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에게 이로울 때만 남에게 친절하고 어질게 대하지 말라.
-파스칼--
파스칼(1623~1662) 프랑스.수학자.물리학자.종교철학자.작가.
근대 확률이론을 창시했고,압력에 관한 원리인 '파스칼 원리'를 체계화했으며,
신의 존재는 이성이 아니라 심성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종교적 독단론을 설파했다.
직관론에 바탕을 둔 그의 사상은 장 자크 루소와 앙리 베르그송,여러 실존주의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존경받는 수학자였던 아버지 에티엔은 아내가 죽고 파리로 옮겨온 후 ,자식교육에만 전념했다.
두 살 아래인 누이 자클린이 문단에서 신동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동안,파스칼은 수학분야에서 그에 못지않은 천재성을 발휘했다.
열일골 살이던 1640년 '원뿔곡선론'을 써서,
프랑스의 위대한 합리주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데카르트 같은 사람조차 시샘을 할 정도로 수학계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루앙 시 행정관으로 임명된 아버지의 세금 계산을 도우려 계산기를 착안하여 발명했는데,이는 최초의 디지털 계산기였기에 그의 명성을 드높이는 계기가 됐다.
수은 기압계를 만들어 파리와 클레르몽페랑이 내려다 보이는 산꼭대기에서 기압을 측정하여 대기압에 관한 실험을 검증하고 확대시켰다.
이 결과는 유체동역학.정역학에서 보다 진전된 연구가 이뤄지는 데 길잡이가 되기도 했다.
또한 실험 과정에서 주사기를 발명했으며,
밀폐된 유체에 주어진 압력은 그 압력이 주어진 범위에 관계없이 모든 방향에 같게 전달된다는 파스칼의 원리를 바탕으로 유압프레스를 고안했고,
1647~1648년 진공문제에 관한 논문을 잇달아 발표하여 더욱 명성을 얻었다.
과로로 병이 난 후에도 의사들의 권유를 뿌리치고,더욱 연구에 몰두하여,액체평형에 관해서,공기의 무게와 밀도에 관해서 ,
또 확률 계산의 토대를 마련한 산술 삼각형에 관해서 논문을 쓰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후 종교적 가책을 느끼게 되고 포르루아얄 수도원에 들어간 그는 비록 은둔자가 되진 못했지만,그들의 요구에 응하는 글을 끄면서 여생을 보냈고,
저서를 발표할 때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시골친구에게 쓴 편지'와 '명상록'은 그 시기에 씌여진 것이다.
물리학자이자 수학자로서뿐만 아니라 유창한 시사평론가로,영감을 받은 예술가로 다양한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그는 그런 풍부한 재능 탓에 혼란된 삶을 살았다.
그가 미분법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그의 지나치게 경직된 정신적 기질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브리태니커)
버림받은 전쟁고아들을 데려다 돌봤던 스위스의 교육가이자 자선사업가였던 페스탈로찌는
번화한 거리를 걸으면서 연신 무언가를 주워 호주머니에 넣고 있었는데,이를 이상하게 여긴 경찰이 의아해 하며 뭘 하시는지 물었다 한다.
금은보화라도 주웠으면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지 않느냔 생각에서였을텐데,놀랍게도 그의 호주머니에선 깨진 유리조각들이 쏟아졌다.
행여나 아이들이 밟거나 넘어지면 다칠 걸 생각해서 길을 걸으면서도 그런 위험한 것들을 치운 것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누가 시켜서 그런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그 일을 함으로써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지도 않는다는 걸 알겠는 일이 나에게도 있다.
나는 20여 년 간 반경 50미터 안에서 조금씩 옮겨다니며 장사를 해 왔고,내내 육교나 인도,차도 등을 청소하며 살아왔다.
저 사람,무슨 상이라도 받으려고 저러나?하는 식으로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더러는 좋은 일 하신다면서 고맙다 인사를 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을 꾸준히 하게 된 것은 ,나 하나가 조금 부지런을 떪으로해서 내가 사는 곳 주변이 늘 깨끗한 것이 좋았고,
내가 이런 일을 함으로해서 누군가 이런 일을 하고 싶었지만,남들의 시선이 의식돼 못하고 있던 분들이 용기를 내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을 청소하고 ,담배꽁초 등을 주울 것이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근처의 산을 다니면서도 비닐 봉지를 하나씩 들고 다니면서 등산로 주변의 쓰레기 등을 주웠는데,
처음엔 무슨 산삼이라도 캤다고 생각하시는지 보자고 하시던 분들이 많았지만,쓰레기가 담겨진 걸 보곤 미안해 하셨다.고마워 하셨다.
솔직히 자신들도 많이 버리고 다녔는데,이제부턴 그래선 안 되겠단 생각을 하게 됐다며 고해를 하시는 분도 계셨다.
그렇게 수 개월을 같은 코스로 다니면서 청소를 했는데,청소를 하러 산을 가는 건지,산행을 하다 청소를 하는 건지 모를 정도가 됐을 즈음,
한 노인분께서 비닐 봉지를 들고 반대편에서 오시면서 청소를 하시다가 나를 보고 반갑게 눈인사를 해 주셨다.
