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시작하지 말고 지금 당장 시작하라.오늘 짐을 싸야 내일 아침 해가 뜨자마자 떠날 수 있다.
--이 지성 '꿈꾸는 다락방'--
이 지성: 서울에서 출생,전주교대와 전북대학교를 졸업했고,교대 2학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교육관련 서적,자기계발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책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놓았다.
자신의 팬카페 '폴레폴레' 자원봉사자들과 전국 각지의 저소득층 공부방에서 인문교육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한국 국제기아대책기구'와 함께 해외 빈민촌에 학교와 병원 등을 세우는 일을 하고 있다.
유명한 프로당구선수와 결혼을 한 그는 아내와 자신의 성을 따서 '차이 에듀케이션'을 통해 자기계발 및 인문학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책 소개에서...)
난 처음 사회에 나와서 ,그러니까 35년 전쯤,쑥맥에 말주변도 없었던 내가 세일즈 업계에 뛰어들었다가 얻은 별명이 불도우저이다.
파워풀하게 밀어붙이는 굴삭기의 대명사처럼 불리던 바로 그 불도우저였다.
현장교육을 더 받으라는 걸 뿌리치고 ,까짓 못할 게 뭐냐며 필드에 뛰어들었고,그 첫 날 오더를 두 건이나 해냈던 것이고,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라 질퍽이던 논둑길에서 펄쩍펄쩍 뛰다가 미끄러져 무릎까지 진흙탕이 됐는데도 사무실에 영웅처럼 들어섰더니,
당시 차장이던 사람이 대뜸 저 불도우저 같은 놈 좀 보라며 붙여준 별명이었던 것이다.
우쭐해선 꼴값도 많이 떨었지만,첫 사회생활에서 그런 별명이라도 얻었다는 건 이후의 내 삶을 비춰봤을 때 큰 도움이 됐다.
35년 째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난 늘 궁지에 몰린 사람처럼 갈급하게 살아 왔고,여유라곤 누려 보지 못했다.
어렵게 시작한 결혼생활에서도 책임감과 이상,그리고 현실의 사이에서 늘 쫓기듯 살아야만 했다.
그리고 뭐든 일단 시작부터 하고 보는 나와 전처의 취향은 달랐던 듯,일단 시작부터 하고 보는 게 우물쭈물 대는 것보다 나은 결과를 갖다 줘도 늘 갈등이었다.
우물쭈물했으면 ,즉 조금 더 조심스럽게 했더라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겠느냔 건데,극복할 수 없었고,결국 파경을 맞게 됐다.
그런데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어려서부터 갈망해오던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일이 실패로 끝나고 나자 평생 느껴 보지 못했던 여유롭고 행복하다는 느낌이 다가와준다.
그리고 2013년 초여름이었던 유 월쯤...나는 다시 밀어붙이고 보는 일을 벌였고,누구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고 할 수 있었다.
스스로 현수막 문구를 정해서 광고사에 의뢰를 했고,나오는 날 밤에 업무를 마치고 사다리를 실은 차를 몰고 다니며 사거리에 현수를 했다.
바람도 억세게 많이 불었던 것 같은데,그리고 혼자서 하는 것이었는데,그것도 밤에,정말 아무 사고 없이 잘 마무리를 했다.
당시 100여 만 원어치를 만들었던 것이니 적지 않았었는데,그래서 지금도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하곤 한다.
다음 날 아침부터 어깨띠를 두르고 ,머리띠까지 두른 채 직산사거리에서 친일매국노를 척결하자고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직산 사거리를 독립성지로 만들것이고,그래서 내 마음엔 이미 독립성지인 이 곳을 관리하겠노라며 청소도 했고,서명도 받았고,일도 했다.
햇수로 벌써 4년째,내 인생예고편엔 없었던 생뚱맞은 일이었지만 시작을 했고,파경의 아픔을 이기는 데도 큰 도움을 받았다.
