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니? 그때-추억을 더듬다.
어린시절 기억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누구나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 자기도 모르게 자칫 냉정해지기쉬운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람들과의 관계를 거래로 따지려들면 한도 끝도 없는 게 사람살이이다. 24년만의 만남앞엔 누구나가 설레이는 밤을 보낼수밖에 없다. 한 동창의 카페에 올린 글을 읽고 있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난..룰루거린지 한참이다..
내일 저녁엔 아주 거창한 모임이 있다.
첫초등 동창 모임...(2007년9월8일 노형 모 음식점)
한녀석이 카페를 개설하더니
석달도 되지않아 만남이 자리를 마련한다.
올망졸망 함께 모여
왁자지껄 떠들던 때가 엇그제였는데,
추억 주머니안 한켠에 작은 몸집의 벗들
꺼내니 수줍은듯 순수한 들꽃들이다.
주전부리하던 산열매들이다.
만남을 앞두고
변화..반응..생각만으로도 입이 귀에 걸린다.
가슴이 벌렁거린다.. 이또한 작은 설레임이다..
난 여직 룰루거린다.
하교길 분홍의 분꽃으로 귀걸이 만들어 한껏 뽐을 부리던 기억.
친구집 앞마당에 가방을 내동댕이치고 고무줄놀이며 공기놀이에 빠졌었던 기억
사금파리를 그릇삼고 담장밑 그늘에 평평한 돌을 밥상과 의자삼아 소꿉놀이했던 기억
잠시지만 아련함에 눈물샘이 춤을 추잔다.
" 정숙 은자 순화 은희.. 나올꺼지?..
애 낳고 살림하고 아내역할 사회생활까지
하느라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만나기는 고사하고 연락한번 제대로 못했어..
내일의 진한 감동을 맛보려 그랬다고 우리 말하기로 하자."
(진영선이 동창회 있기 바로 전날 올린 글 중에서)
(여자동창들끼리의 한 컷)
얼마나 보고 싶었던 얼굴인가. 구지 연인사이가 아니더라도 가족관계가 아니더라도 한 시기에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것 하나만으로 상대방을 혈육이상의 정으로 느낄수 있다. 입시제도가 뿌리를 내리고 어린 시절부터 수험생의 삶을 외나무다리 건너듯 아슬아슬하게 걷는 이 시대에 7.80년대에 당시 국민학교를 다녔던 세대들은 지금 30~40대에 접어들어 우리나라 사회각계각층에서 중견들을 보좌하거나 자신의 꿈을 향하여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금은 국민학교라는 명칭도 일제의 잔재라고 없어진지 벌써 몇해. 이른바 초등학교시대이다. 주부는 주부대로 육아와 가정살림을 도맡고 있고, 머리가 히끗히끗한 부모께 어떻게 효도해드려야하는지 알만한 나이가 되었다.
(동창회장으로 선출된 양정우를 중심으로 열띤토론이 벌어지고 있는가운데 명창애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초대동창회장으로는 그간 몇달에 걸쳐 무소식이었던 동창 한사람 한사람에게 연락을 취해서 소식을 전해온 동창카페지기인 양정우가, 상임부회장으로는 양애경이 선임되었다. 어엿한 회칙도 마련되었고 임원도 선출되었으니 이제 실로 역사적인 신창초등학교 제 43회 동창회가 비로소 만들어진 것이다. 회장인 양정우를 중심으로 앞으로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대 회의를 하는 가운데 당시 학교 대표가수이자 웅변가였던 명창애, 태권도 사범이었던 김영진 등 동창들의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미국에 거주하는 고정선이 동창들의 자녀를 위해 영어공부의 가이드역할을 하고 싶다는 인사가 이어진다.)
가장 멀리서 온 고정선이 미국의 소식을 전하는 알리미역할을 하며 동창들의 자녀들를 위해 영어공부의 가이드역할을 하고 싶다는 인삿말에 모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내기도 하였다. 초등학교 다닐 시절엔 같은 반이면서도 단 한번도 말을 붙여보지 못했던 남녀학생들.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그시절이 사뭇그리워진다. 세월이 흐르고 성인이 되고 보니 그 자체가 아름다운 추억인게다. 동창들의 얼굴을 보고 잊혀졌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살아나며 활기를 더한다. 추억 더듬기는 밤이 다 가도록 끝이 없었다.
