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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며 사는 삶은...


BY 미개인 2016-10-03

비가 오거나 햇볕이 쨍쨍한 날씨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날씨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택할 수는 있다.그러니 좌절로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콘스탄틴 마이클 먼티스--

 

기억이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주욱 우중충하기만 했던 나의 인생의 날씨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50년 가까이 우중충한 날씨는 이어졌지만,잠깐씩 비추는 햇볕이 있어 겨우겨우 연명을 해 왔는데,

초반부의 우중충함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이후의 것들은 모두 내 책임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늘 불안하게만 살아 왔던 내가 근성을 갖고 끈기를 발휘하거나 집중을 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다.

희망도,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면서라도 ,얼마간 애정이나 포근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여튼 난 그런 기억이 거의 없었고,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불안불안한 나날도 부모님의 파경으로 끝을 맺은 후 더욱 비참한 상황으로 내몰렸고,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거라곤 없이 지금에 다다랐다.

 

미친 듯 책나부랭이를 파 보기도 했지만, 공부도 한다고 해 봤지만,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10여 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개업 준비를 하면서 ,결혼을 하는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다 과로로 쓰러져 5년 정도를 고생하고,파경을 맞고...

참 복도 복도 지지리도 없었던 나였지만,늘 입버릇처럼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며 대비하는 자세로 살자고 말해 왔던 게 힘이 됐을까?

반 세기를 살고 혼자가 되면서 생전 처음 행복하단 느낌을 갖게 됐고,그러면서 얼마간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한 것 같다.

조바심을 칠 일도 없고,아둥바둥 살 필요도 없이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밤에 몸을 누일 자리만 있으면 불만이 없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했던가?

지난 50년이 꼭 불행하기만 했던 건 아닌 것처럼,앞으로 살고자 하는 50여 년도 즐겁기만 하진 않을 거란 걸 알지만,

이젠 어지간한 위기 따위엔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몸에 밴 최악을 생각하고 거기 대비하는 생활습관을 익혀 온 건 나를 강하게 만들었고,

욕심이나 미련이나 집착이 행,불행을 결정짓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지금에 와서 ,무엇이 두려우랴?

 

나는 곧잘 말하곤 한다.

이제부턴 하고 싶은 방랑 등을 하며 ,기왕 시작한 나만의 독립운동이나(?)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노상객사를 하는 게 꿈이라고...

노상객사란 말에 충격을 받은 듯 끔찍하단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남들이야 뭐라든 난 죽는 그 순간까지 즐거운 무언가를 하다가 켁~하고 죽을 것이다.

그것이 개인적인 것이든,사회적인 것이든 죽는 순간까지 내가 주체가 되어 살다가 객체가 되려는 순간 죽을 것이다.

병마에 사로잡혀서 병석에 누워 불쌍한 표정을 짓다가 죽는 것도 ,아프지도 않으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 엄살을 부리다가 죽는 따위의 추한 삶은 싫다.

나의 할머니께선 자손들 나눠줄 행복한 상상을 하시며 돌담 안의 텃밭의 김을 매시다가 주무시는 듯 돌아가시면서 나를 일깨워주셨다.

상욱아!난 내가 죽을 때를 알아차리고 죽는 그 순간까지 너희들을 챙겨주는 상상을 하며 조용히 죽었단다.

너도 그렇게 살거라!

 

아무도 할머니의 운명을 지키지 못했고,같이 계시던 할아버지께서도 왜 마당에 엎드려서 자느냐고 들어가서 누우라고 하셨을 정도로 조용히 가셨다.

그리고 나서 할아버지께선 1년 가까이 맥을 놓으시고,정신까지 놓으신 채 큰어머니 혼을 빼놓으시고서야 돌아가셔서 합장을 하셨다.

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땐 일가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울고 또 울었고,흙을 밟으면서는 거의 혼절을 할 정도로 울었다. 

할머니와 ,사고가 나서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도 아니라고,그럴 리가 없다고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던 어머니의 죽음이  오버랩되면서...

21년 전에 울지 못했던 것까지 합쳐서 울고 또 울었다.

지금은 두 분 모두 내가 독점하다시피 찾아 뵙고 있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으면서도 ,이렇게라도 찾아 뵈올 때가 아니면 이젠 절절하게 그립지도 않으니...

그래서 난 아예 매장도,화장도 하지 않기 위해 15년 전 장기기증 운동본부에 장기기증 약속을 했고,가족들에게도 알렸다.

각막,뇌사시 장기,시신,조직까지 다 기증 서약을 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사라질 수 있다.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고?

그 이름을 남기기 위해 삶 자체를 즐기는 데 지장이 있진 않을까?

