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많이 주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담느냐가 중요하다.
--마더 테레사--
테레사(1910~1997) 오스만투르크 제국.수녀.
1950년에 인도 캘커타에서 사랑의 선교회라는 기독교 계통 비정부기구를 설립하였다.
이후 45년 간 사랑의 선교회를 통해 빈민과 병자,고아,그리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인도와 다른 나라들에서 헌신했다.
1970년대를 통해 세계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대변하는 인도주의자로 널리 알려졌으며,1979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1980년 인도의 가장 높은 시민훈장인 바라트 라트나를 수여했고,그녀의 사랑의 선교회는 계속 확장되어,
그녀가 사망할 무렵에는 나병과 결핵,에이즈 환자를 위한 요양원과 거처,무료 급식소,상담소,고아원,학교 등을 포함해 123개 국가에 610개의 단체가 됐다.
그녀는 사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어 '캘커타의 복녀 테레사'라는 호칭을 받았다.(위키백과)
내가 '좋은 흔적남기기 운동본부' 카테고리에서 자주 언급한 갑선 아저씨가 엊그제 나의 가슴을 훈훈하게 해 주셨다.
다니시던 성당의 교우의 도움으로 빈집을 빌려 사시던 아저씨가 얼마 전 영구 임대 아파트 배정을 받아 이사하시기 전까진 틈나는대로 파지를 주워 모아 오셨는데,
1년 여 전에 아파트로 이사하시고 나선 자주 뵐 수가 없었는데 ,며칠 전 이웃으로부터 그 분의 소식을 들은 것이다.
곰팡이 피고 춥기만 한 그 집에서 사시면서 불편한 손 때문에 청소도,식사도,빨래도 못 하시면서 참 불편하게 사셨더랬는데,
작으나마 임대 아파트에 입주하시고부턴 정말 좋아하셨는데,그런 은혜에 고마움을 느끼셨을까?
성당에 당신보다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써달라고 천팔백만 원을 쾌척하셨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전 재산일 수도 있는데...당신의 자제들도 과일 행상 정도를 하며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사는 걸로 아는데...
내 주제에 천사를 몰라보고 돕는다고 꼴값을 떨어댔다니...
하지만 뭐 내가 뭘 바라고 했던 것은 아니니,난 무죄다!^*^
사랑은 전염성이 아주 강하고 나눔은 중독성이 아주 강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계기였다.
몸도 불편하시고,가진 것이라곤 없으시면서도 임대 아파트에서 조금 편하게 사시게 된 것을 감사하고,받은 만큼 돌려주시고 싶었을까?
큰 장애가 있고 ,연세가 많으신데도 홀로 사시면서도 쾌척을 하신 아저씨가 존경스러웠다.
이웃에 사실 때도 많은 감동을 받곤 했지만,떠나서도 이런 감동을 주시는 그 분은 나의 은사님일지도...
마침 얼마간의 여유가 있어서 평소 해오던 근처 학교에서의 소액 장학사업(?)을 올해도 한다.
특히 수입이 없다시피한 겨울이라 그만두고 싶다는 유혹을 스스로로부터 받곤 했지만 뿌리치고 지속할 수 있었는데,올해도 해낸 것이다.
두 딸이 다니기도 했던 초등학교에서 하는 일이라 장학사업이라기보단 보은사업이라고 해야 할텐데,
담당 선생님을 만나 내 뜻을 전하고,내가 격려하고 싶은 학생들의 기준을 말하고 나오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이후로도 꾀가 날 때마다 갑선이 아저씨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아야겠다고 다짐을 해 본다.
나는 중학교 때,한 학기 납부금에 해당하는 장학금(?)을 받은 일이 있다.
늘 다음 분기 고지서가 나와도 이전 분기 납부금을 내지 못해 교무실로 불려다니곤 했었는데,공부도 썩 잘하지 못했던 내가 장학금이라니...
하지만 당장 걱정을 덜었다는 생각만 하고 말았는데,이후 아마도 담임선생님께서 주신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마음으로만 간직하고 말았다.
