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있고 슬기로운 사람 앞에는 역경 따위가 없다.
--한용운--
한 용운(1879~1944) 일제 강점기의 시인.승려.독립운동가.
불교를 통한 언론,교육 활동을 하였다.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으며,그 대안으로 불교사회 개혁론을 주장했다.
3.1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고,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추가.보완하였다.
옥중에서도 '조선 독립의 서'를 지어 둑립과 자유를 주장하였다.
그의 시,'님의 침묵'은 그를 대표하는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는 저항문학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894년 ,16세의 나이에 가출하여 동학농민 운동에 참여하는 등 전생애를 민중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으며,
조국광복을 미처 보지 못하고 수많은 옥고를 치루면서도 굴하지 않고 비타협적인 독립저항운동을 계속하다가,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기 싫다며 북향으로 지은 성북동 집인 '심우장'에서 냉방으로 생활하다가 1944년 입적하였다.(위키백과)
http://blog.daum.net/migaein1/2325
16세의 나이로 가출을 하여 동학농민 운동에 참가하셨을 때 그의 부친이 관군의 중군이 되어 농민군을 토벌하는 데 참여하는 ,
웃지 못할 시대의 비극의 중심에 선 이후 출가를 하고 불교를 통한 사회개혁을 꿈꾸다 일제강점기를 맞아 저항을 하면서 ,
거의 전 생애를 역경으로 보냈음직한 선생의 입으로 '용기있고 슬기로운 사람 앞에는 역경이 없다.'하셨으니 산지식이리라!
과연 그는 수많은 옥고를 치루면서도 결코 굴하지 않았고,혼수상태에 빠져 돌아가시게 된 자택도 북향으로 지으셨다 하니 ,참으로 꼿꼿하신 분이다.
요즘들어 모든 사회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정치권에선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 수 없다는 헛소리들을 해대는데,
과연 그들은 맑은 물로 살아 보고서 그런 말들을 하는지 따져 묻고 싶다.
불귀의 객이 되고 만 김 구 선생이나,장 준하 선생의 행적은 미처 온전한 삶을 살필 수 없으나,
이후의 함 석헌 선생이나,법정 스님,김 수환 추기경 등의 삶을 살펴보면 ,정치꾼들의 궤변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할 것이다.
문 재인이 당대표로 선출이 된 이후 첫 행보로 국립묘지를 찾아 만고의 역적,이승만과 박정희의 묘소를 참배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수 년 전 안 철수가 그들의 묘를 참배했다고 해서 겁나게 개지랄을 떨어대던 급진좌파들이 잠잠한 것이 의아하기만 한데...
명분은 대통합을 내세웠다지만,정치공학적이기만 한 얄팍한 수법임을 읽을 수 있어서 씁쓸하다.
기껏 반민특위에서 처단 대상으로 모아놓은 친일 매국노들을 ,오히려 사회 주요 요직들에 중용함으로써 독립투사들을 탄압받게 만들고,
6.25동란이 발생하자 한강다리를 폭파시키고 도망가버린 개만도 못한 이 승만이를 아직도 국립묘지에 놔두고 있는 것이나,
친일 매국노,빨갱이의 화려한 전적에도 불구하고 쿠데타를 통해 불법으로 정권을 잡은 이후 17년간 독재정치를 펼친 귀태(鬼胎) 박정희를
국립묘지 최고의 명당자리에 모셔두고 있는 것이 분하고 분해서 미치겠는데,
그러다보니 그 무식한 딸이 불법선거를 통해 청와대에 입성하게 만들었으니 더욱 분하구나.
부녀간 불법으로 대통령이 된 부끄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게 만들었던 이 치욕스런 현장을 찾아
반면교사 삼으려던 안 철수의 발걸음엔 게거품을 물고 난리법석을 피우던 무리들이 ,이젠 표를 구걸하기 위해서 비겁한 타협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말이 좋아서 공과 과를 분명히 하겠다는 식으로 얼버무리지만,친일 매국노들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층들에의 아부이고 타협일 뿐이다.
비운의 영웅 노 무현을 이용해서 우려먹기만 하고 협조라곤 하지 않던 똥파리 집단들이 2중대로도 모자라다 싶었는지,
직속 예하부대로의 예속 선언을 한 것에 다름아니라고 생각한다.
말이 좋아 전쟁선포지,사실은 받아줍시사고 깨갱거리며 투정을 부리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두고 볼 일이다.
지난 대선부터 끊임없이 기회가 닥쳐왔지만,집안 싸움만 일으키며 분란만 부추기고 적전분열을 함으로써 여당이 승리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워온 그들이 ,
과연 자신들의 정체성인 친노집단을 부정하고 대통합의 정치를 추구할 수 있을 거라곤 기대조차 하고 있지 않지만,
기적적으로라도 정신들을 퍼뜩 차리고 야당 본연의 자세를 견지하여 ,잘못하는 여당을 견제하고 정권교체를 해낼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다면 ,
기꺼이 응원하고 동참하여 작으나마 힘이 돼 줄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역시~' 하고 실망을 하게 만든다면 안 철수가 소속돼 있는 것과 상관없이 무소속 혁명을 외쳐갈 것이다.
