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음이 또 다른 삶으로 인도한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그것은 닫히면 그만인 문이다.
--카뮈--
알베르 카뮈(1913~1960) 프랑스.작가.저널리스트.철학자.
주아브 보병연대에서 복무하던 아버지와 문맹이며 청각장애인인 스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알제에서 아주 가난하게 살면서 프랑스 중등학교인 리세에 들어가 빈부격차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으나 폐결핵으로 중퇴를 하고 가정교사,자동차 수리공,기상청 인턴과 같은 잡다한 일을 하였고,
이 무렵 평생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게 됨으로써 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아마추어 극단을 주재하며 1935년 플로티누스에 관한 논문으로 철학 학사 학위 과정을 끝낸다.
가난했지만 멋부릴 줄 아는 멋쟁이였으며,운동을 좋아했고,훗날 외모면에서 종종 험프리 보가트에 비교되곤 했다.
프랑스와 알제리 공산당을 오가며 트로츠키주의자로 낙인 찍혀 제명당하게 되며 ,공산당의 교조적 태도를 혐오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지하에서 '콩바'라는 레지스탕스 조직에 가담하여 나치에 저항하여 활동했고,
연합군이 파리를 해방한 1943년엔 신문의 편집자가 되어 전투 이후를 보도했으며 '콩바'가 상업적인 신문이 되자 사임했다.
그의 철학 중 주목할 만한 것은,그가 '시지프 신화'에서 설명하고,'이방인'과 '패스트'와 같은 작품에서 설명한 ,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상태,세계의 의미,정순함에 대한 우리의 열망의 결과에 따른 부조리에 대한 사상이다.
'콩트' 사임 후 알게 된 학문적 동반자 장폴 사르트르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카뮈가 실존주의자들의 캠프로 굴러 떨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그의 에세이 에니그마와 다른 작품들을 통해 그에 대해 이념적 꼬리표를 붙여 분류하는 것을 거부했다.
하지만 그의 사상 중 많은 중요 부분은 실존주의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1950년 인권 운동에 전력을 다했고,평화주의를 외치고, 사형에 반대하는 저항을 계속했다.
그를 부조리주의 철학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시지푸스의 신화'이후 그는 점차 부조리주의에서 멀어졌다.
연구자들은 카뮈의 사상을 다른 철학자들의 사상과 구별하기 위해,
일반적인 모순을 야기하진 않으나 특정한 경우의 논리적 모순을 야기하는 부조리의 패러독스를 말한다.
카뮈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독자에게 행복과 슬픔,어둠과 빛,삶과 죽음과 같은 이원성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행복이란 무상한 것으로 인간의 상태는 하나의 필멸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그는 병적이지 않게 삶과 행복의 위대한 진가를 반영하면서 이 분석을 해냈고,
신화에서 ,우리는 어떻게 부조리를 경험하고,어떻게 부조리와 함께 살아가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우리의 삶은 여기에 가치를 두는 데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삶은 의미가 없고 ,따라서 무가치하다고 받아들이면 ,우린 죽어야 하는가?며 반문하고 있다.(위키백과)
카뮈 사상의 정수를 요약한 말 중의 하나라고 해도 좋을 명언이라고 개인적으론 생각한다.
'시지프스의 신화'적 사상은 ,불가에서 인생을 고난의 바다라는 뜻의 '사바'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는데,
죽음 이후의 삶을 꿈꾸며 자신의 나약함을 변명하거나 ,그에 대한 위안을 삼으려는 사람들이나,
그런 나약한 사람들의 내세에의 기대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이비 종교인들의 가소로운 모습에 혐오를 해온 나로선 공감 백 배를 표하고 싶은 말이다.
'내세가 있을지도 모르니 현생은 대충 살아도 되느니라'는 식의 나태를 부추기는 듯한 행태가 심히 우려스러운 것이다.
만일 내세가 있다 하더라도 가식적인 기복종교 행태에만 몰두하고 ,현실적 삶에 있어선 남을 이용하고, 깔보고, 무시하며,억압하는 삶을 살았다면 ,
그러면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며 화려한 삶을 살았던 그들은 내세에서도 어김없이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천국이네,극락이네 하는 곳은 ,초라하나마 현세를 천국이라 여기며 가장 인간적인 삶을 산 사람들의 몫이 될 것이다.
그러니 죽음 이후까지를 염려하느라 삶을 낭비하지 말고,주어지는 순간순간에 충실하고 만족하며 즐기는 삶을 살아얄 것이다.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삶을 살아가노라면 ,오늘 또 새로운 하루를 맞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
물론 정신적이든,물질적이든 빚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하루하루를 기적처럼 여기며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지못해 살아야 하는 삶이라면...
죄인이라는 죄책감에 빠져 어떤 절대자에게 구원해줄 것을 갈망하느라 스스로 주도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만약 신이 있고,절대자가 있더라도 그런 사람들을 어여삐 여기긴 힘들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만든(?) 자식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감히 신과 인류의 관계에 대입코자 한다면 불경죄로 고소당할까?
나는 독신주의자이길 원했었지만,자신을 쏙 빼닮은 아들,딸의 재롱을 보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극한의 행복을 읽어내곤 결혼을 결심했다.
