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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정심


BY 미개인 2015-05-17

종이나 경쇠를 고요히 치듯,착한 마음으로 부드럽게 말하면 그의 몸에는 시비가 없어 ,그는 이미 열반에 든 것이니라.

                                       --법구경--

 

법구경: 서기 원년 전후의 인물인 인도의 다르마트라타가 편찬한 불교의 경전으로 ,

석가모니 사후 삼백 년 후에 여러 경로를 거쳐 기록된 부처의 말씀을 묶어 만들었다고 한다.

불교의 수행자가 지녀야 할 덕목에 대한 경구로 이뤄져 있고,주요 내용은 폭력,애욕을 멀리하고 ,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여 선한 행위로 덕을 쌓고 깨달음을 얻으라는 것이다

절반 가량은 다른 불경에서 발췌한 것으로 ,부처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유명한 말씀들이 포함돼 있고,

나머지는 인도의 여러 문학 작품에 곧잘 인용되는 간결한 격언들을 수집한 것이다.

상좌부나 대승불교의 전통을 가진 불교 국가에 널리 퍼져있으며,스리랑카에서는 수백 년 간 수행자의 입문서로 이용됐고 모두가 이를 암송한다고 한다.

(위키백과,브리태니커)

 

전 사회적으로 전인미답의 사회적 불균형이 만연하고,친일 매국노 등의 범죄자들이 등극을 하게 되면서 ,

직접 그들에게 화풀이를 하지 못한 분노극복 장애인들이 언제든 싸움을 할 태세를 갖추고 길거리를 채우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보복운전도 그런 현상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최근 갑자기 끼어드는 차에 경고등과 경적을 울린 잘못(?)으로 보복운전 피해를 입었던 기억이 있는데...

갑자기 교차로에서 차를 세우곤 한 젊은 놈팽이가 뛰쳐 나와서 발광을 해댄다.헐~

 

많이 화가 났지만,조용히 유리창을 내리고, 좋게 이야기하려 했지만,내 말을 들을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그를 보곤 ,

조용히 차를 내려서 그의 차로 가 그의 차 키를 뽑아들고 내 차로 다시 올라탔다.

그리곤 신고를 하려는데 더욱 발광을 하기에 한 손으로 조용히 멱살을 거머쥐었다.

그리곤 하지도 않은 신고를 했으니 기다리자고 ,목소리도 키우지 않고 태연히 앉아있었더니 그 친구가 씩씩대면서도 화를 죽이는 게 보였다.

다 썩은 화물차나 모는 주제에 ,또 차에서 내리는 걸 보니 체구도 왜소한 게 웃긴다 싶었는지 기고만장했던 친구가 ,

멱살까지 바짝 쥐곤 신고까지 했다하니 잘못 걸렸다 싶었는지 주춤한 것이었다.

점차 목소리가 작아지고,사과를 하는 투가 되기에 조용히 타일렀다.

만약 내가 힘도 없고 자네같은 자식이나 조카뻘 밖에 안 되는 친구가 대드는 상황에 닥치면 어떻게 될지를 상상하면 용서해주고 싶지 않다고...

그러나 나도 자네같은 시절이 있었기에 용서를 해주겠으나 한 마디는 해야겠다며 ...

그렇게 갑자기 끼어드는 상황은 생길 수 있지만,그래서 위기를 느낀 뒷차 등으로부터 항의를 받을 수도 있지만,

그러면 미안하다며 비상깜박이를 켜고 넘어가거나 ,창밖으로 공손히 손을 내밀어 사과를 해야 하고,

좀 더 운이 나빠서 옆에 차를 세워두고 욕설을 퍼붓는다 하더라도 공손하게 사과하며 뒷머리라도 긁적이는 모습을 보이면 될 것을,

오히려 적반하장 식으로 이렇게 못되게 굴면,바빠서 시간 좀 줄이려 갑자기 뛰어들었던 자넨 오히려 시간 손해를 보게 되지 않았는냐며 ,

조목조목 지적하고 ,앞으로 그래주겠느냐며 다짐을 받은 후에야 차 키를 넘겨주고 보냈던 적이 있다.

