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민들이 떠난 뒤 서강대교가 놓이고 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지금의 밤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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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섬에서 살았던 주민들이 15일 오전 성산대교 밑에서 열린 귀향제에서 밤섬 방향으로 상을 차려놓고 조상들에게 예(禮)를 갖추고 있다. /마포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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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직전 마포나루터에서 바라본 밤섬 풍경. /마포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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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붓던 빗줄기는 멈췄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한강 팔당댐 방류량이 급격히 늘어나 밤섬으로 가는 바지선을 띄우기 힘들다는 ‘비보’가 전해졌고, 2년 만에 고향 땅을 밟는다며 가슴설레하던 80여명의 머리 희끗한 이들의 어깨는 늘어졌다. 그래도 기운만 빼고 있을 수는 없는 터.
15일 오전 마포구 망원동 성산대교 밑 한강둔치.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2007 밤섬 실향민 귀향제’가 시작됐다. 1만원짜리 지폐를 한가득 문 돼지 머리 뒤로 시루떡과 약과, 곶감에 거봉포도·멜론·파인애플까지 올려진 푸짐한 상이 차려졌고,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주민대표들이 조상들께 술잔을 올렸다. 무당 김춘강(61)씨가 흥겨운 몸짓과 구성진 목소리로 한강의 물신령 ‘용태장군님’을 모셔오자 가라앉아 있던 분위기는 흥이 돋았다.
소형 삼지창에 돼지머리를 꽂은 무당은 유덕유(71) 밤섬 보존회장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원했다. “학업자 사업자 자손만대 번창하고 만사형통하고 승천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어허이~ 국태민안(國泰民安)에 시화연풍(時和年豊)이로다.”
지금은 황조롱이가 날아다니고 토종 거북 남생이가 노니는 서울 생태의 보고로만 알려진 밤섬. 그러나 1968년까지 62가구 443명의 주민이 한가롭게 살던 조용한 강마을로, ‘서울시 마포구 율도동’(栗島洞)이라는 행정구역까지 있었다. 섬에서 한강철교 부근까지 아름다운 모래밭이 펼쳐져 있었고, 마을 신령인 부군신을 모신 부군당(府君堂·조선 전기부터 한양의 각 관청에 설치하고 신을 모신 곳)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비는 ‘부군당 도당굿(서울시 무형문화재)’이 거나하게 펼쳐졌다. 강물을 그대로 퍼올려 마셨고, 밤에는 호롱불을 켜 어둠을 밝혔다. 옛 주민 서순식(60)씨는 “여름철이면 사대문안 사람들이 피서지라며 찾는 통에 발디딜 틈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김공선(73)씨의 추억담이다. “젊은이들은 강남쪽 영등포에 있던 피혁·맥주 공장에 다녔고, 아이들은 강 북쪽 마포로 올라가 서강초등학교에 다녔소. 가을 운동회 때면 달리기에서 상이란 상은 전부 밤섬이 쓸어오는 거야. 모래바닥에서 맨발로 뛰어놀던 애들이랑 어디 상대가 되겠소?(웃음)”
밤섬 사람들의 삶을 허물어뜨린 것은 ‘개발’이었다. 밤섬이 한강의 물흐름을 막고 있는데다 여의도를 개발하려면 제방을 쌓아야 하는데, 그 돌을 밤섬에서 캐야 한다는 것이었다. 밤섬의 ‘사형선고’인 셈이다. 주민들은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자락으로 쫓겨났고, 1968년 섬은 폭파·해체됐다.
“졸지에 삶터를 잃게 생겼는데 반대 안했느냐”고 묻자 김공선씨가 껄껄 웃었다. “박정희랑 김현옥(당시 서울시장)이 밀어붙이는데 어떻게 반대를 해?” 하지만 밤섬은 없어지지 않았다. 다만 주인이 바뀐 것일 뿐. 폭파된 자리에 퇴적물이 쌓였고 버드나무와 물풀이 우거지며 철새들이 날아들었다. 이제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생태계 보전지역’이다. 밤섬 사람들도 여전히 밤섬 사람들이었다. 주민 모임인 ‘밤섬 보존회’를 만들어 두터운 정(情)을 쌓아왔고, 새로 정착한 마포구 창전동에 다시 부군당을 만들고 늘 그랬듯이 정월이면 모두 모여 ‘부군당 도당굿’을 올렸다.
‘밤섬 보존회’ 주민들이 추석을 앞두고 ‘귀향제’를 올리기 시작한 것은 1999년부터. 2002년부터는 마포구와 마포문화원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고, 2003년부터 2년마다 이어지고 있다. 올해도 200여명의 주민이 바지선을 타고 밤섬을 찾아 마을 터에서 제를 지내고 굿판을 벌이려 했지만, 가을 폭우의 심술에 고향 방문은 2년 뒤로 미뤄졌고, 밤섬 쪽을 바라보고 제와 굿을 올린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용태장군님’의 마지막 축원에 주민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돌았다.
“고향에 못 건너들어가 아쉽지? 걱정하지 마라. 노인 마마들이 우리 창전동 자손들 부귀공명 누리게 해줄 테야. 어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