2~3 주 후엔 젊은 친구도 한 분 청소를 해주시는 걸 보곤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러다 주치의가 지나친 운동을 자제하라 해서 안 다니고 있는데,가끔 그 산엘 다니시는 분들에게 물어 보면 여전히 깨끗하다고 한다.
요즘도 쓰레기를 줍는 분이 계시단 말도 듣게 되는데,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작년엔 의료사고를 내 놓고 ,협박을 하고 회유를 하다 안 되겠으니 배째라고 버티는 단국대 치대 천안병원에 맞서 병원입구에서 항의 시위를 했고,
거기 저항해 영업방해 혐의로 소송을 걸어 와 싸우면서 보기 좋게 져줬고,멀리로 쫓겨났는데,
임플란트 시술을 하고 1년도 안 돼서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결국은 다 뽑아내고 재시술도 못하게 만들어 놨으면서 아무 책임도 없단다.
채무부존재 소송을 걸어 와서 1심에서 패했으며,항소를 해놓고 있는 중인데,그렇게 단국대 치대와의 싸움이 ,학교법인 단국대와의 큰 싸움이 됐다.
사고가 날 경우를 대비해서 보험에 들었다가 사고가 나서 보상을 받으려면 큰 보험사들에선 무조건 소송을 걸어 전과자를 만든다더니 ,
병원들도 의료사고가 나서 재판을 받게 되면 10퍼센트도 안 되는 아주 희귀한 정도의 패소율을 믿고 무조건 소송을 건다더니 단대에 딱 걸렸다.
진작에 약간 준다고 했을 때 받고 떨어지지 않아서 괘씸한 나머지 엄청난 변호사들을 사서 투쟁하고 있는 줄 알지만,
그래서 그것들이 이길 수 있는 나라라면 살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끝까지 싸워 보려는 것도 사회분위기를 개선시키는 기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홀홀단신의 몸으로 거대한 학교법인 단국대와 싸우며 그 학교 앞의 천호지 주변을 청소하면서 또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됐다.
10여 년 째 절망에 빠질 뻔 한 사람들과 다양한 과정을 통해 서로 한 번도 마주쳐 본 사람들은 없지만,,
그리고 방법도 잘 몰라서 주로 믿고 맡기면 잘 알아서 도움을 주는 기관 등에 전달하면 작은 정성을 모아서 큰 기쁨으로 만들어주시니 고맙다.
또한 경험이나 지식,생활여건 등으로 직접 참여는 하지 못하지만 얼마간의 작은 회비쯤을 기부하면 큰 일들을 이뤄준다.
특히 민족문제연구소와 같이 현 기득권층들의 불의에 맞서 싸우느라 고생을 하고,기득권층들에게 핍박까지 받고 있지만,
고작 만여 명의 회원들이 매월 아주 조금씩 모은 게 전부인데,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고,유 관순 표준영정을 친일화가가 아닌 사람이 그린 것으로 바꿔내는 등,
정말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조금이라도 세상을 정의롭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걸 기쁨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 단 한 사람의 손길이 아쉬운 곳이 아주 많다.
최소한 외면만 하지 않아줘도 고마워 하는 곳이 많은데,거기 손길을 내밀어 주고 작은 정성이라도 보인다면 정말 큰 힘이 된다.
나하고 아무 상관이 없을 것만 같은 일들이 쉬지 않고 벌어지고 있으니 내가 굳이 나설 이유가 뭐냐고 생각하며 못볼 짐승들을 본 듯 외면하진 말자.
그리고 내가 다치지 않았고,손해를 보지 않았으니 범죄 세력들에 무관심해지면 그것들은 당신을 다음 표적으로 삼을지도 모른다.
내가,내 가족이 꼭 다치거나 죽어야 울분을 터뜨릴텐가?
그 누구도 억울하게 죽거나 손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싸우고 투쟁하며 외쳐가야 한다.
한두 명 쯤이야~ 하고 있을 때 그 한두 명에 당신을 집어넣겠다고 하면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지 않을까?
나는 안 되고 남들은 죽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며 어버이연합이 발광을 해대고 있잖은가?
국정원이 북한 정보를 친일매국노들의 입맛에 맞게 각색을 해대고,그런 친일매국노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잡아다 가두고 간첩으로 만들어대고 있다.
'시대정신'이란 뉴라이트 새끼단체는 역사를 왜곡하고,독재자들의 세상으로 만들어내려고 별의별 짓을 다하고들 자빠졌다.
이렇게 거친 말을 하면 김무성이같은 친일매국노가, 지는 지 애비의 자식이 아니니 당장 글을 내리라고 내 블로그까지 치고 들어왔던 것처럼 밀고 들어오려나?
이런 불의와 맞서 싸우지 않으면 우리가 바로 그 불의의 손에 영문도 모르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단 말이다.
지금보다 조금씩만 크게,조금만 더 앞을 내다보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