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노를 젓는 우리엄마에게.. 어렸을 때 아침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은 아마도 엄마의 ‘ 또르르, 또르르’ 부엌에서 거실로 안방으로 분주하게 움직이시는 소리때문이었던거 같습니다. 30년 동안 공무원으로 직장생활을 하셨던 엄마는 아침출근 전에 모든 일을 다 마치셔야했기때때문이었는지 엄마의 발을 볼 수가 없을 만큼 바쁘셨던 거 같아요. 새벽부터 가족들을 위해서 지어놓으신 밥에는 엄마의 종종걸음이 그대로 담아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종종걸음의 횟수만큼 한해한해 우리 삼남매는 무탈하게 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은행에서 정년퇴임을 하신 아버지와 30년 가까이 공무원으로 근무하시다가 정년퇴임을 하신 어머니가 계셔서, 우리 3남매는 어릴 적에 다른 아이들보다 부족함 없이 유복하고, 밝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유복하게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까지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평범한 나날들 속에서, 집안을 어둡고 힘든 날 속으로 몰아넣는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엄마는 지금도 믿을 수가 없다고 하셨지요. 아버지가 보증을 서셔서, 평생을 모아놓으신 재산을 잃고 겨우 살고 있는 집에서 쫒겨나지 않고 살수 있게 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그 일로 인해서 가볍게만은 넘길 수 없는 마음의 한구석에 조금씩 우울이라는 녀석과 그 친구인 자신감이 결여되는 병 아닌 병을 가지셨던 거 같아요. 30년 동안 직장생활과 집안일을 병행하시면서도 언제나 밝고 건강한 미소를 지어주시던 엄마에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소가 사라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엄마의 그 힘듦에 저의 무심코 내뱉은 부모님을 원망하는 말과 행동들이 그 무게를 더했을 거 같아서 정말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부모님 때문에 유복하고 밝게 자랄 수 있었으며, 살아오는 동안 저에게 해주신 정말 따뜻한 사랑을 생각하지 못하고, 현재의 힘들어진 있는 경제적인 면만 머릿속에서 커져만 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직장에서도, 동네에서도 멋쟁이로 통했던 엄마는 65세가 넘으신 연세를 잊으시고 지금까지도 분주하지 않은 날이 없으실 정도로 활동을 하고 계신 모습은 우리 3남매의 고개를 저절로 숙이는 숙연함을 가져옵니다. 얼마 전 엄마생신 때 일이었습니다. 우리 온가족이 모여서, 축하드린 그 자리에서 아버지가 건네 주신 편지한장을 받으시고 읽어 내려가시는 엄마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있었습니다. 아마도 엄마의 마음속에 있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씻겨가는 눈물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날이후로 엄마의 마음속은 훨씬 밝아지고 새로워졌나 봅니다. 물론 여전히 집안의 어려움은 남아 있지만, 엄마의 얼굴 속에는 더 이상 서글프고 원망스러운 회환의 세월은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엄마, 그 동안 많이 힘드셨지요. “ 편지를 쓰는 이 순간에 옛날 생각이 납니다. 50대 초반의 우아한 자태와 센스 있게 옷을 코디 해서 출근하시던 멋쟁이였던 우리 엄마. 그렇게 저에게 삶의 여유와 힘을 주셨던 엄마이셨는데 이제는 얼굴 빛 너머 삶의 한 부분을 어렵게 이기고 계시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다물결 건너저편언덕에, 산천 경개좋고 바람 시원한곳 희- 망의 나라로’ 라는 노래의 한구절처럼 엄마 곁에는 희망의 나라로 노를 함께 저어가고 있는 3남매와 아버지가 있습니다. 엄마, 이제는 힘든 부분에서 멈추시고 밝고 건강하신 모습이셨으면 합니다. 이제는 제가 엄마의 희망의 날개가 되어서, 엄마 어깨에 있는 무거운 짐을 벗으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올 겨울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감이 열리는 우리집 앞마당에서 예쁘게 사진도 찍고, 그 동안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가본적이 없었는데…이번 겨울에는 행복한 나들이를 떠나보려 합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웃음을 잃지 않고 오래도록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엄마를 사랑하는 큰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