중간에 걸리적거리던 관피아,짭새,검새들 덕분에 수갑도 차 봤고,재판정에 가서 벌금도 깎아 봤다.
그리고 친일매국노들과 그 주구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방해공작이 있었지만,난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해내고 있다.
혼자서 해내던 중 만난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은 나의 일과 1인시위를 하면서도 얼마든지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가르쳐줬고,
정말 생뚱맞게 가 봤던 민족문제연구소 정기총회에서 그 대단함과 정열,순수함을 발견하곤 뛰어들게 됐다.
천안,아산 두 지역이 합쳐서 활동을 하다가 , 내가 들어와서 분리가 됐고,독립사업을 벌이게도 됐다.
그리고 그 사업의 일환으로 내 가게 앞에서 일도 하면서 서명을 받기도 했으니 행복하다,뿌듯하다.
친일인명사전을 만들 수 있도록 자료 등을 수집하고 연구하시는 데 마지막 정열을 천안에서 불태우시다가 결국 친일인명사전을 못 보시고 돌아가셨으며,
영남지방 출신이셨음에도 천안의 공원묘지에 묻히셔서 당신의 업적이 이뤄지길 빌어주셨을까?
거의 20여 년 만에 전 국민의 성금으로 친일인명사전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됐고,
그러기까지 모든 걸 감당했던 곳이 바로 민족문제연구소이니 임 종국 선생은 친일인명사전과 민족문제연구소의 모태인 셈이다.
이런 훌륭한 분이 천안에 계셨다니...독립기념관이 있으며 병천의 아우내 장터에서 3.1만세운동을 했던 것에 더해 ,
평소 충절의 고장으로 알려졌던 고장 천안을 빛내는 데 그런 훌륭한 분의 조형물을 사람들이 만힝 볼 수 있는 곳에 설치하는 것 이상이 어디 있겠는가 싶어서,
충남교육청과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가 합동으로 건립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게 된 것이다.
그 잘난 사법부에서 조차 인물의 친일 여부를 판단하는 데 친일인명사전을 참고할 정도이니 ...
한국의 근대사 연구에 있어 이보다 더 큰 업적이 어디 있을 것이며,가뜩이나 박근헤 등이 뉴라이트,시대정신 등의 친일단체들과 함께 역사를 왜곡하고,
또한 우리의 후손들이 공부할 역사교과서를 국정화시켜서 친일매국노,독재자인 귀태를 신성시하려 하고 있는 이 마당에,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임 종국선생의 업적인 친일인명사전인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이 역사적 사업에 동참해서 빛내주면 좋겠다.
지금 하지 않으면 당장 내년부터 친일매국노이자 빨갱이였고,독재자였던 귀태를 우리의 아이들이 반신반인으로 알게 될 것이다.
모든 초중등 학교에 친일인명사전을 비치해서 우리의 아이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우리의 근현대사가 얼마나 친일매국노들 멋대로 조작됐는지를 알게 해야 하고,바른 역사를 알고 싶어하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들이 발악을 해서라도 잘못된 역사를 널리 알리고,그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면 ,
혹시...우리가 죽고난 다음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열심히 바로잡고 ,올바른 역사를 보존하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합쳐서 준비하자.
곧 닥칠 정의로운 세상을 맞으려면 ,미리 준비하고 떠날 채비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뭘...우리가 한다고 뭐가...하면서 피하는 사람들도 많은 줄 안다.
꼴값을 한다고 비웃고 싶은 사람들도 많을 줄 안다.
하지만 우리가 굴복하면 세상은 점점 더 짐승들의 그것처럼 황폐화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만히 있는 그 동안에도 친일매국노들은 새끼를 부지런히 쳐가면서 세력을 날로 키워가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오늘 하지 않으면 내일은 열 배 백 배 더 힘들어질지도 모르니 오늘 당장 나서서 뭐라고 하면서 살아가자!
그리고 대단한 일은 늘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우리같은 사람들이 이뤄왔다는 걸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