(경기도, 포항, 서울 등 타지에서 동창회참석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온 봉이와 창언이 창애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리를 서너 차례 옮겨 가며 동창들과 부담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이 시간이 제발 더디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안한 동창이 어디있겠는가. 늦은 밤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는데도 서로 헤어지기 싫어 동터오는 새벽길을 걸어 다음날 이른 아침 출향해야 하는 동창들과 해장국을 먹으며 날을 밝히는 경우도 있었다.
(서로 기억을 더듬고 있는 시간은 행복하다.)
다음은 국제결혼을 하여 일본에 거주하는 동창인 고인선의 글을 읽는 동안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았던 동창이 있을까?
24년 만의 만남 앞에서 설레임과 흥분을 수다도 푸는 아줌마아저씨들, 이들의 떠드는 소리에 멀리 국제전화를 걸어온 인선이는 얼마나 발을 동동거렸을까?
다음은 그녀가 카페에 올린 글 한 대목이다.
오늘은 제 1회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날. 모임이 있는 2주일 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어, 조금 서운하고, 안타까웠다. 안그래도 혼자계신 어머니 안테 손자들 얼굴도 보여 드려야 할텐데,, 하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왕이면 이번기회에? 라고 서둘러 여권을 펼쳐보니, 8월21일로 기간 만료. 다시 신청하고 교부받는데 까지는 2~3주 걸린다고. 아~ 너무나도 안타깝고, 아쉬운 이 마음. 남편은 이런기회가 아니면 핑계거리가 없어서 가보지도 못한다고, 서둘러 준비해서 다녀오라고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그래도 9월6일 제사도 있고, 아이들도 그렇고, 혼자서 그렇게 다녀오겠다고 도저히 말을 할수가 없었다. 내 마음이 용납하지를 않았다. 보고싶기도하고, 옛추억에 잠기고 싶기도하고, 수다도 떨고 싶고, 정말로 정말로 가고 싶었는데,,,,,,,. 비록 몸은 가지 못하더라도, 목소리라도 들려줘야지. 친구들 단 한명이라도 목소리를 들으면 그나마 분위기라도 느낄수 있을것같아서, 전화를 했다. 정우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더니, 울려도 울려도 받지를 않아서, 이번엔 동실이 핸드폰으로, 동실이도 전화는 받지도 않고, 수다떨기에 바빴을테지? 할수없이 114에 문의해서, 해오름 식당으로..전화...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한꺼번에 느껴지고, 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정우였겠지? 누구냐고 물어볼 틈도 없이 끊겨버린 전화, 다시한번 ,전화를 했더니 핸드폰으로 하란다. 그래서 이번엔 정우 핸드폰으로,,, 정우핸드폰인데, 받은건 춘옥이. 정말 24년만에 듣는 목소리도 그대로여서 놀라기도 했지, 너무너무 반갑고, 그리고는 정선이, 민희 , 정숙이,영선이...... 다들 여전하구나,,, 반갑다.... 분위기가 하도 좋은것같아서 오래 전화붙들고 있는것도 미안하고, 그냥 그정도로 안녕~~ 다른친구들 목소리도 다 ~듣고 싶었는데, ,, .아쉽다.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동창회분위기 , 24년만의 반갑고 설레고 두근거리는 만남이 보지 않아도 너무나도 가깝게 느껴질수 있었다. 다음번엔 미리미리 연락 받아서 꼬옥 갈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지. 친구들 ! 오늘은 좋은 하루가 되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좋은 만남, 좋은 추억, 반가운얼굴 ,즐거운 수다. 2차는 어디로 가셨나요? 그 많은 인원이 이동을 하느라고 신제주 동네가 쪼끔 시끌벅쩍 ? 했겠네요? 좋은 시간, 즐거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버리는법. 만나서 반가웠던것만큼, 아니 그이상의 아쉬움으로 서로 헤어지게 되겠지요? 다음을 기약하면서....... 짧은 시간이나마 진심으로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빌어봅니다. 항상 좋은 친구, 좋은 동창생으로 있어주기를 바라며. 다음번엔 꼭 참석할수 있기를 빌면서, 멀리 일본에서 , 인선이가 적어봅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허물없는 장난도 걸어보는 동창들)
동창회가 끝난 소감을 남편과 연애할때 이후 처음으로 피가 끓었다고 고백하는 동창의 글 앞에서 내 속내를 드러낸듯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날 동창회는 24년 만의 첫 모임으로서 총 졸업생 63명 중 34명이 참석하였다. 동창회장이 된 양정우는 멀리서 한달음에 달려와 준 고정선, 박창홍,명창애, 이창언, 조봉이, 고동실, 고경신에게 특별히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고향을 지키고 있는 고향지킴이인 동창들과 힘을 합쳐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동창회를 잘 이끌것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고동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