정 동영 등의 국민모임은 어쩐지 패잔병들의 모임인 듯하고 ,순수성이 의심스러운 세력이다.
무소속 혁명이라...
20여 년 간 외쳐온 주장이었지만,타당하긴 하나 실현 가능성이 없어보인다며 될놈 밀어주겠다는 사람들로 인해서
잘못된 구정치꾼들의 세력을 더욱 공고히 해주는 걸 바라보기만 했지만,이제 그들에게 묻고 싶다.
무소속혁명이란 천지개벽적인 변화가 없이 서서히 개혁한다는 건 불가능하단 게 증명되지 않았느냐고...
조금 덜 도둑질해 먹은 놈 밀어줘서 당선시켰더니 ,더 크게 도둑질해먹으라고 다시 뽑아준 줄 알고 배짱만 키우지 않았느냐고...
20여 년 전부터 무소속혁명을 추진해왔더라면 지금쯤 우리는 제대로 주인 대접받으며 ,
올바른 정치문화를 후손들에게 물려줄 기쁨에 가슴벅차 있을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고...
적어도 박근헤같은 거짓말의 대가가 대통령이 돼서 배째라고 나대는 꼴은 안 볼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슬기롭지 못한 상태에서 용기만 갖고 길길이 뛰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무시하고 싶겠지...
실제로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친일 매국노 척결 운동과 친일파 재산 환수를 외치기 시작한 건 아니었다.
무소속 혁명 역시 결정적인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하고 해 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런 사심없이 우리 모두와 후손들을 위한 고민을 해 보잔 주장이 가끔은 먹히기도 해서 공감을 해주는 사람도 있으니 ...
가물가물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며 여생을 바쳐가다 보면 문득 부는 바람에 ,말라비틀어진 민심의 들판에 커다란 들불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믿으련다.
만해 선생께서 16세의 어린 나이에 동학농민 운동에 참여하실 생각을 하시고 나서 딱 반 세기 동안,
끊임없이 사회개혁을 외치시며 ,잔학무도한 일제에 맞서 저항을 하신 것이,당신의 생전에 독립을 안겨주진 못했지만,
돌아가신 지 1년 만에 드디어 가슴 벅찬 광복의 기쁨을 거두지 않았는가 말이다.
독재와 군정을 거치며 숨막히는 삶을 살면서도 끝없이 민주화 투쟁을 해주신 민주열사들이 있었기에 ,
당신들 중 많은 분들은 상상치도 못할 만큼 이 정도라도 민주화가 된 것이다.
그러나 어떤가?
진정한 광복은 아니었고,진정한 민주화도 아니었다.
여전히 친일 매국노들이 사회의 곳곳에서 한민족의 정체성을 짓밟으려 기를 써대고 있고,정경유착으로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고,역사왜곡에 몰두하고 있다.
말로는 민중들이 주인이라면서 ,실제 행동으론 민중들을 기만하고 ,민중들을 자신들의 사리사욕의 도구로만 써먹으려 한다.
이제 우린 정의로운 사회,공정한 세상을 이뤄야 할 숙제를 안게 됐다.
수많은 순국선열들이 그랬듯,우리들도 우리들이 못 보고 못 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린 우리 조상들과 선배들에게 독립을 빚졌고,민주화를 빚졌다.
정의로운 사회,공명정대한 경쟁이 보장되는 사회를 이루기 위한 헌신을 함으로써 후손들에게 갚아야 한다.
독립이 그랬듯,민주화가 그랬듯 당시로선 불가능할 것만 같았지만,결코 포기하지 않고 투쟁한 결과 우리들이 그 열매를 따먹고 있는 것이다.
악랄하기 그지없는 잔학무도한 일본을 물리쳤고,잔학하고,추잡한 ,총칼을 앞세운 군사독재 정권도 몰아낸 저력이 있는 민중들인 것이다.
그런데 나 좀 편하게 살자고 불의를 보고도 외면하고 ,사기협잡을 당하면서도 억울하지 않다면서 주저 앉아버리면,
우린 조상들에게도 빚만 지고,후손들에게도 어마어마한 빚더미를 안기고 가는 후레자식 세대가 되고 말지도 모른다.
그래...그리 내 몸뚱이만 편하자고 외면하고 ,숨어지내면서 ,마음까지도 평안하신가?
비겁하게 살지 말자.겁쟁이로 살다가 가진 말자.
용기를 내고 머리를 맞대고 슬기를 모은다면 우린 능히 정의로운 세상을 이뤄 후손들에게 당당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