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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래, 남편과 살기싫다는 분 보세요


BY 칵테일 2000-07-25

님의 글을 읽다보니 제 입가엔 엷은 웃음이 번지네요.
참 착한 아낙이구나싶어서말이죠.

궁상과 절제는 언뜻보면 그 모양새가 비슷하지요.
가난은 죄가 아니며, 단지 불편할 뿐이라는 말도 세간엔 떠돌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사람을 치어죽이고도 돈으로 합의하면 무죄로 방면되는 게 세상인심입니다.
하지만 배가고파 빵 한쪽 훔쳐먹어도, 그 주인이 신고하면 꼼짝없이 절도죄로 전과자가 되는게 또 우리의 세상이지요.

왜 그렇게 사셨습니까?
부러진 안경테를 본드로 붙여가며 살면 남편과 시댁식구들이 님을 알아줄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이런 말 생각나네요. 어떤 여자가 과일을 깎아서 접시에 내놓는데 제대로 된 과육은 남편과 아이들을 먹이고, 심이있는 꽁댕이는 항상 그 여자가 먹었답니다.
물론 좋은 부분을 제 식구 먹이고자 한 그 여인의 충정이었죠.
그러나 어느 날 그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었는데, 그 어미에겐 여전히 과일 꽁댕이를 주더랍니다.
왜그랬을까요? 어릴 때 과일꽁댕이를 먹고 있는 엄마에게 애들이 물었었거든요. 엄마는 왜 맨날 그것만 먹느냐구.
대답이 궁한 엄마는 그랬다죠. 난 그 부분이 제일 맛있어라고.
약간 풍자적인 거겠지만, 엄마가 맛있다고 한 부분을 주는 것이 자식으로서는 또한 효도가 아니겠습니까?
평생 과일꽁댕이같은 것만 먹고 사는 팔자, 누가 만드는 줄 아십니까?

우리집엔 세 식구가 삽니다.
남편은 아들 하나 있는 앞에서 항상 그러죠.
갈비를 구워도, 회를 먹어도 항상 좋은 부위는 엄마줘야한다고.
(물론 저의 치밀한 공작에 말린 제 남편의 선수책입니다.)
상징적인 이야기죠.
적어도 우리집에선 제 지갑이 제일 두둑하고, 집안의 온갖 재물과 재산은 제가 다 관리합니다.
남편급여가 들어오는 통장을 남편은 아예 구경도 못합니다.
제 남편은 통장 비밀번호가 뭔지, 어디에 무슨 도장을 쓰는지, 증권구좌에 어떤 종목의 주식이 들어가 있는지..... 전혀 모릅니다.

어쩔 땐 제 자신이 '여왕벌'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남편은 일벌처럼 열심히 벌어서 제게 갖다주고, 전 그 월급의 1/10 정도를 용돈으로 그의 개인통장에 매달 넣어줍니다.
그 사람 월급이 적지 않지만, 그래도 자기 번 것의 1/10 로 아뭇소리하지 않고 살아가는 남편을 보면 어쩔땐 참 '기특(?)'하단 생각이 다 들 정도입니다.

너무 제 개인사설이 길었네요.
남편의 아내 몰래 현금서비스를 몰래 받아 썼다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남편이 버는 돈을 아내라고 함부로 써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분명히 님의 가정경제엔 새로운 혁신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뭘 따지려고 하지말고, 지난 시간 다 묻어버리고 남편과 진지하게 그 부분에 대해 의논해보세요.
남편의 월급이 정확하게 얼마인지는 알고 계시나요?
저축을 하는 일도, 소비를 하는 일도 다 남편의 수입으로 가능하다면 더 더욱 님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10원 한장 들락이는 것까지도 반드시 가계부를 쓰도록 하세요.
하다못해 몇 명 모여 점심먹는 친목계모임도 그 회비 입출입을 정리하는데, 하물며 한 가정의 살림이야 당연히 그 수지를 정리해놔야하는 것 아니겠어요?
또 그래야 남편에게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러진 안경다리 때워쓰는 것으로는 절대 해결되지않습니다.
자칫 그게 궁상으로까지 보이게되면, 님도 과일꽁댕이나 얻어먹는 신세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 아닙니까?
고급향수와 꽃바구니속에 둘러싸여 살 수는 없다해도, 적어도 그런 식으로는 살지 마세요.
자신에게 필요한 물품도 당당히 구입하세요.
사치하란 이야기가 아니라, 님도 분명한 가족의 일원이고 차별을 두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당당하게 사세요. 그래야 남편의 무분별한 지출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많지 않은 수입에 누구는 써재끼고, 누군 궁상떱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우선은 남편의 지갑을 열어본 건에 대해서는 일단 침묵하세요.
지갑을 아내가 열어보았다는 걸로 또 다른 시비거리가 생길 수 있답니다.
그러니 차후부터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차분하고 침착하게 남편과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세요.
그리고 시댁식구들에게도 당당하게 한 목소리를 내세요.
죽어지낸다고 누가 안 알아줍니다.
아셨죠? 건투를 빕니다.
또 뒷 소식 올려주시길......



칵테일