좋은 쪽미든 나쁜 쪽미든 난 이름도 남길 욕심이 없다.

그저 분수껏 열심히 살고,행복하게 살고,뜨겁게 사랑도 하면서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살 것이다.

 

나는 이혼 후 거의 5~6년 간 매식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먹는 것 갖고 장난하는 몹쓸 것들이 차고도 넘치는 상황에서 돈까지 주고 유전자가 조작됐거나 더러운 것을 사 먹고 싶은 생각이 싹 없어졌다.

누가 뭐라 해도 난 내가 직접 사다가 만든 음식만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고,간식도 거의 하지 않으며,술과 담배도 안 한다.

커피를 좀 마시긴 하지만,블랙커피만 마신다.

그리고 거의 매일 밤 운동을 한다.

유산소 운동과 스트레칭,그리고 약간의 지구력 강화 운동을 하고 ,사계절 내내 냉수마찰을 하고 있다.

일상생활 자체가 몸을 움직여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돼 있어서 무리는 하지 않으면서도 쉬지 않고 일도 한다.

그리고 누구보다 뜨거운 사랑도 하면서 살고 있다.

친구들을,나라를,자연을,후손들을,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면서 당장 최악의 경우가 닥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준비를 하며 살고 있다.

 

난 파경을 즈음해서 자살을 두 번이나 시도했다가 실패를 했다.

따라서 지금의 나는 덤 인생을 사는 것인데,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덤 인생을 살게 되면서부터 비로소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궁즉통(窮卽通)이란 옛말이 어김없이 진리임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것인데,덤으로 주어진 이 행복한 삶을 아무렇게나 살아선 안 되겠단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에선 평생을 궁하단 생각을 못해본 것들이 마치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까불어대면서 한국인들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있다.

아주 많은 비중의 사람들이 헬조선을 운운하며 괴롭게 살고 있는데,그 책임의 상당부분을 책임져야 할 그것들은 스스로 공치사에만 여념이 없다.

박근헤란 귀태의 딸년이 대통령놀이를 하고 있다는 것도 견디기 힘든데,이젠 뒈져버린 무자격 사이비 목사가 그 딸년으로 현신(?)을 해서 나라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미르재단,K스포츠'란 해괴망측한 괴물의 모습으로 정경유착과 부패의 적나라한 실상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 실세 순실이의 지시를 받은 것으로 사료되는 공안검새 우병우가  행동대장이 되어 검찰은 물론이고 한국을 쥐락펴락하고 자빠졌다. 

정작 비리와 의혹의 중심에 선 그 개間을 목숨걸고 지키겠다는 듯 발광하는 박근헤와 새누리당 오합지졸들의 꼬라지가 가관이다.

특히 이 참에 확실히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싶어하는 자칭 내시가 치졸한 꼴값을 하면서 국회를 중단시키고,멘탈을 붕괴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동정표를 구걸하듯 엄살을 부려대고,호들갑을 떨어대며 세금을 축내고 있는데도,그것들에 동조하는 무리들이라니...

 

더욱 나쁜 것은 중도를 표방하며 그것들을 방관하는 방조범들이 절대다수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를 탐하는 안철수 류가 정치권 주변을 배회하며 어부지리를 취하려 비겁한 작태를 펼쳐대고 있으니...

온통 사기꾼들이고 도둑놈들만 포진해 있다.대한민국의 정치권엔...

그것들은 아주 교활하게 민심을 교란시키고 있고,치밀하게 민심을 분열시키며 민중들 위에 군림하기를 계속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번번히 저것들의 사술에 놀아나고 있는 위대한 한민족의 후예들이라니...

하긴 나도 얼마전까지만 해도 저것들의 손을 들어 줬고,심지어는 안빠 소리를 들어가면서 후원까지 해가며 박수부대를 자원했었으니....

아직 때가 오지 않아서이리라.

저것들에게 짓밟히고 착취를 당해서 너덜너덜해져야 정신을 차리고 혁명정신을 갖게 되리라.

아직 궁하지 않아서 통하는 길이 열리지 않는 것이리라.

곳곳에서 총체적 위기라고 말을 함에도 정치권은 물론이고,당사자들인 빚의 노예들께서도 눈만 껌벅껌벅이며 '뭐라니?'하고 있다.

정말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단 생각을 하게 되고,정말 죽음에 직면해야 비로소 통하게 되리라.

그렇다고 가만히 구경만 한다면 역시 저것들과 공범에 다름 아니니,열심히 알리고 동참하며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정신을 실천해가야 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가 닥치더라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냄으로써 새 시대가 왔을 때 당당하게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그런 대열에 동참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태어나길 잘했다는 뿌듯한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이 다소 험난할테니,각오는 단단히 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