지금으로 봐선 늦은 편도 아니지만,20여 년 전만 해도 비교적 늦은 30대 초반에 결혼을 하여 첫 딸을 얻고,연년생으로 둘째 딸을 얻었을 때의 감동이라니...
나는 어쩌면 그 두 번의 감동의 순간으로 내 평생 누릴 모든 행복을 다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젠 그 벅찬 감동에의 갚음만이 남아있는 것인지도...
지내놓고 보니 정말 그 가슴벅찬 감동 이후부터는 시련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두 녀석이 당당하게 사회에 나서게 된 것을 보게 됐고,못난 부모들에게서 났으되 청출어람이라고 해도 좋을 삶을 살아줄 것이란 믿음이 있으니 ...
또 다시 녀석들의 제2의 탄생을 바라보는 벅찬 감흥에 휩싸이게 되고,이제 또 다시 갚음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이젠 시련도 없으니 더욱 감사하며 ,더 열심히 빚을 갚는 심정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거짓말처럼 판박이 삶을 살고 있는 녀석들을 보니 ,더욱 조심스러워지는 것이...
지금의 내 삶이 앞으로 녀석들이 내 나이가 됐을 때,녀석들의 모습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 바짝 긴장을 하게 된다.
함부로 살아도 안 되겠구나,대충 살아서도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생각도 행동도 함부로 할 수가 없다.
참으로 즐거운 구속(?)이다!
이처럼 창조주인 신이 있다면 자신의 피조물인 인류와 자연이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공존하길 바랄텐데...
인간들은 신을 찜쪄먹으려 하고,스스로 신이고자 하면서 만물위에 군림하려고만 함으로써 세상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유대인들이 그렇고,친일 매국노들이 그렇고,유 병언류의 사이비가 그런데,하나같이 교활하고 음흉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보편타당한 논리가 없이 그저 자신들에게 이가 되느냐 해가 되느냐에 따라 모든 사물현상을 평가하는 마피아적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탈무드에 기반한 정신적,현실적 삶을 살아가는 듯한 유대인들이 전쟁을 일삼거나 ,약육강식을 부추기고,환전,고리대금으로 전세계의 경제핏줄을 거머쥐고,
이미 마음만 먹으면 목표로 한 나라나 대륙을 뒤흔들 수도 있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석유 등 원자재나,식량,금융 메이저들을 장악해버린 그들이 제2의 바벨탑을 쌓고 있다는 설도 거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
그들이야말로 이율배반적인 논리를 내세우는 위선적인 민족이라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친일 매국노들은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암약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아예 공공연하게 본색을 드러내며 파워게임을 주도하고 있는데,
제1야당이란 존재들까지 이미 그들의 손아귀에 잡힌 꼴이 되어 친일 매국노의 하수인 노릇에 여념이 없다.
10년이란 정권교체기의 달착지근한 꿀맛을 본 이후론 더욱 노골적으로 제2중대로서 충성을 다하고 있는 꼴이다.
어쩌면 그 10년도 의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참으로 교활하다는 생각이 들고 몸서리가 쳐지려고 한다.
이명박,유병언 류의 사이비 장로들로 세력을 갖춘 개독교도 들이 상식을 벗어난 작태를 보임으로써 ,
개신교가 우리나라에서 기적적인 세확산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으로 친일 매국노들의 음모를 의심하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의 현실을 천국처럼 여기고 ,마음껏 행복할 수 있는데,
세계화니,글로벌이니,지구촌이니를 운운하면서 복잡하게 꼬고 또 꼬아버리면서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헝클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천국처럼 만들어 마음껏 누리면서 행복을 만끽하다가 편안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다.
그야말로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자세가 가능하면 이곳이 바로 천국이 된다.
최선을 다하는 것의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천양지차가 될 수도 있는데,
실수할 확률을 줄이고 싶다면 가급적 욕심을 버리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것도 위험하지만,지나치게 과소평가를 하면 게을러지기 쉽고,천국은 남 얘기가 되고 말 것이다.
냉정하게,객관적으로 스스로를 평가하고,분수에 맞춰 살아가면서,조금씩이라도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고자 하는 의지를 견지한다면,바로 여기가 천국이 될 수 있다.
적어도 나,미개인은 지금 천국에서 살고 있는 기분이다.
더 이상 행복해진다면 감당을 할 수 없을 것 같고,오히려 부담스러워질 것만 같다.
약간의 부담과 부족함,그리고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스트레스가 쉬지 않고 닥침으로써 나태할 수가 없다.
그리고 모든 걸 내 의지대로 수행함으로써 그에 동반되는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다는 생각에 살짝 자부심도 생긴다.
얼마간은 위험할 수도 있는 불의세력들과의 투쟁도 선언을 해보임으로써 약간의 긴장감까지 내것으로 삼을 수 있어서 더없이 만족스럽다.
그리고 내 주제에 얼마간의 나눔을 꾸준히 실천하며 살 수 있으니 ...뭘 더 바라랴!
지금 이 곳은 나,미개인의 천국이다!
이것으로 충분히 만족하니,설사 내세가 있다 하더라도 더는 바라지도,기대하지도 않고,준다 하더라도 사양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