 

정말 일주일 간격으로 바뀐 나의 태도에 나도 놀랐지만,얼마전까지만 했다면 당장 뛰어내려서 멱살잡이를 하며 소새끼,말새끼 하며 분노했을텐데,

갑자기 변한 나의 태도에 나도 놀랐고,그런 평정심을 유지한 결과에 흡족해하는 나를 보고 뿌듯하기도 했었다.

위의 말을 듣기 전이었지만,이제사 저 명언을 듣곤 새삼스레 떠올리며 그 효과를 확인하는 것인데...

종이나, 옥으로 만든 아악기나 부처 앞에서 절할 때 쓰는 작은 종인 경쇠를 울릴 때 ,마구 치지 않고 조심스레 칠 때 

은은하게 울려퍼지며 잔잔한 감동과 함께 진한 여운을 남기는 것처럼 평온해질 것이다.

그것이 몸에 배면 시시비비에 휘말릴 일이 없고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영원한 진리를 깨달은 경지인 열반에 든 듯 평온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이다.

나의 경우에도 우연히 경험하게 된 그 경험 이후론 확실히 화를 내는 빈도가 줄어들었고,속으로 부대끼는 일도 거의 사라졌다.

물론 여전히 부조리하게만 흘러가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장하는 무리들에의 분노는 사라지지 않고 있지만,

'에이~열여덟!'하고 화딱지를 내는 대신 조목조목 글로 따지며 주변인들로부터 공감을 얻어내려는 것으로 대신하다 보니,

훨씬 그 효과도 뛰어날 뿐더러 나의 입도 깨끗해지며 지난 일을 더 부끄러워하게 됐고,안티들로부터의 시달림도 안 받게 된다.

 

내가 불교철학을 어려서부터 좋아하게 된 것이 이처럼 실생활에서 적용가능한 사례들로 큰 깨달음을 주는 사고의 틀을 제시한다는 이유때문이기도 했는데,

아직은 불교 뿐 아니라 모든 종교의 맹목적적 기복적 성격이나 ,얼마간의 미신적 성격을 극복하지 못하는 그들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일 것이다.

수십억 년을 있어온 변함없는 철리를 어떤 한 존재의 업적으로 내세우며 믿음을 강요하는 듯한 태도는 아직도 받아들이기가 힘들기만 하다.

우스개처럼 '난 내 주먹만 믿는다!'고 하지만,내 주먹이 세서가 아니라 ,삶이란 게 결국은 다 나 하기에 달렸음을 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한 종편의 목사가 ,신의 섭리(?)를 설명하면서 ,기복하지 말고 너 스스로 알아서 하고 ,뿌린대로 거두라는 것이 신의 섭리임을 깨닫는 것이 그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봤다.

그도 워낙 말이 많은 사람이라 탈도 많은 줄 알지만, 옳은 건 옳다고 인정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믿는 나로선 뇌리에 새겼다.

세상에 성질 없는 사람이 어딨느냐며 화를 내는 걸 무슨 큰 자랑이기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대신,

잠시 한숨 돌리고 생각하는 버릇을 들여간다면 우리 모두는 열반에서 살다가 갈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일방만의 노력에 그치고 만다면 그런 경지는 먼나라 얘기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린 상대성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텐데...

부부나 가족들 사이에서도 그런 어느 일방만의 노력만이 경주된다면 그 노력은 이내 퇴색되고 무의미해지고 말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에도 16년인가의 피눈물나는 노력이 파경으로 마무리 된 걸 경험하기도 했기에...

 

글쎄 현 시대에서 모두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공통관심사 하나를 끌어내자면 물신숭배 사조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거기서만 벗어날 수 있다면 의외로 답은 간단해질 수도 있는데,그러지 못함으로해서 우린 모두 하나같이 물질의 노예가 되고,

친일 매국노들의 놀림감이 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1인,미개인의 생각이다.

현 시대에 있어 우리의 평정심을 해치는 가장 큰 적이 바로 배금주의가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배금주의를 조장한 존재들에서 고찰이 필요한 시점을 찾는다면 좋지 않을까  싶은데,

미,일 등의 제국주의자들과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대국에의 사대주의자들에 의한 것임을 ...생각한다면 

근원을 파헤치고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음도 짐작할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 주저앉아만 있어도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멀고 먼 길일 수도 있지만,마음 한 번 고쳐 먹으면 의외로 쉬울 수도 있음을 알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