 음식이 별로 없던 너가 부쩍 고기를 좋아하게 된 요즘에 들어서 내 아들이 슬슬 남자가 되어가는구나. 테스토스테론이 왕성하게 생기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너의 하루를 상상해보니,참 답답하겠어. 옛날같으면 칼싸움하고 전쟁놀이하고 산을 오르내리고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으면서 너의 남자다움을 맘껏 발산하고 살았을텐데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서 책읽어라 공부해라 움직이지 마라 뛰지 마라..뭐뭐 하지 마라 소리만 듣고 있어야 하니말이야. 심지어는 방정리 책상정리 잘 해놔라.옷 얌전하게 개켜놔라.이런 잔소리까지 들어야 하니 말이야. 막상 너가 저질러놓은 난장판- 열려진 채 있는 서랍.발디딜틈이 없는 바닥.먼지가 수북한 책가방과 필통과 따로놀고 있는 연필들.개발새발 알림장.보기만 해도 찌푸려지는 노트속의 글씨.-를 보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길래 이모양일까 순간 그런생각이 막막 든다. 그래서 잔소리를 하게 되고.. 얼마나 답답하니. 흙먼지가 아니라 흙과 모래를 온몸에 묻히고 뒹굴어도 답답할 이 시기에 그까짓 먼지가 뭐라고 그것좀 묻히고 들어왔다고 엄마의 잔소리를 들어야 하다니 말이야. 어지간한 여자라면 별불편함이 없을 이런 생활들이,상원이나 상원이 친구들같은 소년들에겐 얼마나 힘들고 답답할 지..엄마는 이제서야 깨달았어. 그런데 어쩌면 좋니,앞으로 살아가자면 더욱 여자처럼 살아야 하는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걸. 너의 남자다움을 뽐낼 수 있는 시간이나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걸. 남자들하고만 잘 통하는 남자보단 여자들하고도 잘 지낼 줄 아는 남자들이 더 살기 좋아진 세상이 된 걸. 이번 일요일에 영화보러 갈까? 엄마 아들 좀만 더 크면 친구들하고 가겠지? 그때까지는 엄마하고 보러가자. 엄마보다 더 영화를 잘 보는 아들의 해설을 듣는 재미가 쏠쏠하거든. 사랑한다. 상원아. 실은 엄마가 상원이 많이 믿는 거 알지? 2006년 12월 19일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