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무렵...
외출을 하고 돌아오니 가게 문 손잡이에 뭔가 검은 봉투가 걸려있다.
가지와 들깻잎이 가득 든...
에효~또 어떤 아저씨가 나를 주려고 들고 오셨다가 내가 없으니 두고 가셨겠구나...생각하고 거둬서 소중히 간직한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후 갑으로 착한 아저씨가 확인을 하러 들르셨다.
지나다가 안 보이기에 누가 가져간 것 아닌가 싶어 확인하러 들렀다며 그냥 가시려고 하기에 차 한 잔 드시고 가시라고 안으로 모셨다,
한사코 들어와서 폐를 끼치길 거부하시다 들어오셔서 차를 한 잔 타드리니 ,바람에 쓰러진 깨나무에서 깨끗한 것만 갖고 오신 거라며 술술 잘도 말씀을 하신다.
그러다 내가 추석 때 어디 가시는 데가 있는지 여쭙자 실향민이고 딸 둘은 출가해서 저들 살기 바빠서 딱히 갈 곳은 없다시며 술술술~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 친구가 돼 버렸다.
두어 시간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하다가 급기야는 나의 살람살이를 적나라하게 보여드리며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의 가정사까지 다 털어놓게 됐는데,깜짝 놀라는 일이 생겼다.
아저씨의 연세가 자그마치 여든여섯 살이라는 것이었다.허거덩~
그런데다 팔 하나는 회사에서 일을 하시다 잘리셨고,편하고 맛있어서 라면을 자주 잡숫는다는 소리를 듣곤 ,
나의 살림살이까지 일일이 공개해드리며 건강하게 둘이서 오래도록 친구처럼 살아보자고 악수까지 하며 맹세(?)를 하기도 했다.
나중엔 서로의 인생관이나 살아온 자취를 더듬어 나누며 ,서로 고생을 많이 한 사람들이란 공통점을 발견하곤 ,
인생관,종교관,가치관까지를 들먹이며 정말 오랜만에 화통한 대화를 원없이 나눌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도와준다는 사람들은 많으나 아직은 스스로 뭐든 해서 쪼들리지 않고 살 수 있으니 사양하고 있노라며 의지를 보이시는 것까지
내가 앞으로 33년이 흘러서 저 나이가 되면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시는 분이란 걸 알게 되고,
흉허물없이 오가며 잔소리를 해서라도 건강을 챙기시게 만들어 드려야겠단 생각을 하게 됐고,
당신께서도 나처럼 건강을 챙기며 살고 싶으시다고 한 수 가르쳐달라시기까지 하신다.
오늘에야 알게 된 것이 몸만 약하고 팔만 없는 게 아니고 눈까지 안 좋으셔서 잘 못 보신단다.에효~
더군다나 근처에 사는 딸도 있지만 거의 오지도 않고 온다고 해도 보살펴주지도 않는단다.
언제 시간 날 때 함께 장을 보러 다니며 내가 사는 방식을 배우고 싶어하시기에 그러마고 약속을 드리고 언제든 오시라고 말씀을 드리며 헤어지는데,
강의를 잘 들었다며 감사를 표해오신다.에효~민망해라.
화들짝 놀라서 도리질을 쳐댔지만,당신께선 아직 한 번도 나처럼 스스로 건강을 챙기거나 ,생각을 하며 살아보지 못했노라며 거듭 감사를 해오시는데,
대화 내내 느낀 바가 결코 어영부영 살아오신 분이 아니란 게 느껴지던데,겸손하신 거라는 걸 알곤 아저씨가 더욱 좋아졌다.
시간을 물어보시며 어떤 식당에서 박스를 가져가라고 해서 가야한다며 서둘러 가시는데...
여든여섯살의 노인이라곤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정정하시고 ,나이를 알고 나니 그닥 허약하신 분도 아니란 걸 알게 된다.
더군다나 치아건강을 부러울만치 훌륭하시다!
저녁일과를 마무리하고 SNS에 들어갔다가 인문학 아카데미에 초청을 하는 친구를 만나 접근가능성 등을 점검한 뒤 참가해보기로 결심을 한다.
늘 마음은 굴뚝이었는데,가방끈도 짧고 평일인지라 엄두를 못냈었는데,
토요일 오후에 있었고,제목도 '친절한 인문학'인데다 전철역에서 가까워서 조금 일찍 출발하면 하루가 풍요로와질 것 같아서
한 달에 한 번 있는 인문학 아카데미에 참석하겠다고 신청을 하고 은행을 찾아 입금을 하러 가는데,
비가 많이 와서일까?한가위가 가까워서일까?
여기저기 파지더미가 눈에 띈다.
은행 입출금 부스가 닫힐 때까진 시간이 넉넉하기에 부지런히 오가며 참 많이 모았다.
그러다 좀 먼 곳이고 근처에 약속 장소가 없는 곳에도 많이 있기에 전화를 걸어 아직 안 주무시면 핸드카 좀 갖고 와줍시사고 했더니 이내 오셔서,
당신께선 있는 걸 보시고도 하나의 팔론 실을 수 없을 정도의 파지를 싣고 내가 핸드카를 밀어서 작업장까지 갖다 드리고,
약속장소에도 많이 있으니 내일 아침에 가져가시라고 말씀 드리고 들어오니 ...
오늘은 비가 많이 와서 시위현장에도 못 갔고,매출도 전혀 올리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풍족하기 그지없다.
생전 처음 유명한 교수님들이 주도하는 아카데미에의 참석도 결정했고,한 어르신의 인생 이야길 허심탄회하게 들을 수 있었고,
인정도 듬뿍 선물받은 나의 오늘 하루는 ,그러면서 갑으로 착한 아저씨도 즐거워하셨으니 ,오늘도 성공이얏!^*^
자정이 넘어서야 비로소 저녁 식사를 했지만 ,아까 낮에 근처에 새로 개업한 중국 음식점에서 ,
중국인들이 한가위면 먹는다는 월병을 ,작은 판에 한자로 월병이 새로 도착했다는 뜻의 중국식 글자를 보곤 사오면서 하나 먹었었기에 그닥 주리거나 하진 않았다.
남은 건 한가위 때 보름달을 쳐다보며 먹으면서 중국식으로 감사의 마음을 느끼려 냉장고에 고이 간직했다.
한국식 한가위는 부모님들 뵈러 가서 송편 먹으며 쇠면 되니,올핸 이중국적 한가위를 만끽하게 될 것 같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말고 올 한가위만 같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