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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아메리칸 도서관'엔 무엇이 있나


BY kyou723 2008-01-30

오늘 오후에 집 근처에 위치해 있는 ‘아메리칸 도서관’을 다녀왔다. ‘아메리칸’이어서인지 영어관련 자료도 많고, 비교적 도서관 시설이 좋은 편이다. 게다가 비디오 시설 및 공부할 수 있는 책상과 의자 등이 많아 공부하는 학생들이 종종 찾는 곳이기도 하다.

다른 여타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정회원이 되려면 1년에 10유로를 내고 가입하고, 1년 동안 여러 책들과 CD등을 빌려볼 수가 있다.

베를린에는 크고 작은 도서관이 많다. 특히 이곳은 도서관 안에 아이들 전용 도서관이 잘되어 있어서 자주 찾는 곳 중 하나다.  지하에 위치해 있는 어린이 도서관은 이날은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 수요일과 토, 일요일에 문을 닫는 어린이 도서관은 다른 날은 아이들 방문객으로 북적인다.

이날은 간혹 아이들과 함께 책을 빌리러 온 방문객들을 제외하곤 꽤 넓은 도서관이 여유로왔고, 책상과 의자들도 넉넉하다.


 ** 와~~ 진지한 모습이닷~


 ** 두 딸은 성격대로 자신의 놀이를 즐긴다


 ** 독일어로 치장된 책들 속에서 한국동화책 발견하다

“엄마, 한국 책이 있어요!!!”

갑자기 저만치서 책을 찾던 큰아이가 한국 글씨로 된 책을 발견하곤 외마디 탄성을 지른다.

“그래? 무슨 책이지?

딸애가 찾아낸 책은 ‘여우가 오리알을 낳았어요’라는 제목으로 대만사람이 지은 것을 번역해 만든 동화였다. 독일어로 완전 치장된 도서관에서 홀로 꽂혀있는 한국글씨로 된 동화책. 보물섬이라도 발견한 양 소리지르는 큰아이. 나또한 한국사람을 만나는 양 기분이 좋다.

아이는 재미있는지 끝까지 소리내어 읽고는 어느새 다른 책을 찾아다닌다. 둘째아이는 활달한 성격 탓에 책 읽는 것엔 관심없고, 게임교구들을 들여다보았다.

함께 게임을 하자고 조르는 나에게 알 수 없는 게임도구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큰아이에게 구원요청을 하며 힐끗 바라보았다. 어느 때부턴가 내가 하기 싫거나 힘든 것이 있으면 큰아이를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설거지를 할 때나 빨래를 할 때도 딸애는 언제나 나의 동반자였다. 이곳에서는 물에 석회가 많아 설거지를 끝낸 후 그릇을 닦아야 하는데 난 그릇닦는 것이 여간 내키지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그릇 닦는 일은 언제나 8살난 큰 딸 몫이 되었다. 오히려 꼼꼼이 닦는 모습이 나보다 낫다. 물론 딸내미 녀석도 그건 인정하는 눈치다.

빨래를 하고 빨래감을 발코니의 건조대에 널어놓는 것과 빨래가 건조되어 곱게 정리하는 것도 큰 딸 녀석의 몫이다. 물론 여기엔 딸애의 자발적 의사를 존중한다. 게다가 내 스스로도 딸의 신부수업을 일찌감치 수행한다는 당위성과 합리성을 내세우니 할 말은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아직까진 딸애가 나의 일을 거두는 것을 놀이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아무튼 이제 겨우 여덟 살 신부수업이니 결혼할 때까지는 신부수업 박사학위는 따놓은 당상이다.

말이 샛길로 빠졌는데, 게임교구들을 은근히 잘 다루는(이럴 때 은근슬쩍 큰 딸 자랑하는 팔불출 엄마) 큰 딸 덕분에 교구 다루는 것도 항상 그애 몫이다.

그런데 이날은 큰 딸도 책읽는 것에 올인했는지 여간 눈을 돌리지 않는다. 결국 성격 화통한 둘째딸의 아우성이 시작되고 한 시간도 못되어 우린 도서관을 빠져나와야만 했다.


 ** 사람들이 오늘은 적다


 ** 도서관 어항 위의 장식물 


 ** 어린이 도서관 입구에서 열심히~~


 ** 도서관 정문이다

가끔씩 아이들을 보면서 작은 세계를 발견한다. 때론 과거의 내 자화상을 보는 듯한 자괴감을 가질 때도, 때로는 비전과 새로운 가능성이 느껴지는 알지 못할 세계를 보기도 한다.

그 세계는 여러 문화와 시각적 접근에서 길러지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아이들의 간접투영을 가장 잘 충족시켜줄 수 있는 도서관을 추천한다. 방대한 아이들의 생각주머니가 도서관의 폭넓은 지식과 지혜들을 듬뿍 담아낼 수 있도록...

오늘은 아이들의 생각주머니에 무엇이 담겨져 있을까. 알록달록 이층침대에서 오롯이 누워있는 내 소중한 보물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본다.




박경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