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분노로 가득찬 도시 같았다. 누군가 방아쇠만 당기면 기꺼이 폭발할 준비가 된 듯했다. 박민식 한나라당 의원은 이를 “임계점에 다달았다”고 표현했다.
“얼마 전 서울에 다녀왔는데 이제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가 아니다. 옛날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9일 사하구 하단동에서 만난 40대 강아무개씨는 자존심이 상한다고 했다. 32살 취업 준비생은 “취직할 데가 없어서 서울로 올라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하구 괴정동에서 만난 한 자영업자(36)도 “개발은 수도권만 되고, 좋은 것들은 다 위쪽(수도권)으로만 가지 않느냐”고 했다.
한국은행 부산본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부산 청년층(15살~29살) 가운데 1만2천여명이 일자리 등을 찾아 다른 시도로 떠났고 이 가운데 67.1%가 수도권으로 향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는 상처받은 부산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허물어뜨렸다.
부산을 할퀸 저축은행 불법 인출 사태에 대한 울분은 곳곳에서 넘쳐났다. 동구에서 떡볶이집을 열고 있는 한 50대 아주머니는 “하루하루 떡볶이, 어묵 팔아서 조금씩 (돈을) 넣었는데 속이 타버렸다”고 말했다.
쌓인 분노는 먼저 이명박 대통령을 향했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찍었다는 금정구 남산동 이아무개(51)씨는 “이제 정치라면 누가 죽었다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이 없다”고 했다.
내년 총선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민주당 후보를 찍겠다고 내놓고 말하는 이는 거의 없었지만, “바꿔야 한다”고들 입을 모았다. 50대 중소기업 사장 강아무개씨는 저축은행 사건을 거론하며 “그런 놈들한테 돈을 맡겨놨으니 고양이한테 생선 맡겨놓은 격”이라며 “다들 마음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어서 다음 선거 때는 다 표로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저축은행 피해를 본 떡볶이집 아주머니는 “이제 우리는 죽어도 한나라당은 안 찍어 준다. 주변 사람들도 다 그렇다”고 했다. 자영업자라고 밝힌 40대 남성은 “민주당에서 좋은 후보가 나오면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횟집 요리사 김아무개씨는 “그래도 여긴 ‘한나라민국’이다. 또 찍게 돼 있다”고 했다. 민심이 변화를 갈망하고 있는 건 분명했지만 방향은 갈피가 잡히지 않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