이후로도 늘 뒤늦게서야 납부를 해왔는데,당시엔 그리도 부끄럽기만 하던 일이었건만,지금에 와선 나의 나눔행위의 불쏘시개가 돼 준 것이다.
나의 장학금을 받는 아이들도 세상의 등불이 돼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전화 한 통화를 하면 천 원씩이 기부되는 행사에 참석을 하기 시작했고,그 작은 정성이 모여서 큰 일을 하는 걸 보곤 감개가 무량했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폭을 넓히고 규모를 키우며 중독되다 갑선이 아저씨를 만나 당신의 파지수집을 도와드렸고,집까지 찾아다니며 이것저것 거들어드리게 됐는데,
그게 큰 도움은 아닐지 몰라도 ,부끄러워서 남들에게 공개하시기 꺼리셨던 집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나들며 정리해 드리고 청소해 드렸으며,
내가 못하는 일들은 지역단체 등의 도움을 받아 도와드렸는데,이사를 가시고 나선 한동안 허전했다.
그런데 최근 이런 따스한 소식으로 나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저 주시다니!
얼마나 행복하셨을까?
늘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으시면서 미안해 하셨는데,당신의 전 재산일 수도 있는 돈을 나누시면서 뿌듯하셨을 거란 걸 나는 알겠다.
그 이야길 나에게 전해주신 분이나 주변인들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는 소리도 들었으니...
정말 이름처럼 갑으로 착한 아저씨 만세다!
요즘 서울로,지역으로 촛불행사를 하러 다니면서 느끼는 감동 역시 나를 훈훈하게 만들어 준다.
주말임에도 쉬거나 놀러 가는 대신 가족들끼리,친구들끼리 ,이웃들끼리,단체 회원들끼리 모여서 참석을 하며 훈훈함을 나누는 그들 또한 나눔천사들이다.
그 어떤 것보다 가치있는 따스한 마음을 나누고,단지 머릿수나 채워주려 나왔다며 겸손해 하는 그들을 보면 뭉클해지곤 한다.
요즘은 추운데,자신의 입장보단 다른 사람들이 추울까 봐 담요를 나눠주고,핫팩을 나눠주곤 홀연히 사라져 버리고,
자신들도 곤궁하면서도 기꺼이 따스한 국물을 나눠주시는 포장마차 사장님들,
정성스레 닭강정,두유 등을 싸들고 와선 나눠주시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어 사는 맛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토요일만 되면 전철에 몸을 싣고 두어 시간 거리의 서울로 향하게 된다.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정말 머릿 수 채우는 게 고작이지만,열심히 배회를 하면서 사람들 기념 사진도 찍어 주고,
어린 아이들을 만나면 가방을 뒤져서 준비해 온 과자도 나눠주고,나눔 행사를 하는 사람들의 사랑이 지속되기를 바라며 얼마간 기부도 한다.
가끔 동료들과 함께 가면 간단한 식사도 대접하면서 가슴을 데우기도 한다.
다시 두어 시간을 콩나물 시루같은 전철을 타고 내려오면 뭔가 큰 일을 한 것 같아 뿌듯~
저마다 사랑을 담아 형편껏 자신을 나누며 주변사람들에게 전염을 시키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가고 있는데,
나같은 사람이 거기 동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힐링이 되고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나눔은 너무 부담스러워도 안 되고,마지못해 하는 것도 상대를 수치스럽게 만들 수 있다.
형편껏 정성이거나 마음이거나 따스한 미소라도 나누는 것일 때 자신도 행복하고 상대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런 나눔은 전염성이 아주 강하고,중독성도 아주 강한데,얼마나 행복한 전염병이고 중독인지를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나중에 넉넉해지면 해야지~하는 사람들이 많을 줄 알지만 ,그러다간 평생 이 행복병에 걸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믈론 '의식이 족(足)해야 예절을 안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물질 나눔만이 나눔이 아니기에 우린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가진 게 많아질수록 더 많이 갖고 싶어지며 불행해질지도 모른다.
욕심은 채우면 채울수록 더 커지기만 하면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음을 각성하고 지금 당장 나누며 살자.
거기에 자신의 따스한 정성까지 듬뿍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