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양복이 많았다.
이는 내 직업이 만날 고객을 만나야 하는 세일즈맨인 까닭이다.
하여 양복에 고운 넥타이까지를 매는 정장은 기본이었다.
그랬던 양복 착용이 사라진 건 인터넷 시대가 착근되면서부터다.
출판물 세일즈맨에게 있어 이러한 사조(思潮)의
패러다임은 곧바로 내 생업에서의 수입 감소를 불러오는 단초로 작용했다.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보면 되지 뭣 하러
돈을 주고(시사 주.월간지) 사 보냐?”며 더욱 급격히 시큰둥했다.
아이들은 잇따라 고교로 진학했고 이어선 대학도
가야 하는데 그래서 ‘이것 참 큰일났다!!’ 싶었다.
하는 수 없었다.
투잡을 모색하여 도입해 실천했고 더불어 자린고비
행각에도 더욱 열심이지 않으면 당최 방도가 없었다.
양복은 당연히 싸구려 점퍼로 대체되었다.
천만다행으로 아이들은 모두 공부를 잘 해 주었다.
동가홍상으론 자강불식(自强不息)으로써 국립대학을
장학생으로 진학하는 고마움까지 선물했다.
지난 2월에 아들과 딸을 모두 대학 졸업까지
시키고 나니 그제야 비로소 한숨을 돌리는 기분이었다.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에 아들이 집에 왔다.
그러더니 10년도 더 된 구닥다리 양복을 세탁해 다시
입어야 하는 이 아빨 의식하곤 새로운 양복을 한 벌 사 주었다.
애나 어른이나 공통적인 건 다른 사람도 아닌,
사랑하는 가족이 옷을 사 준다는 것에 대한 뿌듯한 행복감일 터이다.
하여간 그처럼 아들이 사 준 양복 덕분으로 그 옷을 입고
선친의 산소 이장과 조모님과 조부님의 제사까지를 ‘단정하게’ 잘 마칠 수 있었다.
얼마 전 모 문학회의 신인작가 공모전에서 당선되어 조만간 수필가로 등단하게 되었다.
어제 문자 메시지가 왔는데 오는 7월 24일에 등단식을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날 역시도 허름한 입성보다는 역시나
아들이 사준 근사한 양복에 멋들어진 넥타이까지를 매고 갈 일이다.
늘 그렇게 지독하게 가난하였기에 아이들에겐
딱히 해준 게 없다는 자격지심을 지금도 지니고 있다.
그러하기에 변변한 바라지조차 없었음에도 여전히 어렵다는 이 취업난 시대에
대기업에 당당히 합격한 아들은 보기만 해도 흐뭇한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딸 또한 대학 재학 시절에 4년 연속으로 장학금을 받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녀석을 가르치는 데는 더 더욱 어려웠을 것임은 자명한 이치이다.
고로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르고 뿌듯한 자긍심까지를
부여하는 대상이 바로 내 사랑하는 아들과 딸인 것이다.
벌거숭이로 달랑 양복만을 입어도 나는 훈훈하다.
아들이 사준 양복엔 녀석이 이 아빨 생각하는 따스함이 